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은 선출직 공무원 자리와 이를 통해 행사가능한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뭉친 정치세력에 불과하다. 한국의 두 정치세력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겉으로는 보수와 진보라는 국정 운영에서의 철학을 기준으로 대립하고 있는 대안적 정치세력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권력을 획득했을 때 그러한 정치철학을 구현하고자 하는지는 의문이다. 정당에서 추구한다고 표방하는 '철학'과 무관하게, 실제 정당의 운영은 '집단적 지지'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며, 이와 같은 집단적 지지는 철학이나 신념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민주주의가 지닌 본질적인 한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맹자가 양혜왕에게 '왜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라고 되물었던 것처럼, 왕도정치 혹은 철인정치의 이상은 이해관계에 있지 않다.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싸웠던 선배 세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민주주의의 이상은 모두가 공정한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에 있었을지 모르나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의 실상은 이해관계의 균형을 통한 체제의 안정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거는 내전이고,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도 승자가 패자에게 전리품을 챙겨가는 현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국민의당이 국민의힘과 합당했다. 사실상 흡수통합이라고 봐야할 것이고, 이로써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이어오던 뿌리깊은 대립 - 군부와 오래된 기득권 그리고 민주화 세력과 새로운 기득권, 그 과정에서 정치세력들의 안정적인 기반이 되었던 지역주의 정서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고자 한 시도는 또 한번 무산되었다. 이는 현재의 정치체제 하에서 가치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의 지속가능성은 확보되기 어려움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뚜렷한 지지세력 없이 '개혁보수'를 표방했던 바른정당도, '제 3의 길'을 표방한 국민의당도 모두 사라졌다. '진보적 가치'를 기치에 세웠던 정의당은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의 지지를 얻고자 시도한 순간 국정운영의 철학에 기반한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이해관계자 정치로 퇴색해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모두 앙시앙 레짐 하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경로의존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는 우리 정치가 국정 운영과 가치 체계에 대한 국민의 숙의에 의한 의사결정에서 한발짝 더 멀어져, 이해관계자들의 집단적 협상에 의한 의사결정의 틀로 고착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권력에 의한 정치(Power politics)이다. 더 많은 협상력을 지닌다는 것은 그 자체가 권력이고, 권력에 의한 정치는 지극히 냉정하게, 그리고 합리(合理)가 아닌 합리(合利)에 의해 작동한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가치 판단,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는 시장의 비효율과 불형평의 식별, 효과적인 개입방안에 대한 탐색과 이해관계자와의 협의, 이를 기반으로 한 효과적 집행, 객관적 평가와 이에 기반한 환류라는 숙의에 의한 합리(合理)적인 정책 형성 과정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내전에서 승리한 정치세력 내부에서의 권력의 크기에 따른 논공행상이 이루어짐에 따라, 합리(合利)는 합리(合理)에 우선한다. 승자에게 전리품을 빼앗긴 패자는 다음 번 내전에서 승리하여 더 큰 전리품을 챙겨오리라 다짐한다. 선거가 숙의의 과정이 아니라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내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 당에 대한 지지여부와 무관하게 국민의당의 실패는 슬픈 일이다. 우리는 또다시 끊임없는 내전의 반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