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일주일
마감의 압박
무척이나 스트레스가 컸던 한 주다. 마감일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 끝내야 할 분량이 있는데, 보고서의 진도가 도저히 나가지 않는 시간이 많았다. 일상의 다른 것들은 잠시 스탑 버튼을 눌러두었다. 이주 전 시작해 열심히 다니던 헬스장에 가는 것도 잠시 멈춤, 첫 수업을 시작한 핸드팬 수업도 미루고, 다른 일정들도 야근으로 잠시 멈춤을 했다. 잘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기한에 맞춰 기본 요건을 갖춰내는 것이 왜 이렇게 큰 압박으로 다가오는 건지 모르겠다. 작은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던 한 주는 무척이나 길었는데 결국 한 주의 끝에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하나의 문을 닫는다
2024년을 마무리하는 결과보고서를 끝으로 지난 1년의 여정은 매듭을 지었다. 하지만 단 일 년이 아니다. 친구에게 B를 소개받아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는 꼬박 3년이다. 이 3년의 마무리여서 나는 더 압박감을 느꼈던 것일까. 내가 이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연다고 해도, 이 일은 다른 이들이 이어갈 것이다. 그 이어짐을 깊이 응원한다.
버크만 강의
모든 것을 멈춰두었던 한 주지만 어느 날 저녁에는 미리 버크만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었다. 친밀도가 유달리 높은 그룹이 버크만 진단을 통해 서로를 알아보고, 어떻게 하면 더 협력적으로 조직을 운영해 볼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다. 너무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 알고 있던 부분을 확인하고, 또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갔다. 진행자로 함께하는 나도 그룹 안에서 역동을 느낄 수 있어 보람된 시간이었다. 집에서 꽤 먼 곳에서 강의가 있어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압박감 속에서 보낸 한 주에 오아시스 같은 순간이었다.
약속된 것을 해내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짬을 내서 어느 저녁에는 비즈니스 코칭 강의를 들었고, ICF 재단의 앰버서더 활동을 인수·인계받는 미팅에도 참여했다. 마감의 압박 앞에 다른 일이 들어오는 것이 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와중에 약속된 것을 다 해낸 스스로를 칭찬한다.
나는 나를 구할 수 있는가
이번 주 나의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던 물음은 이것이다. ‘나는 나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강연에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지금의 내 버전으로 변형된 형태다.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한 주, 나는 왜 이 물음을 계속 붙들고 있었던 걸까. ‘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 걸까.
*2월 둘째 주를 회고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