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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스 Dec 30. 2022

0.007 크리스마스 마켓

한 평만큼의 세상 07


유럽의 겨울은 도시마다 공공장소에는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독일에 인접한 프랑스 지역에서 시작된 이후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서울에서는 광화문광장 한쪽에 자그맣게 선 것을 본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맹추위 때문인지 활성화되지는 못한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몇 가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장소와 시간에 관한 것들이다.


비워진 광장 vs 채워진 광장


유럽의 도시는 중심이 되는 곳에 대성당이 있거나 시청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언제나 광장이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도시 곳곳에서 열리지만, 가장 규모가 크고 상징적인 마켓은 도시 중심 광장에서 열리는 것이다. 중심 광장은 각종 축제에도 사용되지만, 1년에 30일에서 50일 정도는 겨울 마켓 가판대로 가득 채워진다. 1년 중 각종 축제가 있다 해도 이런 식으로 광장을 차지하는 일은 드물다. 우리의 경우 5일장이 있었고 주기적인 성격을 지니는 점은 같을 수 있으나, 오랜 기간 장소를 차지하지는 않았다. 장이 서는 날 가득 매웠다가 모든 게 치워지고 다시 5일 뒤에 섰으니까. 크리스마스 마켓은 비워진 광장과 채워진 광장을 극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풍경을 제공한다.   


대성당 vs 가판대  


지역마다 겨울이 다르겠지만 우리처럼 3개월이라고 한다면 그중 절반 이상을 크리스마스 마켓 가판대가 광장을 채운다. 그리고 그 여백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다. 이 시기에 도시의 가장 공적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무겁고 고정된 대성당과 가볍고 움직이는 가판대다. 수십 년 동안 짓는 건물과 몇 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모듈 상자 같은 가판대들이 도시의 겨울, 도시의 광장을 책임진다. 대성당 중에는 140년째 건축 중인 사그라다 파빌리아 대성당(바르셀로나/안토니오 가우디)도 있는 것처럼 도시마다 대성당이 담고 있는 시간의 무게는 엄청나다. 그에 비하면 가판대 모듈의 군집은 가벼운 것들의 향연이다. 어깨와 어깨를 맞대어 오와 열을 맞춰 서고 그 사이 사람들의 인파로 가득 차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빛과 색에 모여든 사람들의 온기가 더해진다. 마치 가벼우면서도 잘 스며들고 잘 빠져나가는 스펀지와도 같다.   

지구에 올라탄 가장 무거운 건축과 가장 가벼운 건축이 사람들로 하여금 일 년 중 가장 흥분된 시간이 되게 하고, 가장 즐거운 장소를 만들어낸다.  


거룩 vs 일상    


가장 거룩하다 생각했을 공간과 가장 세속에 부합할 것들을 주고받던 공간이 나란히 있다. 사람들은 광장에 가득 차는 가판대와 모여든 사람들에 뭔가 뿌듯한 것들을 느끼며 그 속으로 들어간다. 언제든 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을 지척에 두고 있으니 한편으론 든든하다. 거룩과 일상이 나란히 병치되어 있다. 둘의 공통점은 거래이고, 다른 점 역시 거래다. 내용을 떠나서 신과 인간은 주고받는 관계다.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 거저 주어지는 것, 그래서 소위 은혜라고 얘기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그 거래는 양방향이라기보다는 일방향이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주고 누군가는 받는 것이니 거래는 거래다. 다른 점 역시 거래라고 한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다. 하나는 계산적일 필요 없는 거래이고  다른 하나는 계산이 필요한 거래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둘 다 필요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서울에도 부산에도 열릴 수 있으나, 유럽의 도시들에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조금은 있는 것 같다.


변하지 않는 시장 vs 확장된 시장


600여 년 동안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시장이라는 것이 유일한 교류와 소통의 장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시장은 의미가 넓어졌고 시장이 일반화된 사회다. 즉 농수산물시장, 주식시장, 사채시장, 외환시장, 노동시장, 선물시장.. 등과 같은 확장된 의미의 시장이 많이 생겨나고, 사회 속에 깊이 관여하고 스며들고 있다. 재래시장이 더는 교류와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억지스러워 보인다. 재래시장은 재래시장대로 변하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사회는 다양한 것들이 반영된 다양한 시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둘은 겹쳐지고 있다. 더욱 낭만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잃어버릴 것 같은 시장이 한쪽에서는 살아있고, 한쪽에서는 변하고 새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지속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 도시에서 어떤 행위가 낭만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더 이상 그 도시에서 그 행위를  찾아볼 수 없을 때이다. 장소를 오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로 지워졌던 과거의 행위를 재현하는 것으로 낭만과 향수를 끌어내기도 하는 것 같다. “


앞서 발행한 ‘도시는 나의 무대’라는 글에서 적은 걸 가져왔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개인들이 지니고 있던 이런 욕구들을 한 해를 보내면서 차분하게 정리하고 내어놓기도 하는 공간이다.


도시들 가운데는 12월 24일 이전에 마켓을 마감하는 곳도 있다. 생각해보면 가족들과 함께 하려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꽤 즐길 만한 도시 축제가 가족 또는 가정에 우선순위를 내어주는 것은 인상적이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 또한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수백 년 동안 크리스마스 마켓이 지속될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파리. 크리스마스 마켓. 에펠탑 인근 너른 공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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