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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주리 Mar 06. 2023

긴 생각 7

<AI 글쓰기와 창작자의 미래>

나라는 사람을 규정할 때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는 건 조금은 부끄럽지만 나는 글을 쓴다. 요즘은 그림을 그리려고 하고.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로 창작자이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보통 떠올리는, 그러니까 더 의미 있거나 가치 있는 창작을 하는 예술가를 꿈꾼다.


요즘 챗GPT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나는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면서 최신 기술에 대한 습득을 어려워하곤 했는데, 챗GPT에 대해서도 괜히 그렇게 느꼈다. 맛없는 반찬을 자꾸 들이밀면 고개를 홱 돌리듯이, 챗GPT에 대한 소식들을 자꾸만 모른 체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떤 기사를 봤다. 한 공상과학 잡지에서 AI 소설이 쏟아진 바람에 심사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더 이상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AI가 창작을 할 수 있는 시대


AI는 벌써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걸까. 기사에서는 AI 소설이 출판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사에서 제외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AI 소설의 특이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AI가 쓴 소설책은 놀랍게도 이미 있었다. 2021년에 <지금부터의 세계>라는 장편 소설이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관련 내용을 다룬 기사에서는 꽤나 높은 수준으로 작성됐다는 평가가 있었다.


작년에는 미국의 한 미술전에서 1등을 차지한 작품이 AI에 의해 생성된 작품이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대체 얼마나 잘 그렸길래 1등을 줬단 말이야? 확인해 봤더니 정말 상당히 잘 그렸더라. AI가 생성한 그림으로 작품을 출품해 우승을 차지해 버린 사람은 투고 과정에서 불공정한 행위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한때 정말 논란이 많았고, 아직까지도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AI가 창작한 창작물도 예술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으며 오랜 기간 창작한 작품과 AI가 단 몇 초만에 생성한 작품이 비교되는 기분은 참 끔찍하겠지만... 


AI가 창작한 작품도 어떤 의미에서는 개성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장르가 형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 AI 창작물도 예술적 가치와 특징을 지닌다면 충분히 예술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AI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창의성일 것이고. 



AI에게 창작을 시켜보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직접 해봤다. 챗GPT. 어려운 것도 없는데 나는 괜히 쫄아있었다. 그렇다. 세상은 겁대가리 없는 사람들의 것이다. 물론 챗GPT는 창작을 위해 개발된 모델은 아니다. 이 녀석은 사람들이 입력한 질문이나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할 뿐이다. 그러나 챗GPT도 사전에 학습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반으로 어느 정도 창작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 녀석 좀 치는 것 같은데.


근데 생각보다 그냥 재미가 있었다. 평소에도 괴상한 질문을 종종 생각하곤 하는데... 챗GPT에게 물어보면 성심성의껏, 그러나 정말 이성적으로 잘 말해줄 것 같다는 든든함이 느껴졌다. 이 녀석과 나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진짜 좀 치는 것 같은데.


미리 말한 대로 시의 주제, 분위기, 언어를 조금 추가하니까 GPT는 곧바로 좀 더 재밌는 작품을 뽑아냈다. 이럴 수가. 골방에 가둬놓고 시만 쓰게 하고 싶었다. 물론 이 녀석은 다른 의미로 갇혀있긴 하지만.


진짜 시인이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을 골몰하는 동안 AI는 수천만 편에 달하는 작품을 찍어낼 거다. 그중에 하나는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지. 정말 뛰어나서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명작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는 거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시를 뽑아내고 있다. (물론 사람 시인도 시를 쓰고 있다.)



창작자의 미래


나름의 툴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인 셈이다.


회화가 사진이라는 기술을 만나 변화하고 포토샵이라는 기술을 만나 격동했듯이, AI 또한 창작을 위한 툴로 이용하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예술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게 내릴 수 있고, 아직은 논란이 많은 사항이겠다. 


그러나 변화의 흐름을 누구보다 기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개성적으로 체화하는 것은 예술가의 숙명이다. AI가 미친 듯이 창작을 해내는 이 세상에서 창작자가 창작자로서 숨 쉬는 방법은, 개성이라는 모서리를 들이미는 것이겠다. 사람의 창작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해석되는 바탕에는 창작자의 삶이 있다. 개성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특이점을 계속 찾아나가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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