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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해리 Aug 13. 2023

16. 수능 국어 포기자, 돈도 안 되는 철학을 구하다

생애 최고 수익을 올렸다. 행복하지만 두려웠다. 무서웠다.

지난 8일 수능 디데이 100일이었습니다. 폭염 속 열공하는 가운데 응원 메시지, 선물, 공부법, 기적 키워드들이 연관 검색어로 나옵니다. 특히 컨디션 조언이 많습니다. 서울경제에 박정훈 인천힘찬종합병원 신경과 센터장님 조언이 실렸습니다. ”수능시험 당일까지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심리적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이 수능 성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불안과 긴장 완화를 위해 명상이나 가벼운 운동, 충분한 수면 등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불안과 긴장 완화, 심리적 안정감 유지는 수능 컨디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 수능을 앞둔 범 수험생들은 어떤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을까요?


2020년 서울연구원 자료는 고등학생 스트레스 원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1.8% 비율로 ‘성적’ 요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동일 자료는 전국 청소년 스트레스 인지 정도 역시 ‘대단히 많이+많이 느낀다’ 응답 비율이 34.1% 씩이나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인지 조사를 한다면 3명이 ‘그렇다’ (그것도 많이) 응답할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 역시 ‘그렇다’ 대답했을 것입니다. 중고등학생 과목 편식이 심했습니다. 과목 선택 전략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인 기호에 따른 과목 편식하였습니다. 수능 국어 성적 변화가 없고 하위권에 머무니 흥미를 잃었습니다.


숙명여대 최시한 명예교수님께서는 “독해력은 능력이요, 수준의 높낮이가 있다. 그것은 표현 즉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드러난다.”라고 말씀하시며, ”문해력을 길러준다는 참고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자기 주도 언어능력 기르기’에 필요한 것은 참고서가 아니라 시간과 노력이다.“라고 수능 국어 본질에 대해 첨언하셨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수능 국어에 흥미를 잃은 이유는 독해력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평생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지 않다가 필사적인 노력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기 주도 언어능력 기르기‘ 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에 대한 메타인지가 낮았습니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압도적인 노력의 양을 내세우기는 의지가 빈약하였습니다. 모두 열심히 하는 가운데 ’열심히‘는 승부를 낼 수 없었습니다.


수능 디데이 100일 전은 열등감을 분출시켰습니다. 불안은 곧 부모님에게 향하게 되었죠. 수능 국어 열등감 덩어리는 고3 상전이었습니다. ‘나는 한국사람인데 왜 국어를 가장 못 할까? 다 부모님 탓이야!‘ 후회스러운 일은 동시에 온다고 하죠. 처음으로 대학교 학사 학위를 가진 아버지에게 대학 전공을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전공이 무엇이었어요?

철학을 전공했지.

철학과 출신인데 왜 철학과 관련이 없는 일을 하세요?


못난 질문은 침묵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의식은 철학을 경멸하였습니다. 전공으로 먹고살지 못하면 그 전공은 왜 존재하는 걸까? 철학은 아무짝에도 쓸데없구나. 나는 절대 안 할 거야.


지난 6월 동아일보 손효림 문화부장님 기사를 봤습니다. < 방황의 시간이 길어 올린 뜻밖의 열매 > 헤드라인 오피니언입니다. 2002년 부커상 수상작 ’파이 이야기‘ 인터뷰로 오피니언을 시작하셨습니다.


“솔직히 ‘파이 이야기’는 아무도 안 읽을 줄 알았어요.”


50개국에서 1200만 권 넘게 판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한 ‘파이 이야기’를 쓴 얀 마텔 작가는 이렇게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얀 마텔 작가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는 데, 얀 마텔 작가는 한때 인도에서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집필했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실패에 집착하는 대신 생기를 얻지 못한 이야기는 접었다고 합니다. 이후 느릿느릿 지내다 보니, 보지 못했던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고 회상하였습니다. 그렇게 ‘파이 이야기’의 단초를 얻었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대학 전공 철학은 고3 시절 죽어버린 이야기였습니다. 평생 그럴 줄 알았습니다. ‘철학’을 모른다고 해도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죽어버린 이야기는 죽어버린 채 방치하였습니다. 당장 효과가 있고, 신속하고 자극적인 나만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추방시킨 철학을 살리고 싶어 졌습니다.


큰돈을 벌었을 때 철학과 재회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1달 기준 최고 수익을 올렸습니다. 제 기준에서 큰 금액을 버니까 하루 정도는 심리적 금융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돈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5060분의 1. 한 해 동안 한 사람이 벼락을 맞을 확률(50만 분의 1)보다도 낮다고 합니다. 로또 1등 당첨자의 몰락은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불행의 시작은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모른다’라고 봅니다.


로또복권 1등 당첨금에 비하면 개미 발톱보다 작은 수익이었습니다만, ‘그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느낌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지금 한 번은 현명하게 지나간다고 해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고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짐 바우펠 교수는 120세 이상, 그리고 캐나다 맥길세 지그프리드 헤키미 교수는 150세까지 인간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심지어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마르텐 로징 교수는 사람의 절대적 수명은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위 교수 3명 주장이 옳다면 앞으로 최소 80세에서 최대 110세 이상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인데, 매번 이렇게 작은 변화에 흔들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자 언론인 출신 건국대학교 손석춘 교수님께서 “모름을 인정하고 그 어둠을 벗겨내는 게 철학 아닐까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인생에서 무거운 단어 ‘철학’을 이렇게 재회하였습니다.


철학은 이미 죽어버린 단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인터넷에서 철학을 검색했습니다. 마르크스, 칸트, 니체 같은 이름도 봤지만, 어떤 분들은 떳떳하게 ‘나만의 철학’을 공유하고 계셨습니다.


철학 [명사]

1.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2.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 따위를 이르는 말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두 번째 정의라면 나 역시, ‘흔들리는 인생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를 가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비록 그 철학은 첫 번째 정의를 만족하지 못 하겠지만 말이죠.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파이 이야기’ 얀 마텔 감독이 죽어버린 이야기에서 ‘파이 이야기’ 단초를 발견했듯이, 저 역시 죽어버린 철학에서 흔들리지 않는 단초를 만들 수 있겠죠? 철학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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