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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oche May 09. 2022

03. 영업 담당이란

2007년 8월~2008년 2월 동부영업팀

새로 오신 팀장님은 쾌활하셨지만 불도저 같은 면이 있어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분이셨다. 팀 선배와 함께 주말에도 불려 나가 종일 데이터를 추출하고 자료를 만들어야 했고 하필 그때가 연말이었는데 친구들과 새해맞이로 일본 오사카에 놀러 가려던 계획도 포기한 채 나 빼고 친구들만 떠났었다. 


영업팀에서의 주요 업무를 아주 간략히 말하자면, 경기도 성남 지역에 있는 휴플레이스 (현재의 '아리따움') 매장들의 실적을 관리하고, 신규 매장을 오픈하는 일이었다. 

(현재 휴플레이스를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실적을 관리한다는 건 사실 쉽게 말해 휴플레이스 점주들이 자사 (아모레퍼시픽) 제품을 최대한 많이 매입하도록, 또 많이 팔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내 사수를 따라다니며 사수가 점주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그들을 설득하는지 보고 배웠다.

회사의 영업전략과 목표, 매입실적 따른 보상을 설명하면서 제품을 많이 가져가 달라고 그동안의 정情을 토대로 호소하기도 하고, 가볍게 협박(?)도 해보고, 결국 사정도 하게 되는 다양한 행태를 볼 수 있었다. 

'나 혼자서 적어도 내 이모, 삼촌뻘 되는 점주들과 1:1로 이런 협상을 할 수 있을까'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영업담당, 게다가 여자인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업무를 하며 실제로 많은 어려움들에 부닥치곤 했다.

일단 대학을 갓 졸업한 나에게, 사람을 만나 내가 원하는 대로 설득한다는 것 즉 영업을 한다는 것은 막연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따뜻하고 좋은 점주도 있었지만 까칠하고 불만만 많은 점주도 분명 있었기에 그런 점주를 만나야 하는 날에는 한숨부터 났다.

때로는 강하게 나가야 하고 싫은 소리도 해야 하지만 애초 그런 성향이 못되어 괴로웠다.

담당하고 있는 매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늘 나에게 물어보지만 나 또한 경험 부족으로 잘 몰라서 해결을 못하는 것들이 항상 있기 마련이었고 이것은 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세트 제품의 목표 달성과 관련하여 발생했다.

1년에 두 번, 추석과 설을 앞두고는 화장품 회사도 소위 '대목'이라 다양한 세트 제품을 많이 출시한다. 그리고 각 매장마다 매입해야 하는 세트 목표금액이 부여된다.

그런데 내가 담당하고 있는 매장 중 한 곳의 달성률이 지나치게 낮았다. 보통 아무리 낮아도 70프로는 넘기는 반면 기억하기로 이 매장은 60프로도 안되었던 것 같다. 온정에 기대 호소해봐도 점주는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며 딱 필요한 만큼의 세트만 매입하고 추가로 더 매입하지는 않겠다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했다.

사실 논리적으로 보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점주들이 조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세트를 최대한 많이 매입하고 목표 달성률에 따라 주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보상(판촉 지원, 장려금 지원 등)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기에 이 점주의 행동은 상당히 예외적인 것이었다.  

지나치게 낮은 달성률 때문에 이 매장은 팀 내에서도 이슈가 되었고, 연차가 가장 높으신 부장님 한 분이 속만 태우고 있는 내게 조언을 하나 해주셨다. 

말로만 부탁하지 말고 지금까지의 세트 매입 관련 데이터를 모두 뽑아서 분석해보고 추가로 더 매입을 해도 판매할 수 있다는 걸 데이터로 보여주고 와라 


나는 스스로 먼저 찾아서 하지는 못해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는 잘하는 신입이었다. 

회사의 데이터 시스템을 활용해서 어설프게나마 이리저리 분석해보고 차트도 만들어가며 점주를 설득해볼 만한 뭐라도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미 저녁 6시가 넘어 다들 퇴근을 앞둔 시간이었지만 나는 점주를 한 번 더 보고 오겠다며 준비한 자료를 들고 그 시간에 외근을 나섰다. 아무리 늦은 시간일지언정 그날 반드시 점주를 만나 조금이나마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신입에게서만 볼 수 있는 패기와 강한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노력에도 점주 설득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나의 의지와 행동이 팀 내에서는 꽤 큰 인상을 남겼었고 많이 회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신입 좀 괜찮은 녀석이군"라고 생각하셨는지, 이후 팀장님께서는 어떤  결심을 하시게 되는데 이로써 나의 커리어가 바뀌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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