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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Dec 09. 2021

안식처

카페 그리고 커피

안식처     


오늘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뜩 깔려있다. 스치는 바람은 서늘하고 당장이라도 빗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날씨. 덕분에 현생에 치이고 있는 나도 같이 축축 늘어진다. 지치는 날,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을 때 가는 나만의 안식처가 있다. 물론 이런 날씨에 찾아가도 제격인 장소!     




처음 인연의 시작은 별거 없었다. 엄마에게 들은 딱 한 마디. “동네에 셀프핸드드립 하는 카페가 생겼더라” 셀프핸드드립? 핸드드립이면 핸드드립이지 셀프? 당시 전공 수업 일부분으로 커피를 배웠고 뷔페 아르바이트에서 수박 겉핥기로 에스프레소 머신도 만져본 터라 커피에 마음이 동하던 참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남편(사장님)과 아내(선생님), 부부가 운영하는 소박한 카페였지만 그곳에서 경험한 셀프핸드드립은 새로운 세계였다. 메뉴판에서 원하는 원두를 고르면 사장님께서 손님이 직접 내려 마실 수 있도록 핸드드립 세팅을 해주셨다. 나의 취향이 담긴 원두와 느림의 미학을 경험할 수 있게 세팅된 셀프바로 가서 잘 갈린 원두가 있는 칼리타 드립퍼에 드립포트로 뜨거운 물을 빙글빙글 부어내린다. 그리고 서버포트에 담긴 커피를 잔에 옮겨 자리로 가져가면 끝. 그때부터는 온전히 커피의 맛을 느끼며 분위기에 취하는 나의 시간이다. 원가보다 20% 저렴한 가격으로 원두에 대한 정보와 내리는 방법, 서툰 솜씨에도 칭찬까지 들을 수 있으니 가성비와 가심비 모두를 만족시키는 맞춤 서비스였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엔 무슨 원두를 마셔볼까?’ ‘오늘은 카페에서 과제를 해볼까?’ ‘요즘 카페라떼 맛있던데 마시러 가야지’ 등, 카페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하나씩 만들어 수시로 들락거렸고 급기야 커피 수업에까지 눈을 돌리게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 후 취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듣게 된 커피 수업이었는데 정신 차려 보니 내 손엔 바리스타 자격증이 쥐어졌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따고 싶은데 학원 수강료가 너무 비싸서 독학으로 필기만 땄던 내 사정을 들으신 카페 사장님과 선생님께서 개인 실기 수업을 제안해주신 덕분이다. 특별히 배려해주신 것에 폐를 끼칠 수 없었기에 수업 시간 외에도 연습하고 틈틈이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며 준비를 했다. 그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2인 1조로 들어가는 시험장에서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를 만드는 시연을 하면서도 옆 응시자를 볼 여유까지 챙기며 시험을 통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짧은 시간에 자격증 취득이라는 무리수를 두었지만, 덕분에 최단기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최초 수강생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고 그 후에 스타벅스에서 일하게 된 발판이 되었다. 그렇게 단골에서 수강생으로 이어졌고 킨텍스 카페&베이커리 박람회에서 부스 오픈을 돕는 스태프로 활약하면서 인연이 더욱더 깊어졌다.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카페에 입고되는 다양한 원두들을 맛보고 느끼면서 품종과 생산지, 농장, 발효 방법, 로스팅, 내리는 방법, 등 변수에 따라 풍미와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것이 나오는 개미지옥 같은 매력에 커피라는 세계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새로운 원두들을 탐구하면서 딸기스무디 풍미의 ‘콜롬비아 엘파라이소 핑크버본’, 열대과일 리치맛이 나는 ‘콜롬비아 엘파라이소 리치’, 갓 구운 빵에 꾸덕꾸덕한 치즈를 올린 듯한 아로마가 일품인 ‘콜롬비아 로꼬시리즈 피나콜라다’, 퇴근 후 아이스로 마시면 좋은 에일맥주맛 나는 ‘로꼬시리즈 IPA’ 같은 개성 강한 캐릭터가 있는 원두가 내 취향인 것도 알았다.


또한, 느림의 미학도 배웠다. 커피를 내리기 전에 적정 물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서버포트와 드립포트에 뜨거운 물을 옮겨 가며 식히는 시간, 원두 뜸 들이는 시간, 커피를 내릴 때 드립퍼의 원두를 지나 조금씩 서버포트를 타고 내려가는 시간, 커피 한 잔을 만드는데 거치는 하나하나의 과정에서 기꺼이 기다림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가슴에 못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심란한 날에 카페를 간다. 익숙하게 문을 열고 암묵적 단골 지정석인 테이블바에 앉는다. 음악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곳곳에 퍼져있는 커피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바 맞은편에선 선생님께서 바쁘게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옆에 이미 지정석에 앉아있는 단골손님이자 친한 언니와 함께 커피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커피에 흠뻑 빠지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통유리로 둘러싸인 로스팅룸이 보인다. 그 안에는 생두 포대 자루가 어지럽게 쌓여있고 그 틈 사이로 로스팅기와 고독한 사투를 하며 본인 마음에 드는 원두를 찾는 열정적인 사장님이 계신다. 카페인에 취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마음이 말랑말랑 녹아내리면 어느새 내 기분과 고민은 가벼워져 있다. 도망치듯이 들어온 카페에서 안식을 얻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그래서 오늘도 찾는다. 나의 안식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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