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움 Nov 05. 2019

Part3.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매직카펫 매거진 Vol8. 류승윤 님(3)

'Part2. 무대 뒤 말고 무대 위로'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33


지금 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있나요?   


지금의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워라밸이 너무 좋아서 제가 하고 싶은 걸 많이 늘릴 수 있었어요. 뭘 배운다거나 공연을 보러 다닌다거나. 그러다가 조직에 좀 변화가 생기면서 일에 파묻혀 지낸 기간이 있었고 지금은 다시 균형을 다시 잡아가고 있어요.  


독서모임은 몇 년을 해와서 크게 어렵지 않아요. 일에도 적응이 되어서 저글링이 좀 되는 편인데 뭐랄까. 제 스스로가 과도기인 것 같아요. 더 크고 싶은 것 같아요.    


나의 시간을 어디에 들이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하면 어디에 가장 많이 쓰고 있나요?   


확실히 일인 것 같아요. 요즘엔 투자나 은퇴 후에 대한 유튜브도 많이 보고 있어요.   


아까 안락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요. 그럼 그 부분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을까요?


네. 그렇게 보셔도 돼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흔들리지 않기 위한 준비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두 번의 이직을 하면서 돈의 중요성을 너무 많이 느꼈어요.   


평소 자주 온다는 카페에서 시를 낭독 중인 승윤님

그다음엔 어디에 시간을 많이 보고 있어요?   


상반기엔 공연을 많이 봤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상충되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현실적으로 좀 더 절약을 시작했어요.   


좋은 것 같아요. 슬슬 채비를 한다는 느낌이라서요.   


회사를 다니되 회사를 떠날 준비도 하는 것 같고. 이번 회사에 들어오면서 '또 유목민 준비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전보다 체계적인 준비를 하는 느낌? 예술을 하고 싶다가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봤어요. 제가 10년 가까이 회사에 다녔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제가 예술을 전공하거나 경험치는 떨어지죠. 그럼 강점을 살려서 예술경영이나 예술행정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면 돈을 진짜 많이 벌어서 공연장을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것에 다가가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하고 있네요.   


아직은 막연한 생각이에요.   


단시간에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지만.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환경적으로도 그렇고 저 자신도 성숙해져가고 있기도 하고.


음악 이야기가 많이 오갈 인터뷰라고 예상했었는데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재미있어요.   


음악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어요. 하하하. 그냥 이만큼만 이야기하는 거죠. 보컬 레슨을 듣고 싶기도 해요. 올해 제가 연주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쳤는데 저희 부모님이 오셨어요.  


지극히 현실적인 저희 어머니는 취미 생활은 여기까지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대학 갈 때랑 똑같은 거예요. 연기는 취미로 하고 전공은 이걸로 해.


저희 어머니는 열심히는 치는데 그렇게 잘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고 다니시죠. 그러니까 저도 이제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또 어떤 면에서는 순응하는 딸이에요.  


연주회 이야기 좀 해주세요. <Gymnopédies(짐노페디)>를 연주했다던 그 발표회인 거죠?   


네. 그때 <Gymnopédies>, 유키 구라모토의 <Lake Louise>를 피아노로 연주했어요. 노래는 저의 아이디어였어요.  


올초에 아끼던 동생이 세상을 떠났어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던 친구였고 제가 우울할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퇴근하던 글이사고가 났어요. 저는 선후배나 회사 사람 같이 공식적인 관계가 아니다 보니 소식을 늦게 들었어요. 2월에 사고가 났는데 3월에 들었어요. 이미 장례식도 끝난 거예요.  


그래서 너무 허망해서 너무 힘들었는데 올여름 <슈퍼밴드>에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이라는 곡이 나왔어요. 에릭 클랩튼이 사고로 자신의 어린 아들을 잃고 나서 쓴 곡인데 그 곡으로 너무 힐링을 받았고 그 노래를 추모곡으로 부르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4주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그 곡을 올리게 됐죠.


그런데 노래가 당연히 프로의 느낌이 아니었음에도 제가 곡에 대한 설명을 하고 노래를 했는데 정말 눈물바다가 된 거예요. 신기하게도 그러고 나서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그 친구를 잘 보내주었다는 느낌.


그래서 또 해야지 했는데 집에서 그만하라고 하셨죠. 난 또 하고 싶은데.   

승윤님이 연주하는 <짐노페디>의 일부

보컬 트레이닝을 하면서 본인이 노래를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좌절했었다는 이야기도 했었죠? 잘하는 게 중요한 사람인데 본인이 보고 들은 게 많아서 그 기준이 높은 것 같아요.   


그런가 봐요. 실제로 제가 고퀄리티 공연을 많이 보니까 저도 금손이 되고 싶은데 제 스스로가 마음에 안 차는 거예요. 몰랐으면 모르는 대로 쳤을 텐데. 초등학교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쳤단 말이죠   


예전에 사회인 야구하시는 분을 인터뷰할 때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 있어요. 프로 야구와 사회인 야구는 다르다고. 같은 눈으로 보면 안 된다고.


나는 류현진이 아니야. 그러니 시작하지 말아야지. 저는 이러고 있는 거죠. 그런데 오히려 한예종에 계셨던 분이 승윤님은 이미 다 갖고 있다 꺼내기만 하면 된다. 좀 더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고.   


잘하지 못하면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더 자기 객관화를 해야 하는 부분인데 회사에서도 저는 끼가 많다는 소리를 들어요. 회식 날 노래를 불렀는데 다들 놀라면서 어떻게 참고 있었냐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는 제 노래가 별로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노래방에 가면 에코가 있으니 잘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그리고 부모님의 기준이 높으셔서 저는 그 기준을 못 채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회사도 생각해보면 전 더 많이 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튀는 거예요. 행정직원으로서의 한계가 분명히 있는데 전 에고가 발동해서 좀 더 주도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데 사람들은 이 에너지가 불편하고.   


연주회 날의 승윤님

승윤님에게 필요한 건 자기 확신이 아닐까요? 자신의 안목에 대한 확신이 있진 않아요?    


궁예력이 상승할 때가 있어요. 이게 잘 될 것 같다는 그런 게 있죠.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남의 것은 잘 봐주고 상담도 잘해주는데. 겁이 나나 봐요. 명확한 건 자기가 해봐야 안다는 거죠.


인터뷰 의뢰 자체도 자기 확신에 도움이 되었어요. 보통 이런 대화를 일반적으로는 불편해하죠. 일관성이 없잖아요. 한두 개의 코드로 정리되지 않는, 뭐가 많은 사람이잖아요. 물론 연결은 다 되지만.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다 안 올리는 것도 있고.   


나름 검열 중이었네요.   


작년에 자기 검열이 심해져가지고 안 올리고 그랬거든요.   


자기 검열은 왜 심해졌어요?   


한마디로 하면 실패죠. 회사를 나왔는데 아무리 자기 결정이었어도 마음이 좋지는 않잖아요. 그전까지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남들이 좋아하건 말건. 그런데 자기 검열이 생긴 거죠. 남들 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전 백수고 그러니까. 안 올리다 보니 안 써지더라고요. 감상이 안 떠오르기 시작했고 지금 공연 리뷰를 많이 못 쓰는 것도 그래서예요.  


지금은 어떻게 보면 작년에 잃어버린 걸 다시 원상복구 시키는 과정이기도 하고. 자기 복원 중이에요.   


오늘 인터뷰는 어땠어요?   


인터뷰를 통해 제가 정리된 느낌이에요. 인터뷰가 어떤 면에서 카운슬링이거든요. 먹고사니즘으로 일을 하다가 매직카펫을 탈 거냐 말 거냐를 두고 고민하던 차에 저도 정리가 좀 된 것 같아요.


올해가 분기점인 것 같아요. 전년도에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고민하거나 실행하진 않았거든요. 그 혼란스러운 틈에서 정리하고 있던 차에 이젠 아마 매직카펫에 탑승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날 승윤님이 들고 나온 책 중 하나는 이직을 통해 자신이 원하던 분야로 간 사람이 쓴 에세이였다. 그 자리 옮김 이후의 현실이란 여전히 녹록치 않음이 그 책의 주된 내용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책을 쓴 사람은 여전히 자기가 하고 싶던 그 일을 하는 중인가요?"


"글쎄요. 아직 끝까지 못 읽었어요."


아직 승윤님의 고민도 결론에 다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시간이 승윤님의 인생이란 책에 없어서는 안 될 챕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윤님에게 분기점이라는 2019년이 끝나가고 있다. 그의 다음 스텝은 무엇이 될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의 어떤 지점을 찾는 중인 이 사람의 2020년이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Part2. 무대 뒤 말고 무대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