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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Oct 23. 2023

대사관 쪽에서 일한다는 중국인 손님의 진짜 명함

고시원에 사는 중국인 이야기

중국인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시끄러운 말투, 비위생적 이미지, 화통을 넘어 불같은 성격

나는 중국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위와 같은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중국에 가본 적도 없고 중국인 친구를 사귀어본 적도 없지만 다양한 매스컴과 여행지에서 마주쳤던 중국인들의 모습은 어쩐지 과장되어 보이고, 막무가내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중국인을 비하할 의도는 없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받은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얼마 전 베트남 입실자에 이어 중국인 입실자가 들어왔다. 중국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에 어쩐지 중국 청년의 입실 문의가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시끄럽게 굴면 어쩌나, 방을 더럽게 쓰면 어쩌나, 사람들과 트러블을 일으켜 큰 소리로 싸우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중국인 입실자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다른 원장님들에게 들은 몇 가지 무시무시한 에피소드들 때문이다. 내가 들은 중국인 손님과 관련된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해보겠다.


대학가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는 중국인 손님 때문에 방학 때 퇴실한 대학생들이 개학시즌이 되어도 다시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대학가에 있는 고시원일수록 특정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기 때문에 재계약률이 중요하다.)


퇴실하는 학생에게 물어보니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가 그곳에 묵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속옷 차림으로 복도를 아무렇지 않게 불쑥불쑥 돌아다니거나 이상한 냄새가 나는 음식을 공용주방에서 자주 해 먹는다는 것이었다. 중국인 유학생이 있으면 일단 계약 후보지에서 걸러질 수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한 고시원에서 허리춤에 칼을 차고 다니는 중국인 입실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고시원을 운영하다 보면 가장 힘든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나 험한 동네에서 장사를 할수록 입실자들을 다루어야 하는 난이도가 극상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정상적인 대화조차 안 통하는 사람, 피해망상이 있는 사람, 정신분열이 있는 사람 등등 케이스도 다양하다. 이런 입실자가 있을 경우 입실 자간 민원은 물론 원장과 큰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있어,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칼을 차고 다니는 중국인이라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절여온다.


세 번째 이야기는 두 번째에 비하면 좀 양반인 경우다. 중국인들이 공용 공간을 매우 엉망으로 쓰거나, 공용 자원을 헤프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곳이기에 오히려 공중도덕을 더욱더 지켜야 하는 곳이 고시원이다. 생활수칙을 잘 지키지 않는다면 당연히 각종 민원이 발생하고,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퇴실자가 속출하기도 한다.


또한 입실료에 포함되어 있는 전기, 수도, 난방 등을 펑펑 써댄다면 원장 입장에서는 수익률에 큰 타격을 입는다. 최근에 이와 관련된 충격적인 기사를 하나 보았는데 한 국내 에어비앤비 숙소에 묵었던 중국인 부부가 120톤의 물을 사용했다는 기사였다. 120톤은 쉬지 않고 6일 동안 수도꼭지를 틀어놔야 하는 양이라는데, 6일 동안 도대체 숙소 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당연히 숙소 주인은 수도요금 폭탄을 맞았다.


그 외에도 중국인과 관련된 고시원 괴담은 한두 개가 아닌지라, 이쯤 되면 내가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생기지 않은 게 되려 이상할 정도이다. 하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에서 온 중국인들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고시원을 찾는 중국인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고시원 홍보 글이나 광고글 또한 중국어 버전으로 제작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고시원을 찾은 중국인 청년의 말투는 정중했고 조용조용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중국인 특유의 화통함이 느껴지는 톤이었다.


“방 있놔요?"

"언제 입실 원하세요?"

"내일 당장 원합니다."    

"내일 당장이요..?"


아, 중국인답다. 밤 9시인데 내일 당장 입실하고 싶다고? 막무가내고만. 하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그리고 우리는 당장 입실을 원하는 고객은 1차로 필터링하는 나름의 경험적 기준이 있었다. 왜냐하면 보통 급박하게 입실을 원하는 사람일수록 그만큼 긴박한 사연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살고 있던 곳에서 문제를 일으켜 어쩔 수 없이 거주지를 옮기기 위해 방을 알아보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좋지 않은 상황을 피해 급히 머물 곳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더욱이 중국인이라니! 비어있는 방은 있었지만 흔쾌히 방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주변에 고시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들에게 듣기로는 밤늦게 전화해서 다짜고짜 방 있냐고 묻는 사람, 지금 당장 입실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무조건 걸러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유형의 입실자를 만실 채울 욕심에 덜컥 받았다가 온갖 고생을 한 경험들이 한두 번씩은 꼭 있다고 했다. 근처 고시원에서 쫓겨난 조현병 환자인 경우도 있었고, 경찰에게 쫓기는 범죄자인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그러고 보니 예전에 임장 갔던 한 고시원에서는 거주자의 짐이 있는 방을 열어서 구경 시켜준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수갑 차고 끌려가서 미처 짐을 빼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마침 그날따라 방이 하나 비어 있었다. 원래는 만실이었다가 오랫동안 지내기로 했던 입실자가 막상 며칠 지내보니 맘에 들지 않는다며 갑자기 통보만 하고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고시원 원장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좀 상할 때가 있다. 다 돈 벌자고 하는 일이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서도 누군가에게 방을 내어주기 위해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하나하나 보수를 하고, 각종 소품들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물론 방향제까지 세심하게 골라서 넣기 때문이다.


그날은 1년 장기 계약을 해놓고서는 무엇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3일 만에 말도 없이 나가버린 경우 없는 입실자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한 터였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다 사람 나름이지 뭐, 하는 생각을 하며 중국인 손님에게 다음날 아침 일찍 방을 보러 오라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CCTV와 전화 목소리를 통해 마주한 중국인은 호리호리한 몸매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우리가 걱정했던 것보다 조용한 말투를 가졌고 첫인상은 크게 나쁘지 않아 보였다. 리스크 회피 성향이 매우 강한 평소의 남편이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입실자를 받을 리가 없었지만, 심사숙고 끝에 고르고 골라 받았던 손님이 3일 만에 팽하고 나가버린 뒤였다. 더 이상 본인만의 입실자 선별 시스템이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바로 OK를 했다.


평소와 달리 우리 부부가 약간은 충동적이었던 탓에, 그 중국인은 운 좋게 하루 만에 방을 구하게 되었다. 다음 날 입실 계약서를 받으면서 추가로 알게 된 사실은 중국인의 직장이 '명동' 근처라는 것이었다. 마침 중국인의 옷차림은 화이트 칼라 셔츠에 어두운 네이비색 계통의 면바지가 어우러진 평범한 비즈니스 캐주얼이었다. 남편은 중국인의 옷차림을 보고 조금은 안심 한 것 같았다. 적어도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후로도 우리가 지켜본 중국인 입실자는 꽤나 규칙적인 시간에 출퇴근을 했고 조용한 생활을 이어갔다. 정말 다행이었다.


한 번은 남편이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어떤 일을 하시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인 입실자 입에서 정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서툴지만 꽤 능숙한 한국말로 '중국 대사관 쪽이요.' 하고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그날 집에 와서는 나에게 엄청 외외라는듯이, 그리고 어쩐지 느낌이 나쁘지 않더라는 말과 함께 그가 ‘대사관'에서 일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뭐? 그 중국인이 대사관에서 일한다고? 아.. 중국 대사관이 명동 근처에 있었구나. 근데 대사관에서 일할 정도면 근데 왜 고시원 생활을 하지?"

"에이 뭐~ 요즘은 돈 있어도 일부러 고시원 생활 하는 사람도 많잖아."

"그렇긴 하지. 중국인이라고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그치? 3일 만에 나간 한국인 학생보다 훨씬 낫네. 조용하고 불만도 없고 잘 지내는 것 같아."

"잘됐네."


우리는 이런 대화를 끝으로 더 이상 중국인 입실자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속옷차림으로 돌아다지도 않을뿐더러, 허리춤에 칼을 차고 다닐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딱 한 가지 단점이라면 다른 입실자들에 비해 주방에서 향이 강하거나, 기름을 사용한 음식을 자주 해 먹는다는 것 정도였다. 그래도 그 정도면 양호했다. 어느덧 우리는 중국인 입실자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한두 달이 지난 지금은 다른 입실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대하게 되었다.  




이렇듯 처음 외국인 손님을 받기 시작했을 때는 중국인은 이렇다더라, 베트남인은 저렇다더라. ~카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만 듣고는 이런저런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했었다. 사실 이것은 외국인뿐만이 아니라 내국인 손님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모, 직업, 성별, 옷차림 등 겉으로 보이고 남들이 말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지레 짐작하여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하여 괜한 오해를 하거나 쓸데없이 겁을 먹은 적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를 섣불리 판단하고 나의 방식대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일인지 하루에도 열 번씩 배우고 있다.


오히려 어쭙잖게 평가하고, 걸러내고, 짜 맞추려고 할 때마다 우습게도 뒤통수를 맞은 적이 많다. 분명 가난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보기보다 형편이 나쁘지 않았고,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일 거라 믿었던 사람은 사기꾼이기도 하였다. 고시원이라는 세상에서는 무엇이 맞고 틀린지,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나와 남편은 10년 이상 특정 기업에 직장인으로 몸을 담았다. 이 말은 즉슨 비슷한 학력의, 비슷한 월급에, 비슷한 수준의 동네에 살던 사람들과 긴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던 일이 업무적으로 엄청나게 도전적이거나 다양한 외부 사람을 만나는 직종도 아니었다. 가끔 부서 내에 또라이라고 불리는 문제적 인물이 한두 명씩 있긴 했지만, 우리가 그간 전부라고 믿고 살아왔던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고만고만한 사람들뿐이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도토리 키재기를 하면서 우리의 시야는 좁아졌고 생각의 크기도 도토리만큼 짤막해져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어차피 인간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한 것만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그 말인즉슨 딱 나의 경험치만큼만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회사라는 틀 안에서 하루하루만 바라보고, 열심히 일하며 구축해온 기존의 세계관만으로는 고시원의 사람들을 도저히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세 달 켜켜이 시간이 흘러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경험치는 점점 더 쌓여가고 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어가고 있다. 표준렌즈로 바라보던 세상이 광각렌즈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격하게 동의하는 속담 중 하나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다. 사람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제 고작 순진한 직장인에서 고시원 원장이라는 직업을 하나 더 알게 되었을 뿐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직업의 세계가 존재할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그중 나는 단 두 가지를 경험하고 있을 뿐이니, 아직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 모든 직업과 세계를 경험하고 살 순 없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임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한계를 인식하고 섣부르고 오만한 판단을 경계하며, 꾸준히 각자의 세계를 넓혀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 전 알게 된 재밌는 반전 사실을 하나 더 알려주겠다.


중국 대사관 쪽에서 일한다던 중국인의 진짜 직장은, 알고 보니 중국 대사관 근처의 '편의점'이었다. (모든 것은 단순한 오해에 불과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얼마 전 알게 되었지만 우리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그는 조용하고, 젠틀하고, 문제없이 잘 지내주는 좋은 입실자 중 한명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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