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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주리 Jun 14. 2023

<범죄도시 3>, 실패할 수 없는 한국형 히어로물.

개인적인 감상평 11

<범죄도시 3>

별점 : 3.5개

일자 : 2023.06.09

장소 : 롯데시네마 센트럴락

감상 :


* <범죄도시> 시리즈에 대한 크고 작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범죄도시 시리즈에 대하여

<범죄도시>가 어떤 영화냐는 질문에 대답하기란 정말 쉽다. 심지어는 <범죄도시>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대충은 답할 수 있을 테다. 한국형 히어로물, 마석도(마동석 분)가 나쁜 놈들을 그저 때려눕힐 뿐인 영화.


이전까지의 <범죄도시> 시리즈를 겪은 사람이라면 <범죄도시 3>가 어떤 전개로 구성될지 이미 다 예상할 수 있을 테다. 명실상부 성공한 프랜차이즈가 되어버린 이 시리즈는 어쨌든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용'으로 전개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결말'로 끝나야만 한다. 영화라는 게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만드는 건 아니겠지만, 이쯤까지 온 <범죄도시>는 그런 느낌이 든다. 기대하는 만큼만 하면 되는 영화.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장르적 한계에 도달하여 소모될 것이라 우려하는 의견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국밥 나오길 기대하는 사람 잘 없다고. 굳이 치킨 잘 만드는 곳 가서 왜 국밥이 맛없냐고 투정 부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배우가 가진 역량을 함부로 재단하려는 건 아니지만, 마동석이 나오는 영화에서 주먹질이 등장하지 않는 걸 본 적이 없다. 있다면 그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을 테다. 드웨인 존슨이 상황실에 앉아서 컴퓨터만 하는 천재 해커로 등장하는 영화를 굳이 만들지는 않듯이. 마동석을 캐스팅해 놓고 필드액션신을 찍지 않는 건 농담 보태서 직무유기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범죄도시 3>는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장르적 특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오직 그만을 위한 영화다. 앞선 두 영화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덕분에, 적당히 분위기만 맞춰도 유야무야 좋은 흥행을 이룰 수 있는 발판까지 마련되었다. 실제로 <범죄도시 3>는 스크린을 장악하며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들이 빌빌거리고 있는 것도 한몫하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래서. 영화가 어땠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기대만큼만 하는 영화"


범죄도시의 빌런


대중이 아쉬워하는 <범죄도시 3>의 단점 중 하나는 빌런이다. 시리즈의 첫 작에서 '장첸'이 너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였기 때문일까. '강해상'에 이어 '주성철'도 그만큼 무섭지는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말 그랬을까, 개인적으로 이쯤 되면 누가 등장해도 아쉽다고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UFC챔피언 은가누가 붕붕훅으로 마석도를 원펀치 K.O 시키는 게 아닌 이상, 누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든 '떼잉~~ 빌런이 별로야... 쯧쯧'라고 말할 게 뻔해 보인다.


앞서 말한 내용은, 실제로 임팩트가 강하기도 했지만 추억보정으로 끊임없이 고평가 되는 '장첸'의 존재감을 지워내긴 힘들 것 같다는 말을 장난스럽게 했을 뿐이고. <범죄도시 3>의 빌런을 두둔하는 건 절대 아니다. 정말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리키 : 야쿠자가 원래 이렇습니까?


야쿠자가 보낸 살수. '리키'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이 녀석은 '고블린 슬레이어'를 안 봤나 보다.

좁은 통로에서 장검을 휘두르다니... 바보냐?

일본인이면 애니메이션도 자주 접할 거 아닌가. 칼질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는 건 알겠지만, 어쩌다가 벽에 칼 박혀서 당황했어 봐, 엑스트라 3한테 되려 죽었을 수도 있다니까? 이거 분명한 주인공 버프다. 이 특혜, 커넥션 조사해 봐야... 운이 좋아서 전투에서는 살아남았지만, 문제는 적을 모두 해치우고 나서였다. 뭐 그렇다 할 손수건이나 옷가지도 아니고 A4용지로 대충 칼을 닦는데, 정말 하나도 간지가 나질 않았다.


리키 : (책상에 흩뿌려진 A4용지를 집어 칼에 묻은 피를 닦으며) 녀석을 쫓아라!

나 : (저게 닦이긴 할까?) (검술 고수들 보면 천으로 정성스레 닦던데;;)


농담이지만, 그만큼 '리키'의 칼부림이 약간 불편해 보였다. 어째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지만 '리키'의 운은 길게 가지 못했다. 주성철에게는 이용당하고 마석도한테는 얻어터지고, 본토로 돌아가면 죽을 게 뻔한, 아아 불쌍한 운명.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리키'보다 '마하'가 더 센 것 같았다. 마석도가 말 그대로 원펀맨 설정인 탓에, 검객이든 총잡이든 폭탄광이든(?) 별 수 없이 일단 마주치면 끝이니까. 범죄도시의 빌런들은 어쩌면 한 명의 아티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누가 더 '맛있게' 맞는지, 누가 더 '아프게' 나가떨어지는지, 누가 더 '웃기게' 쓰러지는지 말이다. '리키'는 그 점에서는 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리키의 덜떨어진 활약을 정리하면 이렇다.

1. 야쿠자 마약 빼돌린 실체 주성철이랑 모종의 거래를 하면서 일말의 의심조차 안 하고 속아줌.

2. 죽일 필요 없었던 토모는 고민 없이 죽여서 고생하고, 반드시 죽여야만 했던 마석도는 굳이 살려둠.

3. 진작에 다 같이 달려들지 않고 부하들 하나씩 보내서 차근차근 격파당함.

4. 몽둥이 안마로 괜히 마석도 분노게이지만 올려줌.


그래도 칼 든 강도를 만나면 절대로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사실 정말 무섭습니다...



주성철 : 간지폭발 외형, 말랑말랑 내형


반면 주성철은 '데스노트'를 안 봤나 보다. (잠깐만, 이거 왠지 내가 너무 오타쿠 같은데...) 형사면서 범죄자인 캐릭터는 각본만 잘 받쳐준다면 정말 매력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역할 아니겠는가. 그러나 주성철은 야가미 라이토가 되지 못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인공은 마석도지만, 최대수혜자의 자리는 빌런들에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어 보였다. 하얼빈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애기들이 '나 하얼빈의 장첸이야!!' 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이라거나, '혼자야?', '아직 싱글이야' 콤보는 뭇 광고주들이 어떻게든 써먹고 싶은 카피였을 테다. '너 납치된 거야' 대사 한 방으로 수많은 여성들을 광역 구속(?)시켰던 '강해상' 또한 <범죄도시 2>의 최대수혜자였지.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주성철은 외형으로만 보면, 충분히 '주성철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을만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서면서, 주성철이 가장 임팩트 있게 나타난 순간이 어디였을까 생각해 보면 의문이 생긴다. 그의 캐릭터를 가장 잘 나타낸 대사는 무엇이었을까. 왜 아무런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영화 내내 멋있는 정장을 쫙 빼입고, 시원시원하게 걷고, 그냥 웃기만 해도 매력적인 외형의 이 캐릭터를 더 맛깔나게 살릴 방법은 뭐가 있었을까.


진... 짜 멋있는데...


범죄도시 시리즈의 범죄자들은 하나같이 사이코패스 무법자다. 장첸, 강해상, 주성철 모두 처음 등장하자마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인다. 심복처럼 데리고 다니는 하수인(강해상은 결이 다르지만)을 꼭 둘씩 데리고 다니고, 영화 내내 묘한 리드를 가진 채 긴장감을 주며 움직인다.


그런데 주성철은 결이 좀 다르다. 상영시간 동안 주성철이 사건을 리드하는 경우는 단 한순간밖에 없다. 약을 뺏는 데 성공하고 마석도가 리키랑 치고박을 때의 그 한순간. 경찰차 습격했을 때는 블랙박스도 뺏고 입었던 옷까지 다 불태울 만큼 꼼꼼하고 치밀했으면서, 대체 왜 마약이 든 가방 속은 주의 깊게 살펴볼 생각조차 안 했을까? 사실 옷 불태우는 건 그냥 '배우 분이 이런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답니다~' 하고 보여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어서?


굳이 마석도에게 예민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한두 번씩 등장하는 주성철의 전투씬은 '사이코패스 무법자'의 악독한 모습이라기보다는, '말괄량이 어리광쟁이'의 투정처럼 보였다. 비장의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압도적인 무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멋있게 입고 낮은 목소리로 무게 잡아 얘기한다고 다 보스 같은 건 아니다. 내내 뒤쫓기고 마감기한에 시달리기만 하는 불쌍한 신세.


적절한 비유는 아닐 수 있겠지만 <존윅 4>에서, 존윅은 정말 정말 힘겨워 보였다. 그럼에도 정말 강했다. 그렇기에 더 강해 보였다. 그런데 <범죄도시 3>는 오히려 빌런들이 하나같이 힘겨워 보인다. '이건 마석도가 아니면 이길 수 없어' 수준의 빌런들이 아니다. 마석도를 슈퍼히어로로 만들 생각이라면 마석도를 상대하는 빌런들 역시 슈퍼빌런이어야 한다. 긴장감이란 건 아무래도 좀 비등비등할 때 형성되니까. 관객들 모두가 당연히 마석도가 이길 걸 알지만, '이번 건 좀 어렵겠다'싶어야 한다.



난 빌런평론가가 아니다


나는 빌런을 응원하지 않는다. 당연히 히어로 쪽이 우리 팀이지. 나쁜 놈들 혼내주는 게 영화의 주제잖아. 다만 어떤 빌런이 더 매력적인가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기왕이면 좀 진짜 맞을만한 짓을 하는 녀석. 기왕이면 그러면서도 꽤나 히어로를 고전시키는 녀석. 그래서 히어로가 내외적으로 성장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면 그거야말로 참된 빌런이다.


히어로와 빌런은 그야말로 공생관계다. 빌런이 없으면 히어로가 있을 필요가 없다. 반대로 히어로가 없으면 빌런의 정체성 또한 사라진다. 자꾸 등장하는 빌런들을 무찌르며 계속 성장하는 게 히어로 시리즈의 생명 아니었는가? 아이언맨이 각광받는 히어로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1편에서 오베디아를 잡아 족치고 생각 없는 플레이보이로 쪄들어 살았으면 지금의 아이언맨은 없었겠지. 꾸준히 등장해서 그를 못살게 구는 빌런들 때문에, 종장에는 정말 멋지게 성장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각각 빌런들의 능력치는 구렸을지 몰라도, 결국 아이언맨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는지, 영화는 정말 공들여서 설명을 해줬다. 아이언맨을 괴롭힌 빌런들이 하나같이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떨거지 모지리들이었다면, 지금의 아이언맨은 절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석도는 성장했는가? 

... 아니오. 온몸이 아픈 것 말고는...


이번 작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긴장감이 확 죽어버린 느낌이다. 전보다 많아진 코미디 요소의 비중이 한몫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시한폭탄의 폭발코드를 쥐고 있는 빌런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빌런 진영이 유리했던 순간이 손에 꼽는다. 어쩌면 왕도적이고, 틀에 박혀있는 뻔한 전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마석도가 사건을 파헤치면서 점점 빌런들의 정체를 특정해 내고, 드디어 만나는구나 하면서 싸우는 게 정상적인 전개 아닌가.


리키는 시한폭탄의 폭발코드(마약의 위치)를 쥐고 있는 토모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썰어버리고, 대체 뭘 바란 걸까? 쌩판 아는 것도 없는 타국까지 와서 대체 어떤 결과를 바란 거냐고?


결과적으로 폭발코드가 마석도한테 넘어가버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자, 그러면 마석도는 이 폭발코드로 함정을 잘만 만들면... 깡! 아이고 맙소사... (한 대 버티고 두 번 맞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


털썩... (문신돼지의 오열은 덤)


이런 게 형사?


그 결과, 마석도의 지능이 대폭 다운그레이드되면서 없던 긴장감을 살려내 버리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주인공이 멍청한 짓을 해서 빌런의 힘이 강해지면서, 영화의 장르적인 힘이 실리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당장에는 재미있고 괜찮을지 몰라도 바람직한 전개가 아니다. 범죄도시 8편까지 준비 중이라면서. 히어로가 이미 완성되어 있어서, 성장할 필요가 없어서, 빌런들에 맞춰서 다운그레이드가 되어버리면 어떡하자는 것인가. 범죄도시 8편의 마석도는 진짜 단세포 주먹왕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그러나 실패할 수 없는 이유


뭐라고 하긴 했지만, <범죄도시 3>를 본 시간이 즐거웠던 건 사실이다. 이 시리즈가 실패할 수 없는 이유는, 이 각박한 현실에 나쁜 놈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범죄도시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다는 게 알려진 이후로, 관객들은 스크린 속 세상을 우리 사회와 대조해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조선족이 말썽을 부리고, 필리핀에서 한국인이 죽고, 야쿠자가 마약을 파는 세상이니까. 그들을 정말 아프게 때려주는 마석도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거다.


긴장감이 없다고 부르짖긴 했지만 영화가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긴장감을 내려놓은 걸로 보이기도 한다. 말 그대로 마석도가 없으면 진행이 안 되는 이 영화는, 지나치게 마석도 의존적이지만, 그래도 영화 내내 꾸준하게 나름 좋은 점수를 따낸다. 그리고 <범죄도시> 시리즈의 정체성을 각인시킨다. <범죄도시>는 온전히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데 집중하는' 영화다. 엉성한 개연성에도 사건을 빠르고 시원하게 전개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그것이다. 나쁜 놈들 때리기 바쁘니까, 전개에 신경 쓸 시간 없다는 거다.


그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태까지는 삼세번이었다. 딱 세 번까지는 즐길 수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런고로, 마석도의 네 번째 발자국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바라보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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