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말하는 '양적 연구자'다. '질적 연구자'와 구분되는 '양적 연구자'란, 정량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계학적 기법을 활용하여 '특정한 값을 추론'하는 연구방법을 주로 활용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이와 같은 구분이 모든 연구분야에서 있는 것도 아니다. 상당히 많은 연구분야에서는 애초에 주로 하나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발전하며, 상대적으로 다른 요소는 기초적인 수준으로 깃들여져 있는 경우도 흔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건정책학에서 이와 같은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보건정책학이 '보건'을 다루는 '정책학' 으로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보건대학원'의 모태가 된 학문인 역학(epidemiology)의 경우 태생부터 '양적 기반의 통계적 인과성 추론'의 기반을 지닌다. 다만 보건학이 의학과 구분되는 학문의 특성으로서 '인구집단의 건강으로서의 보건'이라는 연구분야(도메인)적인 속성을 주장함에 따라 보건학의 연구범위는 기존에 주로 감염병 질환의 전염 및 매개체의 관리 등 다분히 통계적인 방법론을 기반으로 '질병' 중심 그리고 '생의학(biomedicine)' 중심의 접근에서 보다 광범위한 차원의 접근이 요구되는 다학제적 학문으로 확장되었다. 즉, '인구집단'의 건강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인구집단'이라는 보다 행태적인, 제도적인, 사회적인 대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측면에서의 연구로 확장된 대표적인 영역 중 하나가 건강이라는 것이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의해 영향을 받음을 보인 낸시 크리거 류의 사회역학이나, 마이클 마못의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류의 연구 분야에 해당한다. 인구집단의 건강에 대한 사회적 영향, 불형평성에 대한 논의는 결국 양적 연구를 통해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한가지 특성을 지닌다: 가장 불형평적인 영역은 조명할 지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사회적 측면에서의 건강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사회역학적 양적방법론에서 출발하였을지라도 결국 질적 연구자로 전환하게 되는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들 분야에서의 연구자들은, 질적 연구에서 출발하여 얻게된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실제 인구집단에서 이를 조사하는 형태의 전형적인 '혼합연구' 형태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양적 연구에만 기반한 연구방법의 제한점은, 개인의 건강행동에 대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개인의 건강 행동에서의 문제는 경제적 효용에 기반한 합리적 해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개인 단위에서 개선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을 찾기 위한 행동경제학적 접근은 주로 실험경제학적 방법을 통해 보완이 되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해 집단 단위에서 개선하기 위한 접근은 주로 지역사회 단위에서의 참여 연구의 형태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구집단의 건강에 미치는 사회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나 개인의 건강행동에 대한 연구 이외에, 인구집단의 건강이라는 것이 제도적으로 운영되는 '보건의료 시스템'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제도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시스템 - 즉 자원의 배분 및 유통의 공식적-비공식적 규칙인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연구 역시 보건학적으로 중요한 연구대상이라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내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측면에서의 보건의료정책이며, 이는 WHO가 2000년 발표한 World Health report에서 보건의료시스템의 성과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함을 주장하며 제시한 보건의료시스템의 거시적인 목표: (1) 인구집단의 건강 개선을; (2) 효율적이고; (3) 형평적으로 달성한다는 것, 여기에 더해 (4) 환자경험 개선을 목적으로 이를 위한 지식을 생산하기 위한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이와 같은 영역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를 수행해 온 집단 중 하나는 보건경제학자들인 것으로 보인다. 보건경제학자들은 보건의료시스템의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보건의료시스템의 플레이어들의 목적에 대한 모형 함수를 이론적으로 구성하고, 이와 같은 이론적 모형에 대해 양적 연구에 기반한 실증 연구를 통해 뒷받침하는 접근을 취해왔으며, 이와 같은 보건경제학자들의 접근은 보건의료에서의 시장실패와 진입장벽 및 규제정책의 활용, 건강보험 수요에 대한 이론적 접근, 과연 의료공급자가 환자의 완전한 대리인으로 역할하는지 및 의료서비스 제공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비효율성, 의료서비스의 경제성 평가, 보건의료에서의 형평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논의를 이끌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보건경제학적 주제들에 대한 논의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상당 부분 실제 보건의료정책의 형태에 영향을 미쳐왔다. 예를 들어, 현대에 이르러 보건의료에서 시장실패가 일어난다는 것을 부정하는 국가도, 면허나 의약품 특허와 같은 진입규제와 함께 의료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활용하지 않는 국가도 찾아보기 어렵다. 건강 손실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한 비용을 분산시키는 제도적 장치(건강보험 혹은 국영의료)를 활용하지 않는 국가 역시 찾아보기 어려우며, 의료공급자가 환자 입장에서의 완전한 대리인으로 역할한다는 믿음 하에 의료공급에 대해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국가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공적 보험 혹은 국영의료에서의 보건의료 보상체계에 경제성에 대한 평가를 어떤 식으로든 반영하고 있으며, 소득이나 인종 등에 따른 보건의료 접근성 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를 구성하고 있다. 이는 기존에 자유주의적 전통을 가지고 있던 미국 같은 나라도, 국영 의료에 기반한 사회주의적 의료시스템을 구현해온 영국 같은 나라도 모두 마찬가지로 보여주고 있는 공통점이며, 학문의 발전과 국가 간 상호 학습에 따른 제도의 수렴(convergence)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일 것이다. 다만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 간 제도의 차이(divergence)를 이해하고, 이와 같은 제도적 차이의 원인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적 맥락에서의 정책적 함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비교제도론과 같은 정성적 형태의 연구 접근이 필수적이다.
제도에 대한 연구 중 정책 이행과 관련된 연구 분야는 또다른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보건경제학에 기반한 보건의료정책 연구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비판은, 보건경제학적 연구를 통해 보건의료시스템의 비효율을 발생시키는 원인을 파악하거나 이상적으로 나아가야하는 방향성에 대해 이미 밝혀진 경우에도 실제로 구현되지 않는 수많은 정책들이 존재하며, 이처럼 실제로 정책 이행을 하는데 있어서는 기존의 보건경제학적 접근은 한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합리주의적 정책 결정이 왜 구현되기 어려운지에 대한 해석은, '정책이 실제 구현되는 정치체계'에 대한 이해 없이 불가능하다는 정치학 혹은 정책학에서의 논의가 보건정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유독 행위별 수가제 기반의 지불보상체계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것은 한국이라는 국가 단위에서의 인구집단의 건강의 효과적, 효율적 개선 달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의 정치체계에 있어 누가 어떤 권력과 정치적 이념,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 및 파악이 필요하며, 이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임의 생태계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연구 분야에서 흔히 활용되는 것은 게임 이론 등을 활용한 전략 분석, FGI 등을 통한 이해관계자 분석 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연구 테마들은 그대로 실제 보건정책의 구현에서 진행되는 경로와 연관된다. 인구집단의 건강에 대한 행태적, 사회적 차원의 이해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개입해야하는 대상을 규명하는데 기여한다 (실제로는 여기에 더해, 질병 자체 및 질병의 유전적, 환경적 영향 등에 대해 다루는 전통적 보건학 영역의 연구가 문제인식 및 개입 대상의 규명에 크게 기여한다). 인구집단의 건강에 대한 제도적 차원의 연구는 이와 같은 문제에 개입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를 식별하는데 기여한다 (제도적 차원의 연구 이외에 개별 의료행위나 의약품 등에 대한 경제성 평가는 이미 제도화된 틀 하에서 국가가 제도에서 포함시킬 도구를 선별하는 규칙이나 기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제도 이행에 대한 연구는 실제 이와 같은 제도의 이행이 가능할지에 대한 전략적 차원에서의 접근을 가능케 한다. 이와 같은 싸이클을 통해 정책이 실제로 시행된 이후에는 평가 및 환류 과정을 거친다. 평가 및 환류 과정은 다시 위와 같은 싸이클이 반복되는 과정이라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개인적으로 보건정책 연구 분야에서 통계적 인과성 추론 형태의 양적 연구에 대한 소양의 가중치는 제도 연구 = 행태 연구 > 사회 연구 > 이행과정 연구 순으로 높다고 생각하고, 그 외에 제도 연구에서는 시뮬레이션이나 통계학적 학습 방법론을 활용한 추계/추정 연구 방법론 등이, 행태 연구에서는 실험경제학적 방법론 등이, 사회 연구에서는 네트워크 분석 등의 방법론이 많이 활용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보건의료제도의 거버넌스 구조나, 이행 과정에 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하는 연구자는 보건정책학 분야에서는 사실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연구자들이 연구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실제 정치현장의 플레이어들이 이들 이론을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정치행위를 하고 있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런 영역은 논문 실적 쌓기가 어려워 연구자로 생존하기 어려운 문제가 크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