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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May 09. 2024

아부다비에서 케익을 사서 들고 오는 마음

어떤마음

어느 날, 친구 두 명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 케익 사진이 올라왔다. 여행을 가있는 친구의 카톡. 


"내일 급 접선 가능하신 분은 말로만 듣던 아부다비 허니 케익과의 만남 가능합니다."


친구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중인데 케익을 샀고, 다음 날 퇴근길에 지하철역 앞에서 만나 케익을 전달해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아부다비 허니 케익은 사연 있는 케익이다. 그 시점은 2021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는 몇 년 전 아부다비에 살던 시절에 먹었던 러시아 허니 케익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한국에도 러시아 현지인이 하는 곳이 있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 러시아 허니 케익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기꺼이 동행했다. 저녁 늦게 찾아간 곳에서 말로만 듣던 러시아 허니 케익을 사서 어렵게 나눠 먹던 추억이 있다. 날은 추웠고, 시간은 늦었고,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어서 케익을 들고 길을 배회하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어렵게 자리를 잡은 곳에서 케익을 한 입 맛을 봤는데 또 다른 친구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줬고, 후에 나는 그 사진을 다큐멘터리 청춘 영화의 티저처럼 만들어 공유한 기억이 있다. 물론 어렵게 먹은 것과 달리, 친구의 기억 속 '아부다비 허니 케익'의 맛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나에게도 '러시아 허니 케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베이커리 페어에 갔을 때도 '러시아 허니 케익'이 보이면 시도해 보고, 카페에서도 '러시아 허니 케익'이 보이면 주문해 친구들과 있는 단톡방에 사진을 공유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이는 '러시아 허니 케익'에 친구는 '그 맛'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몇 년간 '러시아 허니 케익'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우리는 그건 어쩌면 '아부다비'에만 있는 맛이라서 한국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맛 자체도 다르겠지만 타지 생활을 하던 친구가 당시 먹었던 '그 맛'을 지금 서울에서 찾을 수는 없을 테니까. 우리는 농담으로 케익을 먹으려면 아부다비에 가야 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친구의 '러시아 허니 케익 찾기'는 일단락이 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이번에는 정말 아부다비에서 케익을 사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우리에게 나눠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케익을 받으러 친구의 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역에서 모였다. 이미 열 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왔고, 공항에서 집에 왔고,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케익을 들고 출근을 했고, 회사의 냉동실에 다시 들어가 있던 케익이다. 


친구는 가방에서 반찬통을 꺼낸다. 그 안에는 말로만 듣던 아부다비에서 파는 러시아 허니 케익이 한 조각 담겨있다. 케익을 한국까지 공수하기 위해 아부다비에서 마트에 들러 반찬통을 샀다고 했다. 여행에 동행했던 친구 어머니의 '그런 걸 왜 사들고 가냐'는 구박도 견디며 케익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들고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자신은 배탈이 나지 않았지만 실온에 오래 있어 혹시 모른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케익을 나눠 들고 지하철역 앞에서 짧은 안부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평소 야식을 먹지 않지만 그날은 늦게 집에 들어왔음에도 케익을 먹었다. 조금이라도 덜 상했을 때(?) 먹어야 할 것 같기도 했고, 아부다비에서 케익을 배달한 마음을 뒤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친구의 말대로 그동안 한국에서 먹던 허니 케익과는 맛이 달랐다. 반찬통 뚜껑을 열어보니 진한 꿀 향이 풍겨왔고, 식감은 훨씬 더 촉촉했다. 그래서 친구가 '그 맛'이 아니라고, '그 느낌'이 아니라고 외쳤구나. 다른 친구와 나는 한 입만 먹어보려던 마음과 다르게 큰 조각을 순식간에 다 먹었다는 후기를 나눴다. 그리고 케익을 배달한 친구는 흐뭇해했다. 


친구에게 연락을 받고, 케익을 받으러 가고, 가져와서 먹은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친구가 정말 대단하고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내 약간의 흥분 상태였던 것 같다. 일본 정도의 단거리 비행도 아니고,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케익을 사 올 생각을 다했을까. 여행 짐에 손에 따로 들어야 하는 케익을 들고 다니는 일은 여간해서는 다른 사람들은 시도하지 않을 일이다. 우리의 '러시아 허니 케익'의 사연을 모르는 다른 친구에게 이 감동을 전하니 전혀 감흥이 없는 친구는 '굳이?'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아마 이 감동은 케익을 받은 나와 또 다른 친구 둘만 공유할 수 있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부다비에서 케익을 사 오는 건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한다. 가끔 이런 마음과 마주할 때 나는 그 마음이 무척 궁금하면서도 감동이 벅차오른다. 


친구는 케익을 사서 아부다비에서 한 조각을 먹고, 한국에 돌아와 또 한 조각을 먹어봤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맛있긴 했지만 아부다비를 떠나는 순간 그 맛이 반감된다고 했다. 현지의 분위기 안에서 먹는 '그 맛'은 또 다를 것이다. 


우리에게 '아부다비 허니 케익'의 맛은 친구가 아부다비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사서 들고 온 사연 있는 맛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다음 케익은 그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아부다비에서 날아온 러시아 허니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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