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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oche May 09. 2022

02. 마케팅의 필수 조건 <영업>

2007년 8월~2008년 2월  동부영업팀


2007년 하반기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나의 직무는 <영업>이었다. 당시 경영학이나 다른 전문적인 전공이 아니더라도 지원할 수 있는 분야, 즉 '전공 불문'이라 어문계열 전공자에게도 열려 있던 직무는 대부분 영업이었고 나 또한 화장품 회사의 영업이 어떤 일인지도 잘 모른 채 일단 지원을 하고 합격을 한 것이다. 

(그 어떤 업무라도 "뽑아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던 시절이다)

추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반드시 영업을 거쳐야만 BM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룰 같은 것이 있었다. 즉 마케팅 직무에는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영업은 나중에 내가 마케팅으로 갈 수 있는 초석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동부영업팀>으로 배정받은 나는 2007년 8월, 긴장 속에 첫 출근을 했다.

내가 출근한 곳은 용산에 있는 본사가 아닌 송파구 석촌동의 어느 빌라 건물 한 층을 쓰고 있는 영업팀 사무실, 내부에서는 흔히 '지점'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으리으리한 본사 건물로 들어가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내 모습을 상상해왔지만 지점에선 굳이 사원증을 맬 필요도 없었고 내가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했다는 것을 실감하기는 조금 어려운 환경이었다. 솔직히 '아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뽀대 나게' 본사에서 일하는 다른 입사동기들이 부러웠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팀에 적응해서야 오히려 지점에서 일하는 것에 장점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본사 분위기는 개인적이고 삭막하다던데 지점은 가족같이 친근하고 똘똘 뭉치는 분위기가 있었다. 요즘 MZ세대들은 이런 걸 오히려 싫어한다지만 '나 때'만 해도 이것은 큰 장점이었다.

회사의 '높으신 분'들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팀장님(지점장님)이 아빠처럼 너그럽고 좋은 분이셨고 명절 때면 판촉이나 샘플도 잘 나눠주셨기에 화장품을 좋아하는 신입사원에게는 더없는 기쁨이었다. 본사 동기들에게 실컷 자랑도 했다. 

기타 등등


의욕과 야망이 넘치는 신입사원으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일찍 출근하기'였다. 회사 근처에 작은 고시원을 얻었고 가끔은 항상 일찍 오시는 팀장님보다도 더 먼저 출근해서 8시 이전에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에는 막내 여사원이 사무실 내 모든 책상을 닦는 관습이 있었는데 매일 일찍 출근해서 열심히 책상까지 청소하는 모습을 팀장님은 매우 좋게 보셨던 거 같다. "나중에 내가 은혜씨 최초 여자 지점장 시킬 거야"는 말을 종종 하셨는데 당시에는 칭찬인 건 알았지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한 칭찬을 넘어 과분하리만큼 큰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몰랐던 또 하나, 나를 지점장 시켜주시겠다던 늘 푸근하고 좋으셨던 팀장님이 12월의 어느 날부터 갑자기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 지점 분위기는 뭔가 이상했고 팀원들을 내가 알 수 없는 말들을 속닥거렸는데 해마다 있는 연말 인사발령에서 우리 팀장님이 본사의 통보를 받고 소위 '잘린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가장 처음 접한 회사라는 조직의 냉정함이었다.   


아쉬워할 새도 없이 바로 새로운 팀장님이 오셨고, 그때부터 난 업무적으로 소위 '빡센' 시기와 더불어 마케팅으로 가는 일종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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