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초꽃을 아세요
6월이 되자 망초꽃이 피었다. 6월의 어느 날 내가 피어있는 망초꽃을 보았다. 망초꽃은 5월 어느 날부터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내가 망초꽃을 본 것이 오늘 아침이었으므로 망초꽃은 오늘 핀 6월의 꽃이 되었다.
망초꽃을 보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작은 개척교회의 재단에 망초꽃을 봉헌했던 기억. 망초꽃 하나만 꽂았던 건 아니다. 잔잔한 작은 장미꽃과 함께 꽂았다. 투명한 유리화병에 장미만 꽂았더니 뭔가 밋밋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할 때면, 장미 몇 송이를 가운데 꽂고 하얀 안개꽃이 주위를 둘러싸안는 꽃다발을 선물로 주기를 즐겼다. 포장지는 투명 비닐 한 장으로 하고 리본도 베이지색 하나로 간단하게 묶는 걸 좋아했다. 물론 내가 포장했던 것은 아니고 꽃집 사장님께 그렇게 주문을 했다. 장미와 함께 다른 꽃을 더하면 화병이 더 풍성해지고 소박한 재단이 엄숙함과 경쾌함을 동시에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교회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망초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교회는 모 대학원 강의실을 빌려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대학원 공원에는 벚나무, 단풍나무, 모과나무 등 나무뿐만 아니라 용설란, 철쭉, 장미꽃 등 꽃들도 다양하게 동산을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봄에는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었다가 씨를 바람에 날렸고, 여름이 시작되면 사방에 망초꽃이 하얗게 피어서 연한 분 같은 향기를 풍겼다.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다. 민들레가 피었다 지고 망초꽃이 피어 향기를 내뿜는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눈으로 보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망초꽃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내 곁에서 언제나 어디를 가던지 만났던 야생화였지만, 지금까지 망초꽃을 눈여겨보고, 반겼던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9년 동안 십리길을 걸어 다니면서 매 해 이맘때쯤이면 보았을, 지천으로 핀 망초꽃은 나에게는 잡초 이상의 것이 되지 못했다. 나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그냥 이름 없는 풀꽃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키우던 그때라고 달라진 것도 없었다. 내 곁의 모든 사물은 저 혼자 존재했고, 나 또한 나 혼자 존재했다. 외롭지는 않았지만, 풍요롭지 못했다.
망초꽃 앞에 섰을 때,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얗게 피어있는 망초꽃이 내가 산 장미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노란 작은 동그라미를 가운데 두고 솔잎처럼 가는 하얀 꽃잎들이 둘레를 에워싼, 작은 꽃송이를 들여다보았을 때는, 숨이 턱 막혔다. 그 안에 엄지공주가 누워 있을 것 같았다.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며 곧 일어설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박하지만 앙증맞은 꽃이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예쁘게 피어 향기를 내뿜고 바람에 맞춰 흔들리며 춤추고 있는 꽃은 단아하고 우아했다. 망초꽃은 혼자 피어있지 않았다. 꽃대 하나에 여러 송이 꽃을 피워 바람이 불면 함께 나부꼈다. 망초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한 자루의 초에 여러 개의 촛불이 켜져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처음 마주한, 사십 년 세월 동안 알아보지 못한 망초꽃이 수줍은 듯 흔들리며 그곳에 있었다. 언젠가는 내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린 것처럼, 자연스럽고 태연했다.
나는 그날, 망초꽃을 꺾어 재단에 봉헌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함께 고요해지고 침묵하는 망초꽃을 가장자리에 두르고 장미를 가운데 꽂은 화병이 완성되었다. 하얀 망초꽃이 올려진 재단은 화사했다. 내 마음도 화사하게 피어났고, 예배당은 경건해졌다. 누구도 하얀 꽃이 교회 밖 정원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하찮은 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망초꽃은 그날 제 목숨을 바쳐 하나님을 찬미한 거룩한 꽃이 되었다. 망초꽃은 그날부터 매 년 여름이 되기 시작할 때부터 여름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망초꽃의 소박함과 단아한 자태가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어떤 사물도 내가 먼저 알아봐 주지 않으면, 말 걸지 않으면, 먼저 알은체 하지 않는다. 모든 꽃이 나의 꽃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꽃이 되어야 하고, 친해지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망초꽃 무수한 꽃잎들이 수런거린다.
나는 망초꽃을 보고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내가 작고 소박한 것을 좋아한다는 글을 쓰려고 했다. 기억 속의 나는 세상사에 별로 욕심이 없었다. 교회를 다니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욕심부리지 않고, 다투지 않고 사는 것이 좋았다. 지금 내 마음속에는 욕심이 가득하다. 끊임없는 욕망들이 나를 채근한다. 어서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먹고살 수 있겠느냐고, 날마다 아우성치면서 나를 할퀴고 깨문다. 내 얼굴에는 욕심이 입힌 상처들이 군데군데 검게 드러나 있다.
나는 내가 소박하고 작은 것들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화려하고 큰 것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단색에 장식이 없는 옷을 입었고, 신발도 하이힐은 신어본 적 없이, 굽이 낮은 검은 단화 같은 신발을 신었다. 얼굴에 화장하는 것도 싫어해서 눈썹조차 다듬을 줄 모른다. 수수한 아름다움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로 내가 욕심이 없을까. 화려한 옷이나 시끌벅적한 일상을 싫어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망초꽃을 좋아하지만 장미꽃도 좋아한다. 노을이 지는 해 질 녘, 혼자 조용히 강변을 걷는 것도 좋아하지만, 길거리 콘서트를 보면 부러움과 질투심으로 목이 메고 눈물이 흐른다.
오래전, 늦깎이 대학생활을 시작하던 해에, 안산에 살고 있는 학교 선배를 만나러 갔었다.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뒤쪽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노랫소리가 들렸다. 아직 언니는 도착하지 않았고, 나는 작은 무대에 서 있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자석처럼 이끌려 갔다. 무대에서 춤추며 노래 부르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대중 앞에서 나는 해보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그 아이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심으로, 나는 서러웠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것들이 나를 욕심 없이 소박한 삶으로 이끌고 갔던 것은 아닐까. 자꾸 억눌리고 억눌리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나 자신을 속이면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미 내 일부가 되어버린 건지도.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장미꽃보다 망초꽃을 좋아한다고 해서, 욕심이 없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산 건 아니니까. 망초꽃이 장미꽃이 되지는 않으니까.
망초꽃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나비가 내려앉기도 하고 벌이 꿀을 빨고 간다. 바람이 머물다 가기도 하는 망초꽃, 나도 망초꽃으로 거기 서 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