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담 Oct 11. 2023

베트남 청년들의 고시원 생활

코리안드림을 이룰 수 있을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일 수도 있는데, 고시원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산다. 특히 강남, 신촌, 홍대 쪽에는 외국인 손님 비중도 굉장히 많은 편이다. 실제로 내가 고시원 인수를 위해 강남 쪽 노른자 입지에 있는 매물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외국인 손님이 절반 이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고 글로벌한 동네이니 외국인 손님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긴 한데, 실제로 그 비중이 꽤 높았다. 헌데 한창 코로나가 터졌을 무렵, 외국인 손님 비중이 높았던 고시원의 경우 타 고시원에 비해 그만큼 타격도 컸다고 한다. 한마디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우리가 예전에 임장을 갔던 고시원 원장님도 꽤 오랜 기간 운영을 하셨는데, 나이가 지긋하심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며 입실 관리를 하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허나 코로나 시국을 견뎌내며 마음고생이 너무나도 심해서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쉬고 싶다고 이야기하셨던 생각이 난다.


아무튼 고시원을 찾는 외국인 고객들은 대부분 관광객, 유학생, 근처 직장인 혹은 아르바이트생 신분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고시원에도 외국인 전용 요금을 따로 받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외국에 나가면 관광객 전용 요금이 있듯이, 고시원에도 그런 관행이 있는 것 같다. 한국 물정을 잘 모르거나 혹은 웃돈을 주더라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불리한 상황을 역이용해 추가요금을 받는 것이다.


외국인 손님들의 국적은 캐나다, 일본, 중국, 베트남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우리 고시원에도 현재까지 머물고 있는 외국인 손님도 있고, 몇 개월간 지내다가 이미 퇴실한 손님도 있다. 국적만큼이나 개성도 강한 입실자들이라 기억에 남는 굵직한 에피소드들도 꽤 있다.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인 손님은 바로 베트남 국적의 청년들이다. 고시원에서 사는 베트남 청년들은 어떤 모습일까?


1

제일 싼 걸로 주세요


이들은 방을 구할 때부터 그 과정이 남달랐다. 일반적인 경우 더듬더듬 어색한 한국말로 전화를 걸어오거나, 번역기로 돌린듯한 부자연스러운 말투로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베트남 손님들이 지낼 방을 알아봐 달라고 한 것은 다름 아닌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여사장님이었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방 문의를 하는 경우는 보통 고시 공부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학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식당 사장님이 대신 방을 구해달라고 하는 것은 우리 고시원에서는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그 여사장님은 근처에서 크게 베트남 쌀국숫집을 운영하고 있었고, 마침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베트남 학생들의 숙소가 필요한 것이었다.


입실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방의 크기, 환기 정도, 채광 여부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격부터 흥정을 해온 여사장님의 태도였다. 위풍당당한 여사장의 니즈가 무조건 저렴한 방이었기에 우리도 그에 맞춰 가장 싸고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내창방으로 계약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더 좋은 방도 있었지만 말이다.)


만일 베트남 외노자의 숙소가 아닌, 당신 자식의 방을 구하는 입장이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대학생, 시험준비생, 취업 및 이직준비생,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사회초년생까지 이미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에 미처 정착하지 못한 자식을 둔 부모님들을 그간 많이 상담해 봤다. 돈이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적당하면 적당한 데로 하나같이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따져서 피곤할 때가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나 카톡을 해서 방 사진을 보내달라, 벌레는 없냐, 냉난방은 잘 되냐, 겨울에 춥지는 않냐 등등 온갖 질문을 퍼붓는 부모님은 평이 한 측에 속한다. 어떤 경우에는 엄마 아빠 형제자매까지 온 가족을 대동하고 와서는 2평짜리 고시원 방을 한 시간씩 뜯어보기도 했다. 서울에서 두세 시간 거리인 지방에서 올라오는 학생들의 경우 머나먼 이국 땅으로 이민이라도 온양 온 식구들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그다지 몇 박스 되지도 않는 이삿짐을 함께 정리해주기도 한다.


그런 것에 비하면 베트남 학생들의 방 구하기 과정은 너무나도 심플했다. 여사장의 의지에 따른 '가격'만이 오직 필수 조건이었다.



2

한국인 사장님은 우주최강 슈퍼파워


한 번은 한밤중에 고시원에서 소음 민원이 발생된 적이 있었다. 우리 고시원은 평소에도 쥐새끼 한 마리 없는가 싶을 정도로 조용한 편이라서 그때까지 단 한 번의 소음 민원도 발생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옆방에서 아주 큰 소리로 음악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 당장 다음날 아침 일찍 학원에 가야 하는 수험생 입실자의 짜증스러운 민원 전화였다.


소음이 나는 위치를 추적해 보니 음악 소리는 다름 아닌 베트남 학생이 원인이었다. 한국말이 익숙지 않아 여러 번의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아마도 한국의 고시원에 처음 살다 보니 고시원 방음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몰랐던 것 같다. 이 정도 음악소리는 괜찮겠지? 하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고시원의 방음 수준은 매우 열악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발방지 차원에서 다음날 식당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지난밤의 일을 설명했다. 앞으로는 그런 민원이 발생되지 않게 잘 설명해 달라고 부탁의 말씀을 드렸는데,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소음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 어떤 문제도 일으킨 적이 없다.


베트남 학생들에게 있어 한국인 사장님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엄청난 것 같다.



3

고시원에서도 꽃피는 베트남 청년들의 연애


나이, 국적, 공간을 불문하고 어디에서든 사랑이 꽃피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전쟁통에도 구구절절한 러브스토리는 늘 존재해 왔다. 베트남 학생들도 역시나 피 끓는 청춘임이 틀림없다. 20대를 갓 넘긴듯한 이들이 어떤 연유로 한국 고시원에 살며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타국 땅에서 서로 의지하고 큰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단연코 '연애'가 아닐까 싶다.


사실 외국인뿐만이 아니라 고시원에서 지내는 많은 한국인 청년들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수시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나가거나, 늦은 밤 고시원 앞에서 헤어질 땐 귀여운 애정 행각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나는 괜스레 쌍팔년도 학부모 모드가 되어 따끔한 한마디를 날려주고 싶다.  '여러분,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엄마 속이 타들어가요! 얼른 들어가서 공부하세요!' 하고 말이다. 일명 꼰대 마인드가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지만, 절대로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다. 오지라퍼 고시원 원장의 소리 없는 외침이랄까?


같은 층이지만 각 각 다른 방에 살고 있는 두 베트남 청춘 남녀는 두 방을 서로 자주 오가며 지내는 것 같은데, 그럴 거면 그냥 큰 방 하나를 구해서 같이 사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 같다. 여태껏 뻔질 나게 양쪽 방을 오가며 지내는 두 청춘 남녀로 인한 음탕한 소음 민원은 아직까지 없었는데, 고시원 원장으로서 그 점은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꽃이 더 숭고하게 느껴지듯,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서울 한복판 고시원에서 피어나는 이들의 로맨스에는 매우 극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끈적끈적한 진흙탕을 힘 있게 밀고 나와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연꽃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따뜻한 유리 온실 속에서 피어난 우아한 꽃 보다 몇 배는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게다가 그 진흙은 수천 킬로 미터 떨어진 타국 땅이다. 한마디로 이들의 연애는 지금 너무 흥미진진한 드라마와 같다. 도저히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이들의 서울 고시원 로맨스를 격하게 응원한다.

부디 사랑의 힘으로 한국 생활을 좀 더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4

생각보다 순수한 마음씨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여름을 준비하며 대대적인 에어컨 청소가 이루어지는 시즌이었다. 우리는 입실자 전원에게 문자를 보내 어에컨 청소 서비스를 해줄 예정이니 가능한 일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베트남 청년에게 온 답장이 너무 뜻밖이었다. 그가 보낸 문자의 첫마디는 이렇게 시작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번역기를 잘못 돌린 것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주인님'으로 시작하는 문자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어지는 말은 이러했다. 욕실이 언제부터인가 매우 더러워져 있는데 이 점이 매우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인가 싶어 곧바로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 상태를 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욕실 천장부가 먹칠을 한 듯 온통 새까만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건지? 상황이 이렇게 될 동안 왜 말을 안 한 거지?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지만, 채광도 환기도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가장 저렴한 방이었기에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도 열심히 환기를 시켰다면 그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혹시나 쌀국숫집 사장님 귀에 들어가 싫은 소리를 듣거나 그저 돈밖에 모르는 고시원 원장이 모두 배상하고 퇴실하라는 엄포를 놓을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일까? 어쩐지 그의 태도는 쪼그라든 풍선처럼 위축되어 보였고, 조심스런 문자 메세지는 불안해 보였다.


곧이어 있을 에어컨 청소로 방을 개방하게 되면, 들통날 충격적인 곰팡이의 상태를 이실직고하며, 마치 모든 것이 본인의 잘못인 양 죄송해하는 베트남 청년을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저 괜찮다는 말과 함께 에어컨청소와 함께 곰팡이로 뒤덮인 욕실 천장을 말끔하게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베트남 청년에게서 또 한 번의 문자가 왔다.

"주인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시 들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주인님'으로 시작되는 두 번째 문자였다.


그 후로도 그 베트남 청년은 고시원에서 마주치면 매우 깍듯이 인사를 건네고 있으며, 매월 착실하게 입실료를 납부하고 있다. 고시원 생활이 꽤나 만족스러운지 본인 친구를 우리 고시원에 데려오고 싶다며 추가로 빈방이 생기면 꼭 알려달기까지 했다는 훈훈한 이야기이다.





베트남 물가가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음료수 한잔에 1000원, 밥 한 끼에 2000원이라는 글을 보았다. 통상적으로 베트남 급여와 우리나라 급여를 비교해 보면 7~10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 한국어 공부를 열성적으로 하는 청년들도 많다고 하는데 10배라는 급여 차이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원래 제조, 농업, 건설, 어업에 해당하는 비전문 취업비자를 득해서 들어오는 게 정석이나 이것 또한 요즘은 쉽지 않아 음성적인 루트로 들어오거나, 일단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불법취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럴 경우 이들은 의료보험이나 산재 등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의료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불법체류 신분이 발각될 경우 약 600만 원 정도의 벌금을 내야 하고 동시에 추방명령을 당한다고 하니, 이러한 처지를 역이용해 부당한 대우를 일삼는 악덕 업주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배경 지식을 가지고 생각해 본다면, 베트남 청년들의 상황과 태도가 조금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 고시원에 사는 베트남 청년들이 합법적으로 들어왔는지, 불법적으로 들어왔는지 혹은 불법체류자 신분일지 아닐지 따져볼 마음은 전혀 없다.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차마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한국에 왔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저 한류 열풍에 매료되어 엉뚱한 동기로 한국에 왔을 수도 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 이민자의 서사를 그린 넷플릭스 영화 '미나리'속 주인공들처럼 코리안 드림을 품고 있을지도 모를, 평범한 그들에게.


한국에서의 고시원 생활이 기회의 씨앗을 키울 수 있는 작은 터전이 되길 바랄 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꿈을 이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저마다의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잡지 못했을 뿐이다.  
-앤드류 카네기




작가의 이전글 고시원 사는 부자 할머니의 숨겨진 반전 매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