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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해리 Jun 16. 2023

9. 심장이 뛰지 않으면 콜해요 (낭만닥터 김사부)

다시 찾으려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립니다. 돌담병원으로 쏴요.

살면서 가면 안 되는 곳이 병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돌담병원. 낭만닥터 김사부가 소속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죠. 미스터 구가 항시 수 쌤과 대기하고 있는 곳이죠. 돌담이 낳은 의사들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낭만닥터 김사부 1, 2, 3 시리즈를 정주행은 못 하였습니다. (정주행 계획, 있음) 방송사 유튜브 채널에서 짤막하게 올려주는 클립 위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는 클립 위주 시청이다 보니 스토리 앞과 뒤 관계들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 하였습니다만. 낭만닥터 김사부와 그의 팀이 품어내는 아우라는 알겠습니다.


특히 요즘 밤샘 작업을 하면서 즐겨듣는 bgm 목록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단연코 낭만닥터 김사부 하면 떠오르는 그 bgm은 천번, 만번 들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3시간째 듣고 있어도 계속 듣고 싶습니다. hope of hospital. 가사 없는 bgm이지만 bgm 이름처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hope (of hospital). 희망.


어느새 내 나이도 30줄. 30대 중반. 사자와 같은 용기로 대담하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한 움큼 꽉 쥐려고 하면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모래들이 빠져나갑니다. 요즘 저의 하루가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며칠 전이었죠. 알고 지낸 거로는 10년 가까이 (아니, 10년이 넘었나?!) 옛 어른이 그랬어요. 만남이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 멀어지는 게 바로 인연이라고. 결혼이 있고 출산이 있고 또다른 세계를 접하게 되고, 결국 양측의 사람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게 되면 만남이 줄어들고 몸과 마음이 멀어지죠. 아,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성으로서의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인,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인 실타래 같은 인연들을 모두 말하고 있어요.


기억 저편에서 익숙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이름으로 카톡이 울렸습니다. 각자 살아가는 인생이 바쁘다보니 몇 년의 시간을 건너서 연락을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좋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좋습니다. 반가 웠습니다. 제가 힘든 시절을 보낼 때 은사 같은 분이었거든요. 시간을 달리는 연락을 받은 저는 빛나는 갈기의 사자보다, 어딘가 수수한 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인생이 주는 구정물도 묻히지만 여전히 달리며 수시로 배고픔과 갈증 그리고 짧게 지속되는 승리를 사냥하는 사자였습니다. 옆과 뒤는 보지 않는 경주마이기도 했죠. 특히 요즘에는, 더욱이 그랬습니다.


그 연락을 받고 나서야 옆과 뒤를 돌아보고, 상체와 고개만 뒤로 젖혀서 더 넓게 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다그치는 채찍, 등 뒤에서 후려치는 채찍질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우뚝 섰습니다. 서 있는 동안에 채찍질은 자비없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나는 아픔에 대한 내성과 함께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들었습니다.


내 손에는 모래의 흔적만 남아있고, 신발 등으로 떨어진 모래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밤샘 작업들을 많이 하고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고 자부하였습니다. 퇴근하는 차의 경적소리에 이어서 새벽 신문배달 해주시는 분들을 거쳐 다시 출근하는 차의 경적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밤을 새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승모근은 운동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거북목으로 점점 단단해졌거든요. 그리고 매일 옷을 선택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여겨졌습니다. 동굴 속에서 살았던 사람처럼 일상에서 어긋난 경험들을 하는 날이면 박쥐처럼 더듬어서 하루를 살아가는 날도 있었죠.


저에게는 시간을 느끼는 경우도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직접 시계를 확인하는 경우가 있고요. 그게 아니라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접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떻게 남을 통해 가능하냐? 기억 속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을 때 세월이 느껴질 때 시간을 체감합니다. 아마 오랜만에 받은 그 연락이 시그널이었습니다. 아 벌써 이렇게 시간이, 세월이 흘렀구나.


뻣뻣해지는 몸조차 그런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단서이죠. ‘나는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젊은 놈이 왜 이러고 있지?‘ 이 단순한 질문에서 허덕이는 날이면 그 세월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생각해 봤어요. 지금의 내 모습이 내 인생 종착지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내년과 내후년도, 예상되는 게 턱없이 기운을 빠지게 만들더군요.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하루를 보냈고, ‘시간‘ 관점에서 본다면 저는 24시간이라는 그물을 촘촘히 만들어 왔습니다. 좋은 기억으로 본다면 오후 11시 59분 해피 뉴이어를 외치기도 했고. 오후 4시 40분 달달한 코카콜라 한잔과 석양을 어디선가 바라봤으며, 오전 5시 50분 지하철 첫차를 기다리며 새벽 특유의 냄새에 도취되기도 했습니다. 나의 24시간은 촘촘하였습니다. 어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도 안전매트로 유용할 정도로 빈틈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할까요? 다시 말해 내 인생에서 질리는 수준에 이른 것입니다. 부정하여도 사실은 사실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없을 것이라 자신했었던, 인생 노잼 시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infj 인프제. 순도 높은 얼음장이라서 더욱 눈에 띄는 미세한 균열이 싫습니다. 인생 노잼 시기라는 걸 직감하니까 내일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습니다. 인생 노잼이었거든요. 요즘은.


계속 이런 상태를 유지하면 주변까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 꼭 책상에 붙어있는다고 답이 나오나요!? 바깥으로 나가서 업무를 봤었습니다. 그래서 답을 찾았을까요? 아니요. 찾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탱탱볼을 바닥으로 던지면 튀어 올라야 하는데, 무슨 습지대처럼 축 가라앉는 기분이었어요. 던지면 던지는 대로 가라앉았고 형태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나에게는 돌담병원, 낭만닥터 김사부가 필요하였습니다.


근데 어느 날이었어요.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종종 있어요. 하늘에서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나를 향해 비추는 것 같은 순간이요. hope of hospital. hope of life. 본업과 달리 딴짓을 좀 하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은 수단이야. 종착지가 아니야.’


아까 24시간이라고 했었죠? 지금까지 살아온 24시간이라는 우주에서 떠돌다가 어떤 별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별은 꽤나 익숙한 어떤 장소였습니다. 00월 00일 0요일 0시 0분.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길이었는데요. 마침 출국시간까지 충분히 남았고 공항 근처이다 보니, 공항 인근 마을을 걸어보자고 했었죠. 일단 공항에 가서 수속을 하고 비행기 티켓만 가지고 다시 공항 인근 마을로 향했습니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고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는 곳이었어요. 한적하였습니다. 평일 낮 시간이기도 했고 우리가 아는 상권과 인프라가 많이 구축된 곳은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한 동네였습니다. 저는 걸었습니다. 저는 걸으면서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때도 참 많은 생각을 했었어요. 나는 국내 일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었고 이 걸음이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초저녁 집집마다 밥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제는 나도 정말로 공항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었어요. 공항으로 이어지는 전철역 앞에는 역세권 호텔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요.

저녁을 먹으러 가는 사람, 체크인하러 들어가는 사람으로 역 주변과 호텔 앞은 한가로운 듯 번잡하였습니다.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꼭 돌아가야 할 의무가 없다면, 내가 원할 때 돌아가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나는 돌아가야 하고, 내가 맡긴 수화물은 이미 비행기 카고로 향하고 있을터, 다음을 기약하자.‘


전철 정기권이 아닌 일회권을 사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다시 2023년입니다. 약간의 돈만 있으면 이제는 저는 그때의 바람을 이룰 수 있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원한다면 타인의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대한 책임만 질 수 있다면 언제든지 원하는 곳에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꼭 돌아가야 하는 곳이 인천공항, 한국일 필요도 없지요. 다른 곳을 경유한 다음 돌아와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 나의 자유로운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하니까, 지금 겪고 있는 것들이 나의 끝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돌담병원. 낭만닥터 김사부가 필요했던 이유는, 나의 잊고 싶지 않지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만큼) 잊히기도 쉬운 꿈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나의 꿈을 잊고 지낸 최근이었습니다. 꿈에 대한 처방전이 필요했습니다.


왼손 팔목에 채운 워치에서 심박수를 감지하였습니다. 빨간색 하트 모양으로 심박수 아이콘이 나오는데요. 최근에는 두 자리 수의 심박수가 대부분이었습니다만, 그 순간 세 자리 수로 바뀐 것을 똑똑히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이름 모르는 경유지에 있을 뿐, 나는 언제든 다음 정거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가 내 인생의 끝이 아니다고 생각하니까요. 나의심장은 형체 없음에서 다시 하트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거였어요. 내가 왜 내일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내가 왜 팍팍한 채찍질에 나를 담금질하기만 했는지. 내가 왜 맨날 똑같은 일상에서 나의 자아를 깎아먹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진짜 요 며칠 밤샘 작업하면서 휴식이라는 휴식을 취하지 않았는데요. 다음 정거장에 대해 생각했던 날에 자양강제를 먹지도 않았는데 사자의 기운이 솟구쳐서 그 에너지로 밤샘 작업을 강행하였습니다.


나의 인생이고. 오늘은 나의 게임이며. 지금은 나의 규칙에 의해서. 내가 설계하고 주도하는 인생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우리가 가오가 없지 돈이 없냐? 어떤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요. 나에게는 모래알 같은 꿈이 있었습니다. 너무 콱 움켜쥐어서 두 손 모두, 지저분하게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내 손에는 모래알이 잡히지 않는다고 낙담했지만. 모래 바닥에서 다시 주어서.. 가지고 놀 수 모래알이 발 등에 있었습니다.


모래알을 제대로 잡으려면 주먹 쥐듯이 콱 쥐는 게 아니라, 그릇처럼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모래알을 느끼고 가지고 놀아야 합니다. 돌담병원 낭만닥터 김사부라면 저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요?


강동주 : “무모하고 무책임하고 위험한 처치였습니다.“


김사부 : “그래.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환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었다는 뜻이지.“


강동주 : “나중에 환자한테 자신이 받은 처치에 대해서 설명해도 괜찮겠습니까?“


김사부 :

“환자의 인권? 의사로서의 윤리강령?”

“내 앞에서 그런 것 따지지 마라.”

“내 구역에서는 오로지 하나밖에 없어.“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


“다른 건 그냥 다 엿 많이 잡수시라고 해라.“



당분간 저도 하나만 기억하려고요.


“꿈꾼다!”

“무슨 일이 있어도 꿈꾼다!”


(만약 지금 엿 많이 잡수게 되어도 이게 나의 종착지는 아니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을, 꿈을) 놓치기 전에 콜해요

심장이 뛰지 않으면 콜해요

다시 찾으려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립니다. 돌담병원으로 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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