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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연 Mar 15. 2022

사다트

외국을 어느 정도 여행하다 보면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은 퇴색한다. 특히 대도시를 다녀보면 고층빌딩과 지하철역의 모습도 얼추 비슷하고 상하이든 파리든 맥도널드나 스타벅스가 즐비한 모습을 보면 식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누가 나에게 파리의 맥도널드는 다른 나라보다 더 훌륭하다고 했던가? 패스트푸드도 원산지 장점이 있는지 개인적으론 미국 맥도널드가 훨씬 맛있다.) 중동, 카타르에 도착해서도 사방이 그저 모래사장이지만 빌딩이 즐비한 도시일 뿐 막상 도착하니 기대한 것처럼 색다른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최신식 건물과 대형 쇼핑센터에 널널한 주차장과 각종 해외 유명 브랜드가 들어차서 마치 캘리포니아에 온 것 같았다. 방향감을 잃은 착각이 들 때마다 내가 중동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건 아잔(Arjan)이었다. 하루에 5번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울려 퍼지는 아잔은 신비하면서도 이국적이었다. 아잔은 중동을 소개하는 영화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그만큼 이슬람 인들의 중요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중동에 대한 영화가 주로 테러 소재의 영화이기에 영화에서 아잔이 울려 퍼지는 장면은 마치 위험의 전주곡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선입견을 빼고 본다면 신에게 그들의 삶을 바치는 거룩한 일상이다.


내가 머무르는 숙소나 사무실 근처에 모스크 사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건물 내에서 안내방송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진 모스크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아잔은 메아리가 되어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진다. 모스크마다 설치된 야외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목소리는 제각각이지만 느리고 간절한 목소리로 “알라 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는 첫마디는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게서도 경외심을 일으켰다.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모든 게 낯설기만 한데 멀리서 들리는 아잔은 새벽에도 나를 흔들어 깨웠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지만 내가 알라의 땅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카타르를 포함한 중동 산유국들의 남다른 특징은 그들이 흥청망청 탕진하는 오일머니다. 국가 재정이 아무리 튼튼하고 GDP가 높은 나라라고 해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천문학적 비용이 소모되는 건설과 토목에 호기를 부릴 여유는 없다. 진시황이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에 보여준 것처럼 건설이라는 것은 권력자의 힘과 상징이지만 그 대가가 너무 커서 권력자의 무덤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구도 많지 않고 대부분의 생산활동과 기업은 정유 관련 사업인 중동에서는 사무실이 필요한 회사 개수는 더 많지 않다. 굳이 30층 이상의 고층 빌딩이나 호텔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유가의 거품은 오일 부국의 허영심을 자극했고 전 국토에 개발 붐을 일으키며 세계 유명 건축가와 건설사들을 불러 모았다. 덕분에 우리나라 건설사들도 혜택을 보긴 했지만 알짜 돈은 유럽의 유명 건축가들에게 돌아가는 나비효과가 발생했다. 유명 건축상을 휩쓴 장 누벨(Jean Nouvel), 이오밍 페이(I.M. Pei), 렘 쿨하스(Rem Koolhas),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품은 창의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존재 자체만으로 랜드마크이자 관광명소가 된다. 스타 건축가들의 작품은 전례 없는 혁신적인 디자인이기 때문에 건축의 전통적 설계나 구조를 파괴하거나 과감하게 변형했다. 이는 건축 공법의 기술적인 도전과 새로운 건축 자재 연구를 필요로 하고 건설비용을 배로 올리는 원인이 된다. 이런 최고가 프로젝트는 디자인을 구현할 공법과 소재를 제때에 찾지 못하기에  공사는 무기한으로 연장되어 공사비를 눈덩이처럼 불리고, 늘어난 공사비용을 협상하려 공사는 다시 연장되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탄성을 자아내는 너무나 아름다운 예술품이지만 건설사에게는 창작의 고통과 건물주에게는 재정적 부담을 안겨주고 탄생하는 작품들인 것이다. 디자인 비용만 우리나라 돈으로 50~80억씩 부르는 비싼 몸값도 그들을 고용함으로써 파생되는 돈잔치에 비하면 식전주 수준이랄까? 그래서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이 한 나라에 한 두 개 있는 것만도 대단한 도전이자 위엄의 실현인데 오일 머니의 나라에는 부루마블 하듯 한정판 컬렉션처럼 쭈루륵 모여있다. 자동차나 반도체를 팔아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머니 게임이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돈의 향연에서 소외된 자들이 있다. 거대하고 복잡한 건설업 생태계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는 사람들, 온몸을 태워 버릴 듯한 더위와 숨 막히는 모랫 바람 속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옛날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주로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심지어 가끔 북한 노동자들도 끼어 있다.) 등에서 온 노동자들은 사막의 기적을 바닥에서부터 지어 올리는 사람들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고온 속에서 그들이 부단히 몸을 움직여 버는 돈은 한 달에 40만 원이 안된다. 그 마저도 취업 브로커에게 알량한 수수료와 체류비를 내면 20만 원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열악한 작업 조건과 살인적인 더위는 그들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거나 심장마비 또는 돌연사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루 종일 고된 노동으로 녹초가 된 몸이라 잠깐의 휴식도 아까울 텐데 그중 알라를 믿는 사람들은 아잔이 울리면 어김없이 기도를 올린다. 모스크 사원 내에 사람이 가득 차서 들어갈 수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더기 옷을 입었을지언정 사원 밖, 길가에 빼곡히 모여 단체로 메카를 향해 경배를 올린다. 내게는 그들의 알라가 아니라 장소의 귀천 없이 기도를 올리는 그들이 성스러워 보였다. 신이 사라진 이 시대에 그들의 믿음이 종교적 복종이던 문화적 세뇌이던 그들은 매일같이 하루에 5번 알라에게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어느 신이던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언젠가는 떠나온 가족에게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언젠가는 그들도 신의 축복 속에서 좀 더 공평한 삶을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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