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지 않는 쓰라림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잘하게 되기 마련이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하면서 다음번엔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노하우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가족, 친구, 동료와의 이별이 그렇다. 이동이 잦은 직업이라 이별도 숙명이라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 누군가를 떠나오는 것은 아직도 정말 어렵다.
입부 일 년 만에 처음으로 부서이동을 하던 날, 아쉬운 마음에 과원 한 분 한 분께 작은 선물과 편지를 건넨 나에게 직장 선배는 이별도 “인(認)이 배긴다”면서 외교부 생활을 계속하다보면 이 또한 익숙해 질것이라고 했다. 선배도 그렇게 말하고는 씁쓸해하는 것 같았다. 마치 “이별에 익숙해져야 네가 덜 다쳐”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처럼.
오늘도 나는 그리 잘하지 못하는 일을 그럭저럭 해냈다. 입국심사장에 들어가는 엄마가 안보일 때까지 서있다 왔다. 출발(departure) 층은 3층, 도착(arrival) 층은 1층.
엄마를 맞이할 때의 설렘으로 이별의 아쉬움을 지워보고자 1층에 가서도 서성이다 왔다.
대학 시절, 방학이 끝나고 북경에서 서울로 오는 길, 일부러 오래 걸리는 경로를 골라 공항까지 데려다준 아빠 생각이 나서 더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