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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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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May 09. 2024

몇 년 만의 연락에 공항에 달려오려는 마음

어떤 마음

스웨덴에서 한국에 오는 길. 늦게 비행기표를 샀더니 두 번이나 갈아타는 여정이 되었다. 독일 뮌헨에서 한 번, 중국 베이징에서 또 한 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두 시간쯤 비행기를 타고 왔을까. 뮌헨에 도착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뮌헨에 살고 있는 독일 친구가 생각나서 메시지를 보냈다. 


08:35 a.m.

"알렉스, 안녕? 잘 지내? 나 지금 뮌헨이야."


지난 메시지를 보니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일 년이 훌쩍 넘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서울에서 7~8년 전쯤. 그래도 독일에 왔으니, 어쨌든 친구가 살고 있다는 뮌헨이니 안부 인사 정도는 건넬 수 있겠지. 


다섯 시간 반 정도의 체류지에서의 시간. 별다른 수속 없이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나는 계획도 없는 뮌헨 여행을 시작했다. 다섯 시간 반이지만 보딩 타임과 시내를 오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남은 건 두 시간 남짓. 아무 정보도 없던 나는 무작정 우리의 서울역일 중앙역 가는 열차를 탔다. 


마리엔 광장 근처를 걷다가 한적한 동네의 베이커리에 자리를 잡고 아침을 먹었다. 독일식 샌드위치와 카푸치노 한잔. 일요일 아침, 아침을 먹으러 나온 가족들을 바라보며 잠깐의 여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약간의 산책 후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알렉스는 아직 답변이 없다. 


11:08 a.m (시내에서 찍은 사진 세 장과 함께)

"지금은 공항으로 돌아가고 있어."


12:10 p.m

"잠깐, 너 비행시간이 언제야?"


공항에 막 도착했을 때, 드디어 알렉스에게 연락이 왔다. 


"곧"

"말도 안 돼!"

"1시 반 비행기고, 베이징으로 가. 뮌헨에서 밖에 나갈 수 있을지 몰라서 미리 연락 못했어. 오기 전에 스웨덴에 일주일 있었어."

"아, 뮌헨은 경유였다는 거구나. 그래 알았어. 뮌헨 좋았으면 좋겠다."

"응, 좋았어. 맛있는 빵이 많더라!" 

"응. 맞아. 그리고 맥주도!"

"응. 그러게 옥토버페스트 놓쳤네."(그때는 10월이었고, 마침 전 주에 옥토버페스트가 끝났다.)

"네 메시지 일찍 못 봐서 속상하네."

"그러게. 스웨덴에 있을 때 연락했어야 했나 봐."

"사실 나 지금 정확하게 뮌헨에 살지는 않아. 가깝기는 해. 공항 가는 방향 쪽이야. 다음에 유럽 오면 꼭 나한테 말해. 누가 알아, 독일 아니라도 내가 그 나라에 있을지. 나 자주 여행하니까."

"응, 알겠어. 나 이제 곧 보딩타임이야."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탑승구 쪽에 가서 대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대화가 이어졌다. 


"잠깐, 너 보딩타임이 정확히 언제라고?" 

"30분 후."

"아.. 그렇구나.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지금 출발해도 되나 했어. 근데 지금 나가도 집에서 공항까지는 한 시간이 걸려서 어떻게 해도 안 되겠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고마워. 다음 기회가 있을 거야."


17년 전. 일본에서 함께 워크캠프를 하며 알게 된 알렉스. 마지막 연락은 작년 3월이었나. 기대하지 않고 안부를 나누려고 메시지를 보낸 거였다. 당연히 메시지를 바로 본다고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로 달려올 생각을 했구나. 고마워라. 물론 얼마 남지 않은 탑승 시간에 알렉스가 달려온다고 해도 만남이 성사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달려오려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하긴, 오래전 동생이 뮌헨에 간다고 연락을 해서 시간 되면 한 번 만나라고 했을 때도, 기꺼이 시간을 내서 저녁을 사주고, 다음 가는 곳 기차표까지 사줬다고 했다. 동생의 첫 유럽 여행이 걱정되어 내가 부린 오지랖이었는데 그걸 받아준 알렉스다. 당시 동생은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둘이 밥을 먹으면서도 대화도 잘 안 통했을 텐데 말이다. 


누구도 무리를 하지 않는 요즘이다. 내가 피곤하니, 내가 얻을 게 없으니, 내가 바쁘니,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자주 연락을 하지도 않고, 절친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내 메시지 하나에 달려올 생각을 하다니. 이 마음을 어떻게 받으면 좋을까. 


일본에서 처음 만나고 7년 후인가, 알렉스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연남동 동진시장에서 당시 내가 애정하던 멕시칸 식당을 데려가고, 카페 리브레에서 커피를 마셨다. 카페의 한약방 인테리어가 신기하다고 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연남동 길을 걷던 순간들. 함께 온 친구들 3명과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고, 함께 홍대 거리를 걷다 다 같이 나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던 일. 좋았던 순간들이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이 날도 그런 순간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고마워, 알렉스. 


뮌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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