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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움 Dec 03. 2019

세밀하게 조각하는 사람 (1)

매직카펫 매거진 Vol.9 양영선 님 (1)

자신의 SNS 게시물 댓글에 ‘101번째 취미야’라고 답하는 그의 말이 있었다. 정말 101가지 취미를 가진 사람 같다. 친구와 함께 얻은 집에서 '홈싸롱'을 열어 지인의 지인, 혹은 처음 보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이벤트를 열었다. 펜화를 그려 전시회에 참가하는가 하면 비전공 무용수로서 무용작품에도 참가를 했단다. 직접 천연염색을 해서 한복도 만들었기에 물어보니 "손으로 만드는 걸 기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 비단이 굉장히 예뻐요.”라고 담백하게 답한다.


아홉 번째 매직카펫 라이더 양영선 님의 초대를 받아 부산에 갔다. 그의 거실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풍경이 담긴 <인사이드 세른>이란 책과 손튼 와일러의 <우리 읍내>라는 희곡책이 나란히 있는 곳이다.  내가 거실의 그림과 사진 작품들을 구경하는 동안 영선님은 저녁에 있을 홈싸롱'일상부흥회'를 준비 중이었다. 입고 있던 흰 티셔츠에 음식이 튀었는데도 니트 하나만 슥 걸치더니 이내 프로젝터를 설치하느라 바빠보였다.


내겐 낯설고 흥미로웠던 이틀이 그렇게 흘러갔고 부산을 떠나기 몇 시간 전 우리는 카페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양영선입니다. 자리에 따라 소개가 다르긴 한데 기본적으로 회사원입니다.


회사원이라고만 본인을 소개하시기엔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던 걸요. 이렇게 여러가지를 해본 분들에겐 이걸 하다보면 다음 것을 해보고 싶어지고, 그게 또 다른 활동으로 이어지는 흐름 같은 게 있더라고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시작점을 공연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공부하듯이 공연을 봤었어요.


어떤 공부요?


원래 제 꿈이 무대미술을 하는 거라 프리랜서로 드라마, 영화, 콘서트 같은 방송미술도 했었어요. 그러다 지금 회사에 들어오게 되면서 언젠가 다시 할 수 있으니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하자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래 모든 게 연극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연극 위주로 보다가 장르 간에 경계가 없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음악극, 무용 이렇게 확장하면서 다양하게 봤어요. 그러면서 제가 하고 싶은 게 좀더 생겨났고 그 감정이 다른 쪽으로 뻗어나갔다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럼 관람에서 처음 뻗어나간 쪽은 뭐였나요?


무용이에요. 공연 보면서 알게 된 사람의 추천을 받아서 무용수업을 들으면서 작품을 하게 되었고 무용선생님이 댄스필름을 찍으면서 기록하는 걸 보고 영상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부산에 오게 되면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고. 연결을 찾는다면 그런 식이 될 것 같아요.


영선님이 참여했던 <풍정:각> 공연의 포스터. 서울로에서 시작하여 만리광장으로 이동하며 펼쳐진 현장감 있는 공연이었다.


무용을 했다는 게 특이했어요.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왜였어요?


지금도 연극을 제일 좋아하긴 하는데 공연을 보면서 점점 더 순수예술을 파다보면 결국엔 사람 자체에 집중하게 되요. 무대 위에 있는 무용수 한 명이 자기 몸을 가지고 표현하는 부분이 어느 순간 강하게 와닿으면서 무용에 더 관심이 갔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여했던 작품은 뭐였어요?


송주원 안무가 님의 <풍정:각> 공연에 참여했어요. 비전공 무용수, 전문 무용수들이 함께 길거리나 미술관 같은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공연을 하는 거에요. 그거랑 별개로 댄스필름도 만드셔서 거기에도 출연했어요.  


해보니 어땠나요?


제가 공연을 보는 건 제 감정, 감각을 깨어있게 하고 싶어서인데 실제로 몸을 움직여보니 감각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계속 동작을 하려면 이 동작을 왜 하는지 스스로도 납득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감정에도 집중할 수 있었고요.  


영선님이 만든 세트에서 촬영 중인 <방학숙제> 현장. 이 작품은 국내 단편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워크샵을 하면서 만든 영화가 동생과 함께 했던 <방학숙제>라는 작품이죠?


네. 워크샵이라서 영화학도들만큼 집중해서 했던 건 아니에요. 작은 작품이라서 예술작품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한 작품의 프로세스를 쭉 겪어보면서 '다음에 만들 땐 이렇게 할 수 있겠구나'하는 스터디의 의미가 더 컸던 것 같아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중간에 변동도 생기면서 동생이 연출과 시나리오, 저는 조연출이자 무대미술과 의상, 소품, PD까지 거의 나머지 전부를 했어요.


스터디였다지만 본인의 침대를 뜯어가며 세트를 만들 정도였잖아요. 퇴근 후에 만드신 거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이 다 같이 하는 거고 이걸 끝을 내야하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필요한 게 없다면 만들어야죠.


침대는 어떻게 뜯게 된 거에요?


그게 딱 적당했어요. 평상이 필요한데 제가 헌팅해놓은 집에 들어가는 사이즈가 없었어요. 그게 없어서 들어내기에는 중요한 씬이라 만드는 것까지 생각을 해보다가 침대를 보니까 딱 맞는 사이즈인거에요. 매트리스 빼고 침대 헤드 떼고 그 위에 장판을 깔았어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침대였던 거 모르게 딱 평상처럼 나왔어요.


그렇게 해서 영화를 만들어보니 어땠나요?


결과물 그 자체가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좋아하는 걸 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나오는 부산물인 것 같아요. 펜화 전시회나 무용도 그렇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매주 시나리오를 썼던 게 6~7편 정도 되는데 내가 어떤 이야기 쓰는 걸 좋아하는지 알았고 다음에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게 의미있죠.


전반적으로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에 대해 깊게 탐구해오셨네요.


회사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방향을 새로 설정해야 될 때,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고 뭘 해야하는지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연극 스터디 외에도 굉장히 많은 걸 찾아다녔었거든요.


회사일만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나봐요. 그것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다?


질문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면 저는 무대미술을 했었고 제가 되고 싶었던 거는 어떻게 보면 예술가 쪽이었어요. 회사를 그만둘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공부의 차원에서 공연, 미술작품을 보면서 쉽지 않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글이든 그림이든 설치미술, 영화든 다른 사람을 만족시킬 작가면 초반부터 노력하고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하기에는 좀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저한테 의미있는 작품을 한 번은 해보고 싶다는 게 이런 여러가지를 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공부도 계속 일하면서 해오신 거 잖아요. 작품을 만드는 건 일하면서 할 수 없을까요?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제대로 된 걸 하기엔 제 자신이 지금 당장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걸 알게 되는 과정도 가치 있는 것 같고요. 초반에는 공부처럼 했다면 지금은 좀더 즐기면서 해요.


처음엔  즐거웠어요?


처음에는 빠르게 뭔가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공연을 보고, 연극을 만드는 스터디와 무대 워크샵도 하면서 무대미술 쪽으로 가려고 했었거든요.


언제부터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많은 경험을 하면 거기에서 재미를 찾게 되고 그때부터 즐기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공부도 어느 정도 쌓이고 나면 알게 되면서 즐거움이 있는 것처럼.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온 것 같아요. 


그렇죠. 충실한 거죠. 피곤할 수도 있지만 뭘해도 피곤하니까요. 성향도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자극이 되어야 살아있다고 느끼는 그런 만족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즐기는 과정에서 늘 결과물도 있었구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걸 배우게 되는 게 좋았어요. 공동의 작업이 많았는데 전시회를 하면 마감이 있잖아요. 그런 거에 대한 책임감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결과물이 있으니 배우는 게 더 많았나요? 그게 없었어도 배움이 쌓였을까요?


쌓이긴 쌓일 텐데 그 깊이감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뭔가를 만들냈다는 거 자체가 눈에 보여지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한 번 보여지고 피드백이 되죠. 제가 혼자서 하고 끝내면 스스로에 대한 정의도 못 내리고 끝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좋든 나쁘든 한 번 내 밖으로 나가야 돌아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양영선 님의 인터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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