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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스 Jan 11. 2023

0.008 패키지로 온다는 것

한 평만큼의 세상 08


이런 패키지를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종합선물세트라는 게 있었는데 당대의 트렌드가 될 만한 과자는 다 들어가 있었다. 종합선물세트 상자를 받으면 어린 마음에 부자가 된 것마냥 좋아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으니 기억이 아니 날 수가 없다.


요즘은 참 다양하게 패키지 박스가 사용된다.

오늘 아침 재활용 분리수거 정리를 한 것만 생각해 봐도 선물용도 있었고 단순 판매용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거래에는 매번 패키지 박스가 사용되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대면으로 물건과 화폐를 주고받던 것이 전부였던 시절은 그렇지 않았다. 물건이 거래 당사자 간 사람과 사람으로 바로 넘겨주고 넘겨받아야 했던 시절에는 패키지에 담아야 할 물건은 좀 특별하거나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는 경우들이었다. 대면 거래가 줄어들면서 물건은 패키지에 담아야 할 일들이 더 늘어났다.   


이젠 상자에 담기는 물건에 설레는 마음은 많이 줄었다.            

웬만하지 않고서는 패키지에 담기지 않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패키지로 온다’라고 할 때는 몇 가지 의미가 겹쳐서 생각하게 된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닌데 원래 받기로 한 물건에 함께 묶여 온다’라는 것과 ‘바라고 있던 것들이 온전한 한 세트가 되어 주어진다’라는 것이 그렇다. 대체로 후자를 바라지만 현실은 전자인 경우가 많다.     


몽마르트르에서 약간은 경사진 주택가를 내려와 조금 완만해질 즈음 길가에 상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빵을 사기 위해 빵집을 찾아다녔는데 치즈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곳 사람들, 치즈 사랑은 또 빼놓을 수 없지 않을까. 길가에서 대충 훑어보아도 너무나 다양한 치즈들이 지나치려는 발길들을 불러 세운다. 그 가운데 패키지 속에 들어있는 치즈들이 눈에 띄었다. 이 겨울에 자기 집이 있는 치즈들.


이걸 보니 ‘패키지로 온다’는 것의 세 번째 의미를 추가하고 싶어졌다. ‘선별된 것들이 온다’이다. 물론 위에 두 번째 의미와 비슷한 것 같지만, 바라고 있는 것들을 좀 더 따져보고 견주어보고 고르고 골라서 담는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에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선별된 것들이 패키지에 담길 때는 좀 더 목적지향적인 것 같다. 주는 목적과 받는 대상이 누군지 명확할 때 선별되는 것이 필요하니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 번째 경우는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들이 담겨오는 경우고, 세 번째 경우는 누군가를 위해 내가 따져보고 고르는 의미가 강한 것 같다.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건 아니다. 여하튼 둘 다 좋다. 첫 번째만 아니면.


이 치즈 상자는 사고 싶어졌다.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간소한 짐을 유지해야 하는 여행자 신분인지라 그러지는 못한 것이 아쉬웠다. 어릴 적 ‘종합선물세트’라는 말이 희미해질 정도로 세상에는 관심을 끄는 물건과 일들이 많아졌다. 어쩌면 인생이 여행자의 마음 같아서 저 치즈상자를 구입하는데 머뭇머뭇하는 것 같은 일들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정주하고 여행하고 정주하고 여행하고.. 를 반복하는 게 살아가는 거라면 틈틈이 누군가를 위해 또 무언가를 위해 세심하게 고르고 골라 담아두는 일들을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또 바라던 것들이 온전한 한 세트가 되어 어느 날 불쑥 날아오는 날이 있지 않을까.


몽마르트르 언덕을 내려와 주택가를 벗어나자 치즈가게가 눈에 띄었다. 그중에도 치즈상자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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