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메세타의 나비 - 6
“어떻게 된 거예요?”
신부님은 믿기 어려우면서도 반가움이 한가득인 기색으로 물었다. 난 푸짐하게 나온 볶음면을 후루룩 입에 넣었다.
“오늘 리온에서부터 쭉 걸었거든요.”
“리온에서부터?”
신부님의 입이 쩍 벌어진다. 이수도다.
“재인 씨가? 20km 이상 안 걷겠다고 칼 같이 못 박았던 사람이?”
“그러니까요.”
나는 객쩍게 히죽 웃었다. 정말이지, 그랬다. 그걸 지키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굴었건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거의 지켜진(?) 적도 없었다.
“대단하네. 안 피곤해요?”
“진짜 이상한데, 평소보다 오히려 덜 힘든 것 같아요.”
신부님은 안 믿긴다는 표정이다가 그만 웃어버렸다.
“놀라운데 놀랍지 않기도 하네요. 재인 씨는 우리 중 누구보다 가볍게 걸었으니까요.”
“근데 두 사람은 왜 아직도 여기예요? 나보다 이틀은 앞서 있을 줄 알았는데?”
“아, 그건 나한테 일이 좀 생겨서 그렇게 됐어요.”
“무슨 일요?”
겉보기엔 멀쩡한 신부님께 일이라니? 어리둥절해하는데, 그가 식탁 아래에 내려두었던 팔을 올려 보여 준다. 난 그 팔을 보고는 기함했다.
“팔이 왜 이래요?”
신부님의 팔 하나가 불구죽죽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다. 바늘로 쿡 찌르면 피든 뭐든 분수처럼 솟을 것 같다.
“벌레한테 쏘인 것 같은데, 무슨 벌레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다리도 엉망입니다. 어쩔 수 없이 지나던 마을의 병원에 들렀다 오느라 하루 지연 됐고요. 그랬더니 오늘 재인 씨가 단번에 따라잡아버렸습니다.”
“지금은 괜찮아지고 있는 거예요?”
도무지 병원에 다녀온 몰골이라고는 볼 수가 없어서 물었더니 이수가 답했다.
“저것도 많이 나아진 거예요. 병원 가기 전엔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봐줄 지경이었어요.”
지금도 굉장히 심각한데, 저보다 더 심했다니……. 내 눈에는 저 팔다리로 과연 순례를 다 마칠 수 있을까 싶다.
“약은 먹고 있어요?”
“그럼요.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습니다.”
다행이라고 대꾸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걱정스럽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나란히 걸어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와인으로 재회를 자축하고 싶었지만, 이미 야심한 시각이라 그만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부님과 이수도 중국 식당을 찾느라 나만큼 헤맸단다.
이튿날, 모처럼 다시 셋이 된 우리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오늘은 폰세바돈Foncebadon까지 갈 예정이다. 척박한 돌길은 축축하고 음산한 안개가 자욱이 덮였다. 언덕 꼭대기에 장승처럼 우두커니 솟은 거대한 철십자가Curz de ferro가 행인을 굽어보았다. 창백한 안색의 여자가 안갯속에 앉아있는 걸 발견했을 땐 망령이라도 만난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는 한 마디 말없이 그 길을 걸었고, 안개를 벗어나고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폰세바돈은 산속의 작은 촌락이다. 산장 비슷한 알베르게만 몇 채 있을 뿐, 지역민은 거의 살지 않는다. 산길을 오르느라 기진맥진한 몸을 맥주와 와인으로 축이며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다시 여정을 떠났다.
“오늘 어디까지야?”
“폰페라다Ponferrada!”
이수가 대답한다. 나는 그의 지도를 받아 고도를 확인했다. 오늘은 험한 산길을 따라 내려가는 코스다. 하지만 폰페라다를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펼쳐진 평원의 풍경이 오늘 여정에 대한 심란함을 개운하게 걷어갔다. 산등성이 사이에 숨은 절경은 먼 산까지 이어진다. 희고 붉고 푸른 온갖 야생초가 대지에 흐드러졌다. 동틀 무렵의 아침이 평원 위로 녹아들며 깨기 직전의 꿈같은 아련함이 더해진다. 나는 한참이나 그곳을 넋을 놓고 보았다. 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바지가 이슬로 흠뻑 젖는 것마저 마냥 좋았다.
폰페라다는 제법 큰 도시다. 산을 완전히 다 내려가자 뜬금없이 큰 도로가 튀어나온다. 도로 간격이 넓어 노란 화살표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그간 순례길을 걷던 날들이 헛되진 않았는지 알베르게는 금방 찾았다.
알베르게는 옛 수도원을 개조한 건물이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문을 여는 알베르게 앞에는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푹푹 찌는 뙤약볕 아래 앉아 있다. 우리는 그늘과 의자를 찾았다. 그늘엔 낯선 동양인 셋이 이미 앉아 있다. 모두 여자다. 나는 냅다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물구나무를 서서 봐도 한국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딱 감이 왔으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다 해도 순수한 감이라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여기 같이 앉아도 될까요?”
우릴 뚫어져라 보던 이십 대 초반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한국인이세요?”
“네.”
그러자 옆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삼십 대 후반의 여자가 묻는다.
“그럼 같이 오신 분들도……?”
“아뇨.”
나는 신부님에게 “신부님, 여기 자리 났으니까 앉으세요.”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머? 혹시 저분이 그 신부님……?”
“네?”
뭐지 싶어 묻자 여자가 말했다.
“다른 순례자들에게서 들었거든요. 일본인 신부님이 한 분 계시고, 그분을 두 명의 복사가 수행하고 있다고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수행이요? 그런 거 아닌데요.”
무엇보다도 난 무교다.
“엉? 그럼 이 분이 아닌가?”
“저 신부님이 일본인이신 건 맞는데… 우린 복사도 수행원도 아니에요. 그냥 순례 초반에 만난 동행이죠.”
“아아……. 그럼 소문이 와전 됐나 봐요.”
여자 셋은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이름은 - 어린 순서부터 - 아영, 소민, 현숙이다. 아영은 나이 열아홉의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친구이고, 소민은 대학교 3학년, 현숙 언니(통성명을 한 후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는 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다. 신부님과 이수와도 통성명이 끝났을 즈음, 드디어 알베르게의 문이 열렸다. 우린 같이 줄을 섰다가 모두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식사 때 모여 서로 이야기도 하고 백숙과 파스타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로 약속한 우리는 각자 씻으러 흩어졌다. 샤워 실은 수도원 건물 안에 있지만, 빨래터는 너른 마당의 구석에 있었다.
비누 거품으로 대강 주물러 빤 빨래를 널어놓고 하늘을 본다. 서너 시간 후면 빨래가 마르다 못해 바삭바삭 해질 것 같은 햇빛이다. 고개를 돌려 무심코 알베르게를 보다가, 보기 드문(?) 광경을 발견했다. 신부복을 입고 배낭을 멘 채 막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선 서양인 신부였다.
점심 겸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알베르게 앞에서 만난 인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주방에 놓인 긴 테이블에는 우리들 외에도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한 순례자 몇 명이 더 끼어든다. 은근히 손이 큰 토마스 신부님은 이번에도 열 명이 먹고도 남을 음식을 만들었다.
현숙 언니가 요리한 백숙 육수로 신부님은 빠에야 쌀을 넣어 닭죽을 만들었다. 나와 이수가 (바오 커플에게서 배워온) 파스타 샐러드를 맡았다. 닭죽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맵지 않고 짭짤하고 고소한 것이 원기를 북돋는데 그만이란다.
식사를 하는 동안 저마다 각자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로 테이블은 시끌벅적했다. 개개인의 동기도, 상처와 아픔도 다르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해지는데서 오는 행복이다.
현실에서 겪던 골칫거리나 스트레스 따위 없이, 매일 아침 그날 몫의 길을 정직하게 걷고, 걷고 나면 씻는 것과 먹고 자는 것에만 열중하면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하루를 충실히 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충만하게 한다.
순례길 위에서의 하루는 ‘삶’을 꾸미는 숱한 수사만큼 복잡하지도, 심오하지도 않다. 그저 단순히 거기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눈을 뜨고, 지내다가, 잠이 든다. 태어나고 살다가 죽음을 맞는 인생처럼. 그뿐이다. 생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일 것이다.
침대에 들기 전, 나는 맥주 캔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게 현관 앞의 작은 분수대에는 순례자 몇몇이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기타를 연주하는 한 순례자 주변에 몇몇이 둘러앉아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홀짝인다.
나는 분수대에 앉아있는 토마스 신부님 곁으로 갔다. 그의 양손엔 맥주 캔과 담배가 들려 있다.
“아까 서양인 신부님 한 분 계시던데, 보셨어요?”
신부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분위기가 범접불가더라고요. 게다가 이 더위에 그 긴 신부복을 입고 배낭까지 짊어지고서 걷다니. 순례를 넘어 고행길이시겠어요.”
신부님이 미소를 짓는다.
“순례는 각자의 방식대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우린 더는 이 낯선 신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순례자의 기타 연주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맥주를 홀짝였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서양인 신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토마스 신부와는 참 달랐다. 토마스 신부님은 처음 만났을 때 평범한 회사원으로 보였을 정도니까.
그에 비해 서양인 신부는 판으로 찍어낸 듯한 신부님 그 자체다. 하지만 나는 토마스 신부가 순례길을 편히 걷고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는 매일 순례길 도중 멈추고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는다. 하루 일정을 마친 후에는 그도 누구 못지않게 피곤할 텐데, 늘 나서서 다른 순례자들을 거두어 먹인다. 그리고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홀로 앉아 어딘가를 보는 그에게서는 늘 어렴풋한 고뇌의 장막이 드리워 있었다.
문득 낮에 보았던 서양인 신부를 떠올린다. 그의 얼굴에는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가득이었다. 그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길이 토마스 신부와는 매우 다를 수도,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은 나만의 섣부른 생각이지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먼저 들어가 자겠다고 고하고는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배정받은 객실로 들어가기 직전에 본 토마스 신부는 여전히 등을 보인 채 분수대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