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노자 아홉수의 이별
얼마 전, 열심히 이어왔던 4년 간의 긴 연애가 끝이 났다.
헤어지고 난 직후에는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을 우리가 너무 슬펐고 두려웠다.
아직은 이별 노래를 들으면 감정의 홍수가 밀려와 그 자리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곤 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그 말, 나도 곧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는지. 이유가 어찌 됐건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몇 번 하고 나니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도 나도 쉬워진 듯했다.
연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성장시켜 주는 나의 발판이 되기도, 친구와 가족의 빈자리를 채우듯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응원하기도, 서로에게 가장 아픈 말을 하며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헤어지고 나니 또다시 서로를 알기 전과 다를 것 없는 남이 되는 그런 것.
취업 준비부터 어엿한 직장인이 될 때까지 곁에서 서로를 응원하던 우리는 하루아침 남이 되어 버렸다.
서로의 취업 성공의 순간에도, 사회초년생으로서 사회에 적응하려 애썼던 시간들도, 이직을 고민하는 직장 3년 차의 고충을 나눴던 순간들이 이제는 소중한 추억이 됐다.
얼마 전 그와 함께 자주 만났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 친구에게 근황을 전하다가 그와는 헤어졌다고 말했다. 아직 내게 그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는지, 나는 우리가 헤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 푸념 늘어놓듯 이야기하다가 그때의 감정이 솟구치자 친구에게 이미 끝났는데 뭐 하냐며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만나니 겹쳐 아는 지인들도 꽤나 있다. 가끔 그들에게서 듣는 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쾅하고 가라앉는다. 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난 건 아닌 지 두려웠던 것 같다. 왜 이별 노래에서 헤어진 연인이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가 아무도 만나지 않았으면, 내가 평생 그의 1순위였으면 하는 그런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순수하게 그의 행복을 바라기엔 아직 그간 4년 동안의 마음이 다 소진되지 않았나 보다.
20대의 절반을 함께했던 그와 마지막으로 만나 제대로 이별을 하고 싶었으나,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상황 때문에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꽤나 오래전 일이다. 그래서 더 우리의 헤어짐에 대해 큰 무력감을 느꼈던 것 같다.
장거리 연애라는 것이 둘 중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인데, 서로에게 오지 못 하는 서로를 탓했다. 함께일 땐 그 누구보다 더 재미있고 행복했지만, 장거리 연애의 끝자락에는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게 했다.
그는 우리의 헤어짐이 장거리 연애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묻지 않았었다. 이미 서로 헤어지는 이유를 가슴 깊숙이 안다는 듯 서로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만 공유한 채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연인마다 헤어진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것을 조율하고 양보하며 관계를 잘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들 자신이다. 우리는 다름의 간격을 결국 좁히지 못했다.
그와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가치관의 방향부터 달랐다.
나는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그는 하루빨리 자리를 잡고 싶어 했다.
나는 더 높은 곳, 더 좋은 것을 쫓았고, 그는 안정감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는 자신의 안전한 바운더리 안에서 만족하고 살며 한국에 정착하고 싶어 했고, 나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해외에 정착하는 삶도 고려했었다.
서로가 있는 곳에 닿으려는 노력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자의 꿈과 목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우리가 더 서로를 사랑했다면 각자의 현재 삶을 포기하고 함께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필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했던 것이다.
믿음, 참 짧지만 힘이 강한 단어.
누군가를 잘 알고 믿는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진다.
그의 상식 안에서 나에게 상처 주는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각자의 생활에 치여 살다 보니 서로를 잊고 연락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서로를 신뢰했지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그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조차 부족했던 것 같다. 나에게 신뢰를 주려던 그의 노력을 잘 알았지만, 고마워하지 않았다. 바쁘게 회사생활 하며 나에게 줬던 그 연락들도 당연히 여겼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락이 끊기면 불안한 마음에 그가 잘못한 일도 아닌 것을 잘못했다고 몰아붙였다.
그 사람은 늘 내가 자기의 0순위라고 했었다. 내가 한국에 오는 날이면 모든 제쳐두고 나를 만났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메모장에 적어 두며 나를 알아가려고 했던 연애 초기 때부터 그는 한결같았다.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나를 늘 특별하게 대해 줬었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 그의 관심과 사랑을 점점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너무나도 익숙해진 그의 선의와 배려에 나는 고맙다는 텍스트 인사가 다였다. 그가 어떤 노력을 어떻게 했는지, 얼마나 힘들게 나를 위해 힘썼는지 묻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에게도 마지막 날 말했지만,
그를 대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변해버린 내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고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지쳐버린 내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상처 주고 숨 막히게 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는 우리의 관계에 지치지 않았지만 내가 그를 지치게 했다. 내가 그의 손을 놓은 것이다.
인간관계를 정리할 때 자신을 탓하는 건 참 아픈 것인데, 아직 나는 이렇게 되어버린 우리에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충분히 어른스럽고 좋은 사람이라 이미 알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최선을 다 한 거라고.
그가 그랬다.
감정을 다 정리하고 만나서 헤어지는 건 드라마에서나 하는 것이라고. 자기는 그러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때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지만, 이젠 어느 정도 맞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났더라면 헤어짐이 더 어렵고 괜히 무너지는 모습만 보였을 것 같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다.
가장 빛났던 시간을 함께해 준 사람과 함께 성장했고, 4년 동안 함께여서 행복했다.
끝까지 노력했고, 최선을 다 했다.
그거면 된 거다.
곧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 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