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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연 Aug 29. 2022

French Fantasia

문화, 예술의 나라 프랑스. <자유, 평등, 박애 (Libterte, Egalite, Fraternite)>의 나라이며 아무데서나 사진 찍어도 인생샷이 나오는 감성의 나라 프랑스는 전 세계인들의 선망이 대상이다. 명실공히 관광수입국 1위이며 해외여행을 안 다니기로 유명한 미국인들에게조차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 1위인 곳이 프랑스다. 헤밍웨이가 축제로 살았었고, 대부호 락펠러 재단이 기부하는 박물관이 있고, 영화 감독 우디 알렌이 짝사랑하는 곳이 모두 프랑스다. 정말 부러운 유명세다. 하지만 나라가 멋지다고 해서 사람들까지 멋진 것은 아니다. 프렌치들의 오만함과 고집불통, 히스테리 또한 악명이 높다.      


“신이 프랑스를 너무 사랑해서 아름다운 햇빛과 기후 자연환경을 주었지만

다른 나라에게도 공평해야하는 의무가 있기에 프랑스인을 주었다.”는 농담은 유명하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고 잘못했으면 그냥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될일을 구구절절 변명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 공감한다고 일일이 들어주면 하루 시간을 다 뺏길 정도로 끝이 없다. 반대로 프렌치들이 고객이나 직장 상사가 되면 최악의 시어머니처럼 작은 실수에 피 말리는 잔소리와 추궁을 몇 달에 걸쳐 들어야 한다. (갑질 근절법과 문화가 생긴 한국이 오히려 선진국이다.) 몇 번의 악몽 같은 사건 이후 프렌치 기피증이 생긴 내가 파리에 온 것부터가 실수였는지 모른다.      


나와는 달리 인내심과 인류애가 넘치는 남친님은 개개인이 다 독립적 인격체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편견 없이 들어줘야 한다고 팔자 좋은 조언을 한다. 시간 없다고 툴툴 거리며 효율성을 따지고 앉아 있으면서 인간적 문제만 나오면 성인군자처럼 나의 단점을 지적한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인간 관계에서 가장 근간인 호혜성 없이 건전한 상호 교류가 가능할 수 있을까?      


프랑스 문화와 인본주의 철학이 현대 문명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랑스 혁명때 만들어진 ’인간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이며 동지이다.’라는 프랑스의 구호는 전 세계에 퍼져 계급제도를 타파하고 인류를 자유롭게 해방시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프랑스의 대표 상징엔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궁도 있다. 모두 그들이 브루쥬아라고 비난하고 정의의 심판으로 처단한 왕과 귀족들의 문화 유산이다. 그들의 자부심인 프렌치 푸드와 와인, 클래식 음악, 발레 모두 왕과 귀족들이만이 누리던 전유물이었다.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지만 전통과 관습을 누구보다 중요시하는 것도 프렌치들이다. 그래서 내가 지켜본 프렌치들은 절대로 자유롭지도 않고 평등하지도 않다. 두 찬란한 유산의 극단적 간극 사이에서 그들은 뼛속 깊은 계급주의와 그로 인한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 우리 모두 이중성을 가진 동물이지만 그들의 이중성은 그들의 문화처럼 극단적이다.                  


그래서 난 또 식탁 매너가 깔끔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간단한 빵 한조각을 먹어도 냅킨이 없으면 큰일이고 와인은 호스트가 꼭 따라 주어야 할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고기 자르는 칼 치즈 자르는 칼을 모두 따로 써야한단다. 귀족 집안 자제분이고 예의범절과 형식 모두 중요시하는 두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남친님의 잔소리가 넘친다. 심지어 밖을 산책할 때도 평범한 연인들처럼 손 한번 잡아주지 않는다. 자기가 무슨 엘리자배스 여왕의 숨겨진 아들도 아니면서 ..... 내가 그렇게 기본 예의도 모르게 자라고 행동한 게 아닌데 말이다. 서양 귀족의 문화와 관습을 자세히 모를 수 밖에 없는 내가 범하는 실수가 한 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신분차이의 서러움을 이렇게 받는 것 같다.      


유명 패션회사에서 근무하는 남친님의 친구가 저녁 선상 파티에 초대했다.     

- 파리에서 가장 로맨틱한 곳이 어딘지 알아?

- 글쎄, 에펠탑? 몽마르뜨?

- 우리 친구 집.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길을 안내한 친구를 따랐다. 유명한 동네일줄 알았는데 친구는 파리 센느강에 차를 세웠다. 파리 센느강이 로맨틱한 건 주변 건물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성 강하고 스타일리시한 프렌치들처럼 다양한 선상가옥이 많아서이다. 좁은 중세 도시에 모여 사느라 주택 문제가 심각한 파리에 선상가옥은 로맨틱한 해결방법일 것이다. 센느강을 지날 때마다 그 내부가 궁금했는데 가장 로맨틱하기까지 하다니 발을 굴릴 정도로 신이 났다. 콩콛]코드 광장에 도착해서 친구를 따라 나무 선착장을 올라 배에 내렸는데 .... 그냥 배였다. 주변 배들보다 조금 더 큰 거 빼고는 별 다를게 없었다. 로맨스에 죽고 사는 게 여자고 파리에 한번 목맨 인생이었는데 .... 실망스럽기만 했다. 간신히 표정관리를 하고 집주인에게 정중히 초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후에 예의 바르게 친구놈을 잡으러 갔다.      


- 로맨틱 다 오디 갔는데? 하나도 안 로맨틱하잖아.

- 하아 참, 기다려, 너희 한국인들은 참을성이 없어.

- 참을성 없으니까 빨리 말해.

뾰루퉁한 얼굴로 추궁하는 나에게 친구는 여유롭게 샴페인 잔을 건넸다.      


- 로맨틱을 즐기려면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  

여전히 자신만만한 친구의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싱글 싱글 웃는 그가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물이 출렁일때마다 배도 같이 철렁여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기분 낸다고 신은 하이힐과 손에 든 샴페인 잔 때문에 바로 서기가 더 힘들었다. 럭져리 요트도 아니고 낡은 구형 배에서 이리저리 치이니 나의 짜증은 한계점에 도달해서 신경질을 어떻게 누구한테 부려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리사, 자 봐

그가 가리키는 곳에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순식간에 오스만 건물들이 황금색으로 변하며 오페라 극장 무대가 된 것 같았다.      

‘모 그래. 좀 낭만있네.’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하는 친구가 나를 세운다.


- 그리고 뒤를 보시오.

- 와~~~~

- 내 말이 맞지? 파리에서 가장 로맨틱한 곳

알렉산더 3세의 다리가 점등을 했다. 일몰의 빛을 받아 다리의 가로등은 더 붉게 빛난다. 시선 어디를 돌려도 빛의 잔치 한 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      


‘역시 프렌치들은 제대로 놀 줄 아네.’

프렌치들의 단점을 많이 보는 나에게도 한가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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