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이 서서히 희미해집니다.
11월 5일, 오늘은 막내 언니의 생일이다. 엊그제 일요일, 엄마와 언니네 가족 네 식구, 그리고 우리 부부, 총 7명이 모여 생일 파티를 했다. 생일 파티라고 해 봤자 모여서 점심 식사 한 끼 했을 뿐이다. 언니 가족의 새로운 식구 유기견 덕배 이야기, 고3 같지 않은 조카의 학교 생활 이야기, 사춘기의 독이 단단히 오르고 있는 중1 조카의 이야기까지, 음식이 나올 때마다 이야기의 꽃은 무르익어 갔다.
그런데 간간이 식사나 대화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형부, 아니 형부가 스마트폰 중독일리는 없고.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며 뭔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파리바게뜨는 안 된다고 했어! 분!명!히!"
"자연드림에 있을 거야!"
"자연드림 이사 갔거든!"
"딴 동네로 가면 되지."
"디셈버에 전화해 봐, 있을 거야!"
"그런 케이크는 일주일 전에 미리 주문해야 된다고 했지!"
언니와 형부, 두 조카의 대화가 이어진다. 이야기가 끊어질 만하면 형부가 다시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조카들이 한두 마디 건네고 뭐 그런 식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형부, 뭔데요? 뭐가 문제예요?"
"내가 생일 선물 리스트를 건넸거든, 이번엔 이렇게 안 챙기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고!"
언니의 선물 리스트가 뭔지 들어보았다.
아, 정말 소박한 선물이었다. 근데 이해는 한다. 형부도 언니도 욕심도 참 많고 - 내 기준에선-일을 애써 만들어서 하는 부류라 서로 시간이 안 맞는 걸 잘 알고 있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어쨌든 형부는 선물리스트 1번 때문에 심각했다.
"형부, 그거 카카오선물하기에서 찾아보면 있을 거예요."
형부는 내 말을 듣더니 눈을 반짝였다. 반대쪽에선 언니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야, 너 그걸 알려주면 어떡하냐!"
식사 자리에서 내내 심각했던 형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 여기 있네. 휴우, 아싸 하나 완료!"
"형부, 바로 주문하세요. 생일날 받기에 빠듯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생일상 위를 넘나들던 긴장감은 서서히 사라졌다. 언니 부부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우리 가족은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느 순간부터 생일을 외면했다. 내가 고2 때, 아버지의 생신날이었다. 당시 우리집은 좀 복잡한 상황이었다. 작은 집에서 일곱 식구가 복닥거리며 살다가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아파트 입주 시기가 되었고, 여러 복잡한 상황으로 짐의 1/3쯤만 옮긴 상태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짐과 식구들 모두가 아파트로 언제 이사를 해야 할지 기약이 없었다. 작은 집과 힘들게 운영하시던 가게를 훌훌 털고 이사를 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를 못했다. 부모님의 고단함은 나날이 계속 됐다. 그리고 맞이했던 아버지의 생신날, 생신 파티는 입주한 아파트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다. 엄마와 언니는 전날 미리 가서 생신상을 준비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전날 작은 집에서 주무셨다. 그리고 아침에 아파트로 건너가셔서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생신상을 받으시고 출근을 하셨다. 저녁에는 생신 파티가 예정되어 있었고 아버지의 직장 동료들이 함께하실 예정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직장 동료를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맞이했다.
그 후로 우리 가족에게 생일 파티라는 건 없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조용히 생일을 보냈다. 사실 그전에도 생일날은 우리 가족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가난했고, 또 바쁘게 살다 보니 생일이 한참 지난 뒤에 서로의 생일을 기억했을 뿐이었다. 어렸을 때는 너무 서운했었는데 아버지까지 그렇게 돌아가시고 나니, 생일은 그냥 그래야 하나보다 체념했었다.
딸 다섯이 모두 결혼을 했고, 시댁이라는 가족이 생기다 보니 '생일이란 게 정말 큰 행사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어르신들의 생신날이면 찾아뵈었고, 용돈도 챙겨 드렸다. 근처 식당을 알아보며 가끔은 아주 특별한 식사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 가족의 생일날도 모여서 맛있는 밥 한 끼를 먹는 날로 서서히 변해갔다.
생일 선물을 이유로 알콩달콩한 언니 부부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행복해졌다. 이제는 우리 가족에게 금기시되다시피 했던 '생일파티' 네 글자를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삭이고 있었던 그날에 얽힌 아픔을 이제는 좀 훌훌 털어버리고 남겨진 이들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날로 말이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생일날을 정말 특별히 보내는 듯하다.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다든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축하를 해 준다든가. 그런 모습을 보면 솔직히 부럽기도 했고, 생일 파티에 얽힌 슬픈 기억이 없다는 것에 질투 나기도 했다. 다들 자기 몫이 있는 것이겠지,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그리고 부러움이나 시기 질투도.
다음 내 생일에는 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은 괴롭히면서 단단히 챙겨 먹어볼까? 어쩌면 아직도 나처럼 그 슬픔을 생일파티와 연결해서 생각하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 슬픔을 조금은 녹여 없앨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