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도시를 상상하는 일
마이애미 오픈 소식이 타임라인을 채우기 시작하면, 나는 테니스보다 먼저 그 도시를 떠올린다. 코트 위 선수들의 긴장감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하드록 스타디움 주변의 야자수와,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의 풍경이다.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건 어쩌면, 그 경기가 벌어지는 장소까지 통째로 좋아하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갑자기 여행이 가고 싶어진 적이 있는가. 나는 꽤 자주 그런다. 윔블던 중계를 보면 런던의 잔디밭이 떠오르고, 호주 오픈을 보면 멜버른의 카페 골목이 궁금해진다. 마이애미 오픈도 마찬가지다. 플로리다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공이 오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항공권 가격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의 동기는 의외로 이렇게 사소한 데서 시작된다. 맛집 사진 한 장, 영화 한 편, 혹은 스포츠 중계 속 배경 하나. 거창한 계획 없이도 우리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동남아 여행 코스를 살피다 보면 마이애미와 전혀 다른 방향의 상상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결국 여행이란 어디로 가느냐보다 왜 가고 싶어졌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테니스는 참 독특한 스포츠다. 팀이 아닌 개인이 코트 한가운데 서서, 상대와 끝없이 랠리를 주고받는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몸을 움직이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생각해 보면 여행도 비슷하다. 특히 혼자 떠나는 여행은 더 그렇다. 어디서 내릴지, 무엇을 먹을지, 얼마나 걸을지 — 모든 결정이 온전히 자기 몫이다.
마이애미 오픈이 열리는 3월 말은 한국에서는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국내 봄꽃 여행지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이 시기가 1년 중 가장 설레는 때일 것이다. 플로리다의 열대 바람과 한국의 봄바람은 전혀 다르지만, 그 바람을 맞으며 느끼는 해방감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마이애미 오픈을 TV로 보는 것과 실제로 하드록 스타디움에 앉아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고 한다. 화면으로는 느낄 수 없는 공의 타격음, 관중석의 탄성, 그리고 선수가 서브를 넣기 직전 경기장 전체를 감싸는 정적. 스포츠 관전 여행이 하나의 장르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도 이 흐름은 분명히 감지된다. 프로야구 원정 응원을 위해 지방 구장까지 찾아가는 팬들, 축구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는 도시를 따라 이동하는 서포터즈. 경기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시대다. 강릉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듯, 경기 한 편을 보기 위해 하루를 통째로 쓰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마이애미의 3월은 이미 여름에 가깝다. 습도 높은 공기, 30도를 넘나드는 기온, 그리고 눈이 아플 만큼 강렬한 햇빛. 선수들은 그 열기 속에서 경기를 치르고, 관중은 선글라스 없이는 경기를 관람할 수가 없다. 반면 한국의 3월은 아직 쌀쌀하다. 코트를 완전히 벗지 못한 채 거리를 걷는 사람들, 바람에 흔들리는 개나리. 같은 3월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가 공존한다.
그래서일까, 국내 벚꽃 명소 정보를 살피면서 동시에 열대 도시의 풍경을 상상하게 되는 계절이 바로 이맘때다. 어디에 있든 결국 우리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꼭 비행기를 타야만 여행은 아니다. 마이애미 오픈 중계를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따는 것도 일종의 여행이라고 말하면 억지일까. 하지만 화면 속 코트의 초록과 관중석의 환호를 바라보고 있으면, 분명 마음의 어딘가는 이미 그곳에 가 있다. 상상이라는 비행기는 탑승 수속도 필요 없고, 환율 걱정도 없다.
물론 진짜로 떠나는 여행의 감각은 다르다. 낯선 거리의 냄새, 처음 맛보는 음식의 질감, 길을 잃었을 때의 당혹감까지. 그 모든 것이 여행을 여행답게 만든다. 마이애미 오픈 시즌이 올 때마다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언젠가는 저 코트 옆에 앉아서, 이 경기를 직접 보겠다고. 다짐이 실현되는 데 몇 년이 걸리든, 그 상상 자체가 이미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지금 이 순간만이 아니라, 다음에 갈 곳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