공식적 백수를 앞두다.
일주일 동안 출장을 갔던 매니저가 돌아온 월요일 아침. 다시금 지난 금요일의 일이 떠올랐다.
두 시간 동안 머뭇머뭇 가슴 쿵쾅대며 지체한 대가로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으니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새로운 사람을 찾기 위한 절차 진행을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얘기해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난주 내내 몇 번이고 할 말을 곱씹어 보았고 이제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었기에 용기 내어 매니저에게 갔다.
‘일단 한 마디만 던지면 돼!’
"Do you have a minute? I have something to discuss with you... "라고 말하자
매니저는 내가 업무와 관련한 얘기를 하는 줄로 아는 듯 필기구를 챙기며 밝은 얼굴로 일어났다.
회의실에 앉자마자 난 미안한 얼굴로...
"원래 좀 일찍 말하려 했는데 지난주에 출장을 가는걸 몰랐었어요. (사실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한데 저 프랑스로 가기로 결정했어요. 그래서 2월 말까지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매니저의 표정이 금세 당황함으로 변했으나, 개인의 인생 계획에 대해 회사가 하지 마라 붙잡을 수 없는 것이며 내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해주었다. 오히려 이전에도 몇 번 유럽에 가서 살고 싶다는 의향을 말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는 것 같았다.
말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원래대로 업무를 하고 한 세시쯤이나 되었을까.
매니저가 큼지막한 전지 같은 용지를 들고 내 자리로 왔다.
들여다보니 현재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리스트였다.
‘나 나가기 기다린 거 아냐?’라는 기분이 들 만큼이나 빠르게… 매니저는 프로젝트 리스트를 전달했다.
인수인계를 어떻게 할지 상의하기 위함이었다.
'아니. 좀 인간적으로 하루 있다 얘기하면 큰일 나냐! 오전에 말했는데 저렇게 또 빛의 속도로 진행할 거는 또 뭐야' 하며..
씁쓸한 마음에 밍키에게 문자를 보냈다.
"매니저가 마치 나 나가기를 기다린 것처럼 그렇게 바로 프로젝트 리스트 뽑아 오더라"라고.
"원래 그런 거야. 회사라는 곳이..
미국계는 더 하지.. "라고 밍키가 답했다.
매니저는 더 이상 협상의 기회가 없는 것이라며 물었었다. 물론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업무 인수인계 중 다시 한번 물었다.
"네가 단호해 보이는데, 혹시나 생각이 바뀌면 내일까지 알려줘.. "라고 말하며..
우리는 현재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의 진행 사항에 대해 얘기했다.
회의실에서 한 매니저와 나의 대화는 인간적이 었을지 모르나, 업무 인수인계를 위한 회사의 직원인 매니저와 역시 직원인 나 사이의 관계는 너무나도 사무적이었다.
'역시 회사는 회사구나..
회사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아.. '라고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회사를 떠날 때 미안한 감정 따윈 가질 필요가 없다고..
그렇다 철저히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회사 또한 나에게 이기적이므로.
그리고 나는 그다음날 resignation letter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사인과 함께.
이젠 정말 officially 퇴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