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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성 Jan 07. 2022

탈모치료제를 급여화한다고?

이재명 후보 측에서 탈모치료제를 건강보험 급여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이에 대한 찬반이 뜨거운 것 같다. 이 공약을 현재 이재명 캠프에서 보건복지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이 추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투표에서 '이재명을 뽑는다' 대신 '이재명을 심는다'라는 말장난을 하고싶었던 공보 파트에서 캐치프레이즈의 일환에서, 20-30대 남성의 지지도 얻을 겸하는 얄팍한 생각에서 추진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재명 캠프는 '건강관련 삶의 질을 비용효과적으로 향상시키는 항목을 급여화하겠다는' 지금까지의 보건의료 급여의 원칙을 확장하겠다는 엄청난 의지를 표출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탈모치료제를 급여화한다면, 성형수술도 미용시술도 건강기능식품도 보약도 급여화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 이들은 기존에 '건강보험 보장률'을 계산할 때 분모에서도 빠지던 항목들로, 이들을 급여화한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보장률 향상에도 기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급여화한다는 것은 기존에 보건의료정책에서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오던 '건강관련 삶의 질'이라는 것의 범위를 급격히 확장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된다.


응급 외상 등 'Rule of rescue'의 논리가 적용되거나, 형평성을 고려하여 벽지에 보건시설을 지원하는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보건의료정책에서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는 일반적인 원칙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안전성, 유효성, 경제성, 대체가능성 등의 요소들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비급여의 급여화를 추진하면서 기존의 선별급여제도를 대규모로 확장한 예비급여 역시 이와 같은 요소들을 완화하여 적용한 후 판단기준에 따라 본인부담률과 모니터링 기간을 차등할 뿐, 일반적인 원칙 자체에서 크게 벗어나는 제도를 운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탈모치료제의 급여화는 적어도 경제성의 관점에서 볼때 기존의 원칙을 크게 벗어나는 결정으로 이해된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의료'의 범주에 포함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라면, 경제성은 이를 건강보험에서 급여로 보장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대표적인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성을 평가하는 원리는 일반적인 재정정책에서의 비용편익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보건의료 경제성평가에서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이 정책에서의 편익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을 곧바로 화폐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 관련 삶의 질(이하 HrQol이라 하겠음)'이라는 별도의 단위로 먼저 통합하여 산출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이와 같은 접근은 우선적으로 의료행위들 내부에서 의료행위 범주 간 우열을 비교할 때는 건강의 가치를 환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으며, '건강'에 대한 지불용의가 사회경제적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함께 올라가는 것을 반영하기 용이하다는 점 등 실용적인 장점과 함께, 기존의 비용편익 분석에서 흔히 편익을 측정하기 위해 활용되는 조건부 가치측정법이나 현시선호법 등이 '건강관련 삶의 질'에 대한 지불용의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아주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우리는 HrQol 1단위, 즉 '완전히 건강한 삶 1년'의 대가로 사회적으로 얼마나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에 대한 암묵적인 임계금액을 경제성에 대한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평균적으로 완전히 건강하게 1년을 더 살 수 있게 해주는데 사회적 비용이 3천만원 정도 발생한다면 급여화할만하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탈모치료제가 부딪히는 장벽은 탈모로 인해 훼손되는 삶의 질이 과연 '건강관련 삶의 질'의 범주로 해석할 수 있느냐에 있다. 탈모가 삶의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HrQol을 측정해온 방식을 기준으로 할때, 탈모가 있고 없고는 과연 얼마나 큰 문제인가? 탈모가 없어질 수 있다면 내 수명이 얼마나 깎여도 좋은가(실제로 이와 유사한 Time-trade-off 방식이 HrQol의 측정에 활용된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국민이 평균적으로 탈모 있는 365일과 탈모 없는 360일을 동등하게 생각한다는 가정이 맞다면, '삶의질'에 초점을 맞춘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볼때 탈모치료제의 급여화는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삶의 질 개선에 대한 보편주의적 접근이 정당하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러나 고민해봐야할 것은, 탈모로 인해 훼손되는 삶의 질이 과연 '건강관련 삶의 질'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탈모로 인한 우울'은 이미 '우울증'의 범주로 건강보험에서 급여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삶의 질 악화가 과연, '건강'의 범주에서의 문제로 볼 수 있을까?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까지 '건강보장정책'은 국가가 국민의 '삶의질'을 보장하는 복지정책의 일환으로서의 접근만이 아니라 인적자원에의 투자를 통한 개발이라는 접근도 포함되어 재정이 투입되어 왔다는 점에 있다. 즉, 탈모치료가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면 기존의 건강관련 삶의 질 개선에 재원을 투입해온 보건의료 정책에서의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탈모시장이 암이나 치매 치료처럼 국가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시장을 먼저 키워야하는 분야인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경제성 판단의 기준 자체가 기존의 보건의료에서보다 훨씬 엄격해져야 할 것이다.


사실 탈모치료제보다 훨씬 까다로운 것은 오히려 건강보조식품이나 운동 등 건강증진 영역에 있다. 건강증진 영역의 경우 탈모치료제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건강관련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탈모치료제를 급여화한다면 헬스장 이용권을 급여화하지 않을 명분은 훨씬 약해진다.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을 판도라의 상자이고, 지금 현재의 급여보장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재정적 부담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도 탈모약은 그렇게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다. 급여화를 통해 접근성 개선이 얼마나 달성될지도 모르겠거니와(가격탄력성이 젊은 남성층에서 그렇게 높을까? 오히려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클 것 같다), 접근성 개선을 통한 형평성 개선이 달성하고 싶은 목표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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