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런 분인 줄 알았다.
늦은 밤 퇴근 후 식구들이 먹다 남긴 식은 치킨을 쓸쓸히 저녁 식사로 때우는 사람,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을 먹어주는 사람, 함께보다 혼자가 더 익숙한 사람, 언제나 강하고 단단한 사람, 그 모습이 익숙해서 그저... 그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불을 켜고 찾지 않고, 왜 캄캄한 데서 그러고 있어.”
30년이 넘도록 캄캄한 터널 속을 걷고 있는 딸에게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직도 딸자식이 남들처럼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슴 한켠에 화석처럼 자리하고 있어서일까?
보이지 않는 딸의 손을 잡고 성당으로 향하던 그 힘겨운 나날들 속 수많은 발자국 위로 얼마나 많은 희망의 씨앗을 뿌려 놓으셨을까.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그분을 아버지도 나만큼이나 원망하셨을까?
아버지를 떠올리면 뽑히지 않는 커다란 생선 가시가 목에 박혀 있는 것 같다.
아프고, 불편하여 뽑고 싶지만 맘처럼 쉽게 되지 않는 그런 커다란 가시가 한쪽 목구멍을 꽉 메우고 있는 것처럼 아프다.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싫었다. 유리벽을 만들고 그 벽 밖으로 점차 멀어진 것은 정작 나이면서도 그 원인의 화살을 모조리 아버지에게로 돌렸다.
모든 것이 싫었다, 다른 아버지들처럼 자상하지 못한 면도, 앞이 보이지 않게 세상 밖으로 내보내 놓은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미안해하지 않는 모습까지 모조리 다 싫고 원망스러웠다.
연신 쌀쌀맞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무관심으로 관계를 단절시켰다.
“아빠가 부족해서 미안하다, 너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항상 미안하구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심장이 뱃속으로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나까지 무너져 내리면 아버지가 더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정신줄을 부여잡고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아프지 말아라, 네가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만 지내면 아빠는 더 바랄 게 없다.”
전화기 너머에서 아버지가 흐느끼셨다. 단단하고 강한 줄만 알았던 그런 아버지가 울고 계셨다, 다름 아닌 나 때문에.
아버지에게 나는 늘 아물지 않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 아버지 마음에 나는 또 한 번 커다란 대못을 박고 말았다. 아프지 않고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 몰랐다.
어머니는 가끔 어머니가 보고 싶다 하신다, 아버지도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겠지? 내색할 수 없고 드러낼 수 없어 더 괴로운 아버지 마음을 단 한 번도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여태 그 마음을 알지 못했고, 한 번도 헤아려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표현하지 않아 사랑이 아닌 줄 알았다, 사랑하지 않아 표현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리라 여겼다.
하지만 미움도 사랑의 종류 중 하나임을 이제는 안다, 내가 품어 온 감정들이 결국은 사랑이었음을, 그리하여 아무리 밀어내려 발버둥 쳐 봐도 사랑이니까 사랑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행복해져 보려 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다. 더는 아버지가 나 때문에 가슴 아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