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 / 나의 사진집 : Perfum pour un ete.
어느 순간 나는 무언가에 미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세월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랄까.
새벽 5시 20분, 요란한 알람 소리가 울린다.
부스럭거리며 침대에 일어나서,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일본으로 갈 준비를 한다.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길, 운명일지도 모르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를 한 번이라도 놓쳤으면 ,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손님으로 체크인을 마치고, 바로 입국심사장을 통과했다.
아침을 못 먹었던 터라, 간단하게 빵 하고 커피를 먹고, 바로 비행기를 탔다.
항상 느끼지만 공항은 날 참 설렌 게 만든다.
만남과 떠나는 것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서 그런 건가.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뒤,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참 날씨가 좋다. 인생에 여름이 있다면, 오늘이 가장청량했다.
간사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입국심사를 마치고, 오사카에서 고베로 이동하는 페리를 타러 뛰었다. ( 페리가 1시 15분에 출발하는데, 아슬아슬하게 선착장에 1시 13분에 도착했다. )
마지막 손님인 나를 태우고 페리는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고베 공항에 내려, 포트 라이너를 타고 고베의 중심인 산노미야역으로 향했다.
한국하고는 사뭇 다른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쩌면 여행은 이런 묘미이지 않을까 한다.
내가 살아가던 세계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유영하듯 여행하는 것.
산노미야역에서 숙소 근처역인 모토마치역으로 이동했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시간은 2시를 살짝 넘어가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두 눈을 뜨고 찾아보던 중에 라멘집이 눈앞에 들어왔다.
가장 잘 팔리는 음식을 추천받고, 그걸로 주문했다. 로컬 식당이라 그런지 카드는 안 받고 현금만 받았다. ( 가격은 8천 원 정도 했었는데 일본에서 먹었던 라멘 중 2번째로 맛있었다. )
라멘을 먹고 난 뒤, 다시 숙소를 찾아 발길을 돌렸다. 해가 중천에 떠서 걸어갈 때마다, 땀이 소나기 내리듯이 흘러내렸다. 택시를 타고 싶었으나 택시비가 비싸서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걷는 걸 즐기기로 했다.
편의점에 들러서 녹차 음료수를 사고 나서 바로 체크인을 했다. ( 사장님이 정말 친절합니다. ) 혼성 호스텔이었는데 꽤 아늑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시는 중동에서 오신 분하고, 일본분들 이렇게 있었다. 이야기는 못 해봤지만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숙소인 것 같다.
숙소에서 잠깐 눈을 붙이려고 했는데, 해가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어 짐만 풀고 바로 나왔다. 숙소 근처에 ”난킨마치“ 있어서 바로 갔다. (난킨마치 : 고베 차이나타운) 간단하게 먹을 게 있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먹지 못했다... 저녁에 다시갔지만 이번에도 사람이 많아서 아쉽게 먹지를 못했다.
고베에서 유명하다는 기타노이진칸 거리에 위치한 스타벅스로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기타노이진칸 거리는 말 그대로 외국인 마을로 19세기 이국적인 유럽풍 건물을 볼 수 있었다. (고베 기타노이진칸 스타벅스점은 미국인이 살았다가, 1995년 한신 이와지 대지진 피해를 입은 후 철거 예정이었다. 하지만 고베시에서 인수하여 민간 사업자에게 양도하였다고 한다.)
여름을 잠시 피하는 장소로 너무 좋았다. 시원한 카페에 앉아 다음 목적지를 찾아보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바람 소리 고즈넉이 있기 충분했다. 근처에 프랑스관이 있어서 500엔을 내고 들어가 보았다. 18세기 로코코풍으로 가득하여 매우 화려하고 고풍스러웠다.
이후에 고베를 좀 더 즐기고 싶어서, 기타노이진칸 거리에서 고베 하버랜드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걸어서 이동해서 그런지. 발걸음 한 자국, 한 자국이 노을이 지는 거리를 밟을 때마다 보이는 도시의 아름다움. 나는 이 아름다움에 취하여 거리를 거닐며 다녔다. 이 아름다움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베 항으로 이동했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 좋다가도, 우울해진다. 외로워진다고 해야 하나. 누군가와 이 풍경을 같이 봤으면 하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한 2시간 정도 계선주에 앉아 멍 때렸다. 노을이 지고 있는 오사카를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산들바람이 머릿결을 빗어주며, 살랑살랑 볼을 스쳐 지나간다.
천천히 노을을 뒤로한 채, 어둑해진 길을 따라 걸어갔다. 마지막 일정으로 고베에서 가장 유명한 "JAZZ BAR"를 가려고 고베역에서 산노미야로 가는 JR 지하철을 탔다. 원래는 저녁을 먹고 가려고 했으나 공연 시간이 다 되어서 바로 재즈바로 향했다. ( "SONE JAZZ BAR" 1인당 1980엔 입장료를 받는다 피아니스트, 드럼, 보컬로 구성된 트리오 무대이다. 인당 주류 1잔 주문은 필수! 나는 Pizza와 Beer 1잔을 시켰다. 20대, 30대보단 중년 나이대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1시간 정도 공연을 한다. / 마지막 곡으로"L-O-V-E"를 불려주셨는데 너무 좋았다. 한국어를 조금 하시는 직원분도 계셔서 한국어로 소통도하고 좋았다. 나에겐 너무 과분한 서비스..)
사람이 많아서 구석으로 앉다 보니 피아니스트, 보컬만 잘 보이고 드러머는 못 봐서 상당히 아쉬웠다. 술을 좋아하지만 잘 못 마셔서 맥주 1잔에 얼굴이 빨개졌다. 너무 많이 걷고 피곤했던지라 한잔에 취해서 약간 비틀거리며 숙소로 들어갔다.
밤의 산노미야역은 매혹적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거리를 걸으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오늘이라는 시간에 대해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이도록 완벽한 하루에 죽는다면, 웃으면서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모르는 곳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기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하다.
온 시간을 나라는 사람을 위해서 쓴다는 것. 이렇게 좋은 날이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