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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성 Jan 03. 2022

사회적 지속가능성과 재정적 지속가능성

내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UN의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 무관하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단어가 상징하는 가치가 나의 지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Happily ever after(그 뒤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디즈니적 세계관이나, 끊임없이 등장하는 빌런들에 맞서 싸우는 마블식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것과도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평화와 안정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내 평화와 안정에 있어, 현대 대한민국의 사회 그리고 현대의 문명이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이야기하지만, 실제 '헬'까지 갈 필요도 없이 질서와 체계가 무너진 곳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는 지금 현재의 지구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조니 뎁이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다면 해적 역할을 하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 해적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은 모욕적인 농담처럼 들리지만,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다. 실감이 안 난다면 온라인 게임을 생각해보자. PK 제한이 없고, 마을에서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는 기능도 없고, 초보 때 기술 습득을 도와주는 NPC조차 찾을 수 없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은가? 아마 그런 게임이 어떤식으로든 활성화가 되어 있더라도, 신규 유저 유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고인물 유저들이 해당 게임을 계속해서 즐기고 싶다면, 어떤 식으로든 게임 난이도를 낮추기 위한 교육 자료를 만들고 신규 유저들에게 홍보를 해서 해당 게임의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만들고 싶을거다. 지속가능성의 기본적인 정신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사회와 문명이 지속가능하게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기존 고인물들의 위기의식이 그 출발일 것이다.


현실이 게임과 다른 점은 세이브/로드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거나, 클릭 한번을 통해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난이도는 랜덤이고, 코인은 1개다. 현실이 게임과 비슷한 점은, 유저들과 게임사가 어떤 생태계를 조성하는지에 따라 신규 유저들의 유입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신규 유저들이 계속해서 유입되는 게임은 명맥을 유지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임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채택하고 있는 흥미로운 시스템 중 하나는, 유저 1명에게 1장의 투표권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게임의 규칙을 어떻게 만들지 결정하는 것이 정책이고, 특정한 지향점을 향해 정책을 바꾸기 위해 세력을 결집하는 것이 정치라는 관점에서,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관심사여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코인은 1개이고, 다음 생이 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다음 생이 있는지 불확실하고, 이번 생은 어렵고, 그래서 결혼과 출산에는 관심이 없으니 최대한 이번 생을 즐길 수 있는만큼만 즐기다가 가겠다는 식의 회의주의적 쾌락주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와 같은 인식과 태도는 현실에서의 경험에 기반했을 것이 때문이다. 문제는 인구집단에서의 현실 경험 분포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의 불균형에 도달하고 있는 사회구조에 있다. 튜토리얼을 끝마치고 Act1에 진입한 뉴비들이 게임 난이도에 좌절하여 게임의 진행을 포기하게 되는 것을 유저만의 문제로 해석할 수는 없다. 게임을 포기하는 유저들이 특정한 극단값에 몰려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정 값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패치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대부분의 복지정책은 난이도 패치다. 게임의 전반적인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 모두가 비용을 분담하여 인프라를 깔겠다는 거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난이도 패치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에 대한 동의와는 별개로, 이와 같은 난이도 패치를 위한 부담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있어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함께 필요하다. 대규모 패치를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 모든 유저가 동등하게 지불하는 월정액으로 조달할 것인지, 고인물 유저들이 주로 이용하는 고급 서비스에 더욱 높은 가격을 매길 것인지, 유저들의 레벨이나 아이템 보유상황에 따라 비례해서 이용료를 부과할 것인지 등의 이용료 부과체계는 신규 유저의 유입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는 요인일 것이다. 대규모 난이도 패치를 진행하기 위해서 앞으로 진입할 뉴비들이 지불할 이용료를 재원조달 계획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난이도 패치가 어려운 것은 대부분 이를 위한 재원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이용료 부과체계를 이용하는지에 따라 신규 이용자가 유입되지 않을 수도, 기존 이용자들이 이탈할수도, 고인물 유저들이 이탈할 수도 있다. 최악의 의사결정은 이에 대한 부담을 투표권이 없는 신규 이용자인 미래 세대에게 지우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합의가 가장 쉬운 선택이지만, 민주주의의 함정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미래에의 투자가 외면되거나, 이에 대한 투자비용이 미래세대에게 전가되기 쉽다는 점에 있다. 미래세대에게는 투표권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사회나 문명의 발전이 우리 모두에게 편익을 준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공동체로부터 편익을 누리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때, 사회와 문명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와 같은 지속가능성한 발전의 일환으로 환경 문제가 대두되는 것과, 복지정책이 언급되는 것은 거시적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인류의 멸망이나, 저출산의 지속으로 인한 사회의 소멸은 모두 느리지만 착실하게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으로 탄소저감정책을 활용하는 것과, 사회 재생산 악화에 대한 대응으로 돌봄정책을 활용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탄소저감정책의 확대에 대한 비용을 모두가 분담해야된다는 논리와, 돌봄정책 강화에 대한 비용을 모두가 분담해야된다는 논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 중 하나는, 탄소저감정책의 확대에 대한 비용을 기존에 탄소산업을 통해 발전한 선진국들이나 탄소에 기반한 재화를 더 많이 이용하는 이들이 조금 더 부담해야된다는 논리에 설득이 되는 것만큼 돌봄정책 강화에 대한 비용을 추가로 부담할 책임이 있는 주체가 설정가능한지일 것이다. 현재 일반조세의 비중에 비해 사회보험료의 비중이 현저히 높은 한국의 재원조달 구조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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