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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브생 Oct 30. 2022

나의 여덟 번째 음악 이야기.

타케미츠 토오루의 바다로.

 현대음악. 19세기를 풍미했던 낭만주의가 저물고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새롭게 나온 서양 음악 사조다. 보통 인상주의로 분류되는 드뷔시와 라벨도 현대음악의 시초라고 여겨진다. 그 후로 통칭 "제2빈악파"로 불려지는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과 신고전주의의 스트라빈스키, 미요, 버르토크, 힌데미트와 후에 나오는 불레즈, 슈톡하우젠, 윤이상, 케이지, 메시앙, 진은숙 등 많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나왔다.


 하지만 현대음악의 무조적이고 전위적인 악풍은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지 못했고 결국 대중들에게 외면받는다. 그럴만한 것이 들으면 "이 딴 게 음악이면 내가 피아노 막 두들기는 것도 음악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곡들을 썼기 때문이다. 나도 현대음악은 그렇게 즐겨 듣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예 듣지 않았었다. 그러다 순전히 호기심으로 현대음악도 한번 들어보자는 생각을 하였고 일단 유명한 제2빈악파를 먼저 들어봤지만 그다지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여러 작곡가들을 찾아보다가 일본 작곡가 타케미츠 토오루의 '바다로'를 스포티파이에서 찾게 되었다. 마침 예전에 스포티파이에서 그가 작곡한 레퀴엠이 수록된 음반을 좋아요를 눌러놓고 듣지 않았어서 "어차피 들을 것도 없는데 한번 들어볼까?"라는 생각으로 재생을 했고, 어느 순간 타케미츠의 곡을 찾아서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_JkZs1Ku9c

타케미츠 토오루 - 바다로 |  플루트 로버트 앳킨, 기타 노버트 크라프트.

동서양의 조화, 타케미츠 토오루

 타케미츠 토오루(武満 徹, 1930 ~ 1996)는 일본의 작곡가로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받지 않고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1957년에 작곡한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레퀴엠>이 스트라빈스키에게 극찬을 받으면서 타케미츠의 유명세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하고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애런 코플런드의 위촉으로 <Dorian Horizon>을 작곡하며 코플런드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다.


 그 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타케미츠는 작품 활동을 지속하다 그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자국의 전통 음악을 듣고 일본 전통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일본 전통 음악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의 음악에도 일본 전통 음악적 요소를 첨가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물이 <November Steps>다.


 많은 음악을 남겼던 타케미츠는 1996년 향년 55세의 나이로 병으로 인해 사망한다.


바다로. 海へ。

 타케미츠가 1975년부터 만든 곡으로 알토 플루트와 기타의 2중주 편성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총 3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로는 후에 작곡가 자신에 의해 알토 플루트와 하프, 현악기 편성으로 이루어진 『바다로 II, 알토 플루트와 하프 편성으로 이루어진 『바다로 III』으로 편곡되어 출판된다. 보통 혼동을 피하기 위해 원래 플루트와 기타 버전인 원곡은『바다로 I』이라고 표기한다. 이 글에선 원래 버전인『바다로 I』을 설명하겠다. (사실 악기 편성만 바뀌고 곡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I. 밤(夜, The Night)

 II. 모비 딕(白鯨, Moby Dick)

 III. 코드 곶(鱈岬, Cape Cod)


 3곡의 한자는 대구 설(鱈), 곶 갑(岬)으로 대구 곶이라고 번역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어서 일단 영어 명인 Cape Cod가 구글링한 결과 미국에 위치한 코드 곶이라고 나와서 일단 코드 곶이라고 붙여놓도록 하겠다.


 1곡 '밤'은 1975년 그린피스가 고래 보호 캠페인을 펼치며 캠페인의 일환으로 당대 아티스트들의 서적을 발행하는 계획을 세우고 그린피스는 여러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는데 당대 한창 뜨고 있던 타케미츠에게도 작품을 부탁한다. 그 부탁을 수락하여 만든 곡이 '밤'이다. 198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플루트의 로버트 앳킨, 기타의 레오 브로워의 연주로 초연됐다.


 플루트의 긴 음으로 시작하며 뒤따라 기타가 요동치는 음형을 연주하며 플루트를 따라온다. 플루트가 밤바다의 정경을 표현하고 기타는 바다의 파도를 느끼게 하는 음형들을 연주해주며 이 곡의 느낌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2곡 '모비 딕'은 1곡 '밤'을 완성하고 덧붙여진 곡이다. 곡의 제목은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이 쓴 소설

『모비 딕』에서 따왔다. 일본어로는 백경(白鯨). 직역하면 하얀 고래라는 뜻이다. 타케미츠 자신은 이 곡을 그린피스의 고래 보호 취지를 위해 만든 곡은 아니라고 말했다.


 1곡 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곡에서는 어느 정도 유유자적한 분위기가 있었다면 2곡 모비 딕에서는 어딘가 불안정하고 요동치는 부분이 많다.


 소설 속 모비 딕은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고래다. 하지만 곡의 분위기는 거대하고 그렇게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소설에선 마지막에 화자를 제외하고 모비 딕에게 모든 선원이 전멸하는 이야기인 것을 보면 치열한 결투가 끝나고 다시 고요해질 모비 딕과 바다를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필자는 상상해본다.


 3곡 '코드 곶'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곶으로 19세기 당시 항구에 포경선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곡도 2곡 모비 딕과 마찬가지로 그린피스의 고래 보호 취지를 위해 만든 곡이 아니라고 한다.


 곡의 처음은 기타의 나지막한 솔로로 시작된다. 이윽고 플루트가 쓸쓸한 멜로디를 연주한다. 플루트의 트레몰로가 곡 중간중간 나오면서 불안한 느낌을 주지만 곡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급격하게 전환되는 부분은 없다. 끝은 조용하게 끝난다.



나의 평

 현대음악은 귀보다는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음악이다. 오죽하면 "현대음악은 음악으로 쓰는 논문"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악보를 차근차근 보며 분석해가면서 들어야 현대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대중들로부터 현대음악이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곡의 분위기부터 요즘 사람들에게 안 맞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타케미츠는 어딘가 다르다. 동양과 서양의 느낌을 곡에 담으려고 했던 타케미츠다. 그의 곡을 들으면 왠지는 모르겠지만 친숙하다. 한국과 일본이 같은 동양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다른 현대음악가들보다 이 사람의 곡이 나에겐 더 친숙하고 더 잘 들린다.


 바다로. 개인적으로 드뷔시의 바다를 뛰어넘는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보물 같은 작곡가를 이제라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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