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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해리 Apr 30. 2023

5. 늦은 밤 거꾸로 가는 지하철 막차

마우스 커서 깜빡임 30번째 정막이 흐른다 : 미래는 과거로 흐른다

#1


철봉에 머리를 잠시 대고 깜빡 졸았습니다. 밤 11시 훌쩍 넘은 시간 지하철 막차 구석자리에 앉아서 졸았습니다. 몇 번이고 지하철 손잡이 철봉에 머리를 부딪히고 있었죠. 최근 며칠 사이, 아니 이 삶을 시작한 이후로 막차를 자주 이용합니다. 두세칸씩 거리두고 앉아도 될 정도로 여유 있습니다. 아직 집 근처 지하철 역까지 정거장 10개 이상 남았으니 다시 눈을 붙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리만 울창한 고장난 전광판이 보이고 맙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어폰 너머 지하철 안내 목소리를 알람 삼아 다시 단잠에 빠집니다.


가위 눌린 걸까? 이어폰 너머로 우는 여자 목소리가 들립니다. 발가락이 움직입니다. 가위엔 눌리지는 않았습니다. 가재미 눈으로 주변을 둘러 봅니다. 조용합니다. 고작 정거장 2개만 지났군요. 하지만 우는 여자 목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보이도록 고개를 돌립니다. 얼굴 정도 가리는 단발 여성 분께서 울고 계십니다.



#2


다시 밤 11시 넘은 막차 지하철을 타고 귀가합니다. 출입문이 닫힙니다. 눈꺼풀이 닫히는 것처럼 무표정 지하철 문이 닫힙니다. 1초 3초 4초 지하철이 속도를 냅니다. 반대방향 플랫폼이 나하고는 반대로 가버립니다. 지하철이 속도내기 4.5초 정도 지났을까요? 반대 플랫폼에서는 배꼽이 다 보이도록 윗옷이 말린채, 코를 고시며 주무시는 중년 남성 분이 지하철 벤치 위에 누워 계십니다. 빠른 지하철 속도 때문에 잔상이 되어서 눈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3. 


지하철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립니다. 지하철 6번 출구에서 개찰구까지 걷는 속도로 2~3분 거리를 내려가야 합니다. 바쁘다고 대충 떼운 끼니가 발목이 아니라 체력을 잡을 줄이야. 컨디션도 별로고 체력도 안 따라주고 짧으면 짧은 지하철 통로가 길어 보입니다. 막차 막차 막차에만 집중했는 데 그제야 보입니다. 기나긴 지하철 통로 양 옆으로 검은 때가 덕지덕지 붙은 박스들이 그 뒤에 있는 존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요. 4-4 승강장 앞에 가까스로 도달하고 불과 2분 정도 전에 봤었던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4.


다시 밤 11시 너머 지하철을 탑니다. 이번에는 한강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야심한 밤하늘에 투사되는 한강 야경 낭만은 그날의 피로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지하철이 가고 있는 방향과 반대로 등지고 서서, 차가운 창문에 광대뼈가 닿을 정도로 붙어서 한강을 바라봅니다. 지하철 철도 말고도 차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다리가 건너 보입니다. 유독 밤공기가 쌀쌀했던 날 다리 위를 걷는 보행자는 없습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터벅터벅 걷는 분이 계십니다. 알 수 없는 사람이에요. 근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5.


손목시계가 밤 11시를 넘은 시각을 가르킵니다. 서둘러야 겠습니다. 지하철 역으로 향합니다. 큰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썰렁한 거리를 걷습니다. 그런데 경찰차 경광등이 30m 앞에서 빛나는 게 아니겠어요? 그길을 지나가야 하기에 서둘러 걷는데 시선이 돌아가는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경찰관 분들이 어느 어르신을 부축하고 도움을 드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술기운은 없으시나 멍하게 차가운 길바닥에 앉으셔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요. 아버지 동년배 정도로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막차를 타고나서도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두 불과 며칠 안에 있었던 일들입니다. 이 중에서 한 번은 주말 나들이 소식으로 분주하게 아침 뉴스를 장식하던 날도 있었고요. 어떤 날은 주변에서 좋은 일이 있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모두 무슨 일인지 알길은 없지만 이 장면들을 봤던 사람으로 들었던 생각은 답이 없는 해결책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제에 마우스 커서만 깜빡인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 어떤 상황이든 '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저어기 보이는 사람이 행복 하도록 내가 할수 있는 게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혼자서 많이 합니다. 어이없는 공상인줄 알고 있습니다. 말도 해본 적 없는 상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겠죠. 그래도 상상이지만 해답이 떠오르면 묘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문자답 공상을 계속 해오고, 있었습니다.



근데 앞서 늦은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타는 지하철 막차 앞뒤로 만난 사람들에게서 , 그런 공상이 99퍼센트 이상 가미된 공상의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억지 상관성과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해결책 역시 통하지 않습니다. 백 번 이상 상상회로를 돌려도 억지 답에 불과합니다. 애시당초 상대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해결책을 떠올리려는 행동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마우스 커서 깜빡임 30번을 너머 글을 적어봄은 어떤 작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밤이 지나가면 기억에서 잊어버릴 것 같아서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반화시켜서 답을 내기 어려운 '포기'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글은 자기 다짐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 자신도 포기라는 것을 떠올리기 싫지만 그러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별의별짓을 다하고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이 있었거든요. 옆에 통유리 창이 보이는데 내일도 이 상황을 겪어야하니까 답 없어 보이더군요. 그 통유리 창에서 1층까지 얼마나 높을까 그 높이를 상상해본 적이 있었어요. 삶이 버겁게 느껴지고 생전 처음으로 무거움이 저를 밀어내고 있었어요.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물 밀듯이 일 초의 여유도 없이 끊임없이 밀려오더군요. 여기에는 저의 일만 있지 않겠죠?


제가 밤 11시 넘은 지하철 막차, 서울의 밤 거리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얘기하다가, 제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도 있습니다. 어쩌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굉장히 익숙한 어떤 보이지 않은 연결이 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요. 요즘 제가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어딘가 익숙한 시간이라는 것이에요. 무슨 말 이냐면 처음 가는 곳으로 전혀 와본 적이 없는 길인데 되게 익숙한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여기 어디에도 저하고는 관련이 없는 곳인데 언젠가 한번 와본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경우가 있어요.

진짜 신기한 것은 마치 예전에 정말로 와본 것처럼 그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길을 잘 찾아요.



또 한번은, 10년도 더 전에 길 위에서 신기하게 보고 있었던 것을, 지금의 제가 하고 있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해서 호기심과 신기함의 눈치로 봤었던 것을 제가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정확히 무슨 현상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래요. 분명 시간이 흐르니 미래인데 굉장히 익숙한 과거의 한 장면 같다고 할까요?



이게 두드러지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요. 상황도 다르고 시기도 물론 다르지만, '포기' 하고 싶을 때, '도망' 치고 싶을 때 굉장히 익숙한 감정의 패턴이 보일 때가 있어요. 포기하려는 대상 역시 다르지만 그때 당시에도 포기와 도망이 저를 벼랑 끝으로 미루고 있었어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줄다리기 끈을 잡고 또잡고 있다가 아슬아슬해지면서 정말 이제 죽겠다 싶을 때에 끈을 놓아버리기도 했죠.



그러면 그때 잠시 해탈감을 느끼고 안도감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똑같았어요.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저 스스로 아직 변명할 기력이 남아있으면 아직 포기하기는 이른 거예요. 저 자신에게는 말이죠. 도망간 곳에 천국은 없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셨느데, 아직 변명할 기력이 남아있는 상태에서는 채찍질하기 좋은 것 같아요.



제가 밤 11시 넘은 야심한 시각에 지하철 막차 앞뒤로 만났던 분들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중간에서 얘기드린 것처럼 나는 분명히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상황도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 있겠죠. 이미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게 처음은 아니니까. 다만 익숙해 지려고 틀을 잡는 익숙함에 '도망간 곳에 천국은 없다' 조언이 적용되는 포기도 있으니 구분지을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글로 쓰는 이유도 같습니다. 글로 쓰면 강력하게 기억에 남는다면서요? 비슷한 미래의 상황이 초래된다면 (지금 강력하게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그에 대한 글도 쓰면서 하나씩 풀어내고 있음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답이 없는 해결책 언급을 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겠어요. 이렇게 말씀 드리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스쳐 지나간 인연이지만 어찌되었든 그렇게 처음 뵙는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심했지만 스스로 답을 얻지는 못 하였습니다. 저는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무슨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존재의 새끼 발가락 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다만, 덕분에 하나씩 기억을 되짚으며, 미래가 과거가 된 듯이, 미래시간에도 묘한 익숙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혹시, 밤 11시 넘어 지하철 막차 타기 전과 후에 뵙었던 분과 같은 분이 계시면 잘은 기억나지 않으시겠지만 언젠가 한번쯤은 포기의 순간에 아주 작게라도 해결하였던 익숙함을 찾아보시면 어떠실련지 싶습니다.



처음 겪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오늘과 내일이, 그래서 너무나도 힘들었던 오늘과 내일의 어느 작은 부분에서는 익숙함을 떠올리게 되실지도 모르니까요.



미래는 때론 과거로 흐른다.

우리는 아주 작은 실마리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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