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해마다 봄이 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벚꽃 만개 소식을 듣고 '다음 주에 가야지' 생각하는 사이, 이미 꽃잎은 비에 쓸려 내려간 뒤다. 벚꽃의 개화 기간은 고작 열흘 남짓.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봄은 정작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올해는 다를 거라고, 올해는 꼭 타이밍을 맞추겠다고 생각하지만, 매년 아쉬움을 안고 돌아오는 것이 벚꽃 여행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흔히 벚꽃의 아름다움을 두고 '짧아서 아름답다'고 말한다. 일본 문학에서 유래한 이 감성은 한국에서도 깊이 뿌리내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짧아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짧아서 아쉬운 것이다. 좀 더 오래 피어 있어 주면 좋겠다고, 매년 생각한다. 꽃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꽃이 지는 것을 확인하러 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해도 있었다.
그래서 벚꽃 여행은 타이밍이 전부다. 기상청 개화 예보를 확인하고, 지역별 만개 시기를 비교하고, 주말과 평일의 인파 차이를 계산한다. 전국 봄꽃 여행지 정보를 미리 살펴두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준비 없이 떠나면 만개한 벚꽃 대신 앙상한 가지만 마주할 수 있다.
벚꽃 여행이라 하면 대부분 인파를 떠올린다. 여의도 윤중로, 진해 경화역, 석촌호수. 사람 구경을 하러 간 건지 꽃 구경을 하러 간 건지 모를 지경이 되는 곳들이다. 하지만 조금만 주류에서 벗어나면, 놀랍도록 고요한 벚꽃길을 만날 수 있다. 지방 소도시의 천변 산책로, 대학교 캠퍼스 안쪽 길, 이름 없는 사찰로 향하는 오르막. 그런 곳에서 만나는 벚꽃은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
혼자 걷는 벚꽃길은 특히 좋다. 아무에게도 페이스를 맞추지 않아도 되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올려다보고 싶을 때 한없이 올려다볼 수 있다. 대전 같은 도시에도 벚꽃 명소가 꽤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굳이 유명 관광지에 몸을 실을 이유가 줄어든다. 중요한 건 꽃이 있는 곳에 자기가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봄에 떠나는 여행은 다른 계절의 여행과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여름 여행이 에너지의 발산이라면, 봄 여행은 감각의 회복에 가깝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바깥 공기를 만나며 서서히 풀리고, 눈에 들어오는 색이 회색에서 연두색으로, 분홍색으로 바뀌는 과정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특히 올봄처럼 길고 우울한 겨울을 보낸 해에는, 봄 여행의 효과가 더 크게 느껴진다. 춘곤증에 시달리며 무기력하게 보내는 3월을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꼭 먼 곳이 아니어도 된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벚꽃길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떠난다는 행위 그 자체다.
벚꽃 시즌을 놓치면 다음 기회는 정확히 1년 뒤다. 365일을 기다려야 한다. 이 단순한 사실이 벚꽃 여행에 묘한 긴박감을 부여한다. 다른 여행은 미뤄도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벚꽃 여행만큼은 미루면 안 된다. '다음에'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드문 여행이다.
올해 벚꽃 개화 시기는 남부 지방 기준 3월 하순, 중부 지방은 4월 초순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야외 활동 시 자외선 차단에 신경 쓰면서 가볍게 배낭 하나 메고 가까운 벚꽃길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대단한 계획이 필요한 게 아니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바로 움직이면 된다. 주저하는 사이에 꽃잎은 떨어지고, 봄은 지나간다. 해마다 그래왔듯이.
그러니 올해는 제발, 생각만 하지 말고 진짜로 떠나자. 벚꽃은 한 번 더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