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살아오면서, 아버지의 권한과 권위가 굉장히 강했다. 나의 예전 기억을 되돌아보게 되면,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지 않으면 나머지 가족들도 숟가락을 들지 못했고, 아버지가 출퇴근을 할 때면, 인사를 하거나 마중을 나갔어야 했다.
남성의 권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제도가 정비되고, 정부의 통제력이 강해질수록 약해진다. 한 마을의 치안을 남성이 담당하던 과거와 다르게, 도시가 개발이 되며 농촌이 해체되고, 도시의 치안은 공권력으로 보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엔 남성이 오랜 시간을 공장에서 일하면서 밤늦게 들어오게 되었고,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식으로 분업이 되었다. 그래서 혼자 일하는 남성이 경제력을 쥐게 되었다.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내 부모님 또래 중에서 맞벌이를 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내가 살던 곳이 지방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지방에서는 물가나 집값이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기 때문에 외벌이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유교적 가부장제에 대한 의식이 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 생각처럼 남녀 차별이 일어나지 않았었고, 여성의 학문을 장려하고, 부부간에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다만, 조선 말기부터 나라가 망조에 들어가면서부터 경제가 어려워지고, 백성들이 가난에 시달리는 것에 더하여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식의 가부장 문화가 유입되었다. 이에 더해 독재정권의 집권이 이어지면서 강력한 가부장 문화가 뿌리 박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가부장제는 희미해져가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고, 맞벌이를 하게 되면서 가정 내 여성의 의사결정권 보유율도 올라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예전보다 우리 아버지의 집안 내 위상은 예전 같지가 않다.
가장인 아버지는 집 안의 가장이라는 막대한 권한을 가지면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가지게 된다. 집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이 가장의 말을 따르고, 권위적인 태도에 이렇다 할 반항을 하지 못 하지만, 가장은 가정을 책임진다. 그러니 가정의 경제력을 손에 쥐고, 가정 내의 의사결정권을 온전히 가졌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과거 같지 않은 우리 아버지를 보면서 타산지석, 반면교사를 삼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1. 잃지 않는 남성성
아버지가 사회적 지위도 높고, 가족들을 부양할 경제적 능력을 갖추며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가족들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역할도 중요하다. 어머니의 이런 노력이 없다면, 아버지는 허구한 날 집 밖에 나돌아 다니면서 집에 돈만 갖다 주는 ATM으로 전락하기가 쉬워진다. 아버지가 얼마나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어떻게 돈을 벌어오는지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사회적, 경제적, 신체적으로 고려를 해보았을 때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이 되는 사람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현재에 순응하지 않고, 더 나아가는 모습을 배우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집에 문제가 생기면 어머니는 무조건 아버지한테 전화를 한다. 남편이 믿음직스럽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남편에게 물어봐도 시원치 않은 답을 하거나, 그렇게 미덥지 않은 경우라면 가정에 서 있는 남편의 위치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나이가 먹으면 남성 호르몬 지수가 떨어지고 여성 호르몬이 증가한다. 과거의 남성호르몬이 넘치던 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가끔씩은 여자처럼 삐지기도 한다. 남성 호르몬이 많았던 젊었을 때보다 무기력해지고, 자신감, 사회성, 모험심이 없어진다. 현재 이대로에 만족하고 안정을 찾고 싶어 한다. 신체도 노화되고, 호르몬적으로도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과거 강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다가, 현재의 힘이 빠진 모습을 보게 되면 가족들은 당연히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과거 자신들을 지켜 주고,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던 아버지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2번째 조건이 필요하게 된다.
2. 배려, 공감, 헌신
사실 이 조건은 젊었을 때, 특히 결혼 전의 연애 관계에서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다. 연애 시장에서는 배려와 공감, 헌신이 없어도 가치가 있는 남자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나쁜 남자들의 남성성이 다른 남자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잘 생겼고, 몸이 좋거나, 자신감이 넘쳐나며, 경제적 능력까지 뒷받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으며 여성을 2순위로 두며 자신의 할 일을 우선시하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여성은 자신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신체적이나 사회, 경제적으로 나보다 높은 이 나쁜 남자에 끌리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나이를 먹어가고, 결혼을 하게 되면 이런 나쁜 남자도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점점 순해진다.
1번째 조건인 남성성을 나이 들었음에도 잃지 않거나, 잃었더라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과거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발전하며 가족들에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에는 2번째 조건이 덜 필요하겠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족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남성성을 잃지 않는 남성들은 소수라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남성성으로 거친 세상과 마주치기에는 힘들기 때문에 가족들의 지지와 공감,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하고,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에는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괴리가 오기 시작한다. 아버지 자신이 힘이 약해졌단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이미 남성성을 잃어버린 것을 온 가족들이 다 아는 상태에서 과거의 존경받던 아버지 대접을 받고 싶어 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남성성이 넘치던 시절에는 자신의 행동에 가족들의 양보와 이해가 동반이 되었지만, 과거와 같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면 아버지라는 존재의 역할에서 어머니의 포지션으로 비중 조절을 하면서, 적당히 1번의 조건인 남성성과 2번의 조건인 배려와 헌신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
나는 1번의 요건을 늦은 나이까지 잃어버리지 않고, 가족들의 문제를 해결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현재의 조건에 2번의 요건을 더해 가정적이고 헌신적인 아버지의 속성을 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양 극단에 있는 아버지는 지양하고 싶다. 남성성만 넘치는 아버지라면 가정에 소홀하여, 가족들과의 유대를 가지지 못할 것이고, 너무 2번에 치우친 아버지라면 자식들에게 잘못된 아버지상, 잘못된 남성상을 심어주거나, 아내의 외도로 이어질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 ㅈ밥처럼 굴지 말아야 함.)
(도경완, 장윤정 부부 사례에서 도경완 정도의 포지션정도는 돼야지.. 아나운서.. 외모 준수.. 똑똑함.)
뭐든 적당한 것이 좋은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남성성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설 명절에도 잔뜩 삐져있다가 결국은 순응하고 다시 어머니한테 꼬리를 싹 내린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