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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Dec 16. 2023

오늘도 대기업 대신 고시원으로 출근합니다.

마침내 고시원으로 첫 출근 하던 날


  드디어 고시원을 인수 한 뒤, 공식적인 첫 출근을 하는 날이다. 3개월 간의 고시원 사업 스터디와 임장, 각고의 고민 끝에 선택한 고시원이었다. 과연 우리가 운명이라 여기며 싸인한 고시원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앞으로 우리는 이곳에서 어떤 일들을 맞닥뜨리게 될까? 하는 다양한 물음표를 머릿속에 띄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고시원 사업을 준비하면서부터 워낙에 고시원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사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알다시피 세상엔 또라이 총량의 법칙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어딜 가든 꼭 이상한 사람이 한 두 명씩 존재하듯이, 고시원에도 분명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만에 하나 또라이가 정말로 살고 있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역사적인 고시원 첫 출근은 지하철로 하기로 했다. 출퇴근을 한다는 가정 하에 도어 투 도어로 얼마나 걸리는지 파악도 하고, 동네도 눈에 익힐 겸 뚜벅이를 자처했다. 아침 9시 30분. 출근 시간을 살짝 비켜나간 시간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은 여전히 마음 급한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한 발 늦게 출발하면 출근 대란을 피해 조금은 숨 쉴 구멍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전히 콩나물시루처럼 꽉 막힌 출근 열차 속 사람들과 사이좋게 바싹 붙어 몸을 싣고 나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저마다의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은 딱딱한 옷차림에 두꺼운 패딩재킷이나 코트를 껴입고 한 손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출근 가방을 들고 있다. 그런데 오늘따라 사람들의 눈에는 총기가 없다. 연말 연초 결산이 바빠서 몇 날 며칠 야근을 했을 수도 있고, 어젯밤 늦게까지 연말 회식을 했을 수도. 혹은 한 겨울에 기승하는 감기에 걸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밤새 잠을 설친 후 출근 하는 길 일수도 있으리라.


  그 사이에 껴있는 남편과 나는 둘이 맞춰 입기라도 한 듯, 검은색 트레이닝복 세트에 낡은 롱패딩을 입고 야구모자를 야무지게 눌러썼다. 고시원에 가면 제일 먼저 청소부터 할 생각으로 차려입은 격식 없는 옷차림 때문이었을까, 사뭇 긴장한 우리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마치 타서는 안될 열차에 올라탄 불청객이 된 것만 같았다. 문득 정체 모를 이질감이 몰려오자, 차를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한 진한 후회와 함께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사람들이 우루르 내린다. 우리도 같이 휩쓸려 내린다. 임장 때 두세 번 방문해 보았지만, 아직은 어색함이 더 큰, 데면데면하지만 곧 익숙해질 동네로 들어선다. 밤이면 화려한 네온사인이 켜지고 피 끓는 청춘들과 지친 직장인들이 한데 뒤엉키는 밥집과 술집들이 즐비한 먹자골목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이내 삼겹살집과 술집 사이에 껴 있는 우리 고시원 건물이 보인다. 주변 상가들은 지난밤의 열기를 식히듯, 방전이라도 된듯한 모습이다. 매일 밤 뿌연 담배 연기와 술 냄새가 물드는 이 거리에서, 낯선 고요함마저 느껴진다. 이런 정신 사나운 곳에 사람이 먹고사는 고시원이 있다니, 쉽사리 이해가 가질 않지만 이 동네에는 이 골목에만 고시원이 여럿 모여있다.


  곧이어, 좁고 긴 계단을 올라간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오래된 건물인지라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아무래도 이 점이 앞으로 영업을 하는 데 있어서 큰 단점이 될 것 같다는 '사장'다운 생각을 하며 '사무실'이라는 작은 팻말이 달린 검은색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있으나 마나 한, 비좁은 사무실은 고시원 원장의 유일한 개인 사무 공간이다. 안에는 고시원 곳곳을 CCTV로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고, 한 명 정도 간신히 앉을 만한 책상과 허름한 플라스틱 의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마저도 온갖 짐들이 쌓여 있어, 정신머리가 하나도 없다. 이제 이곳이 남편에게는 제2의 사무실이 될 터였다.

그러다 문득, 우리 둘 다 고시원으로 오는 내내 그 어떤 특별한 대화도 없었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멋쩍은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와 여기, 진짜 좁네. 자기는 앉을 수도 없겠어."

"여기 뭐 앉을 일이 있겠어? 그냥 CCTV설치용 공간이지 뭐, 작은 창고..?"

"안에 좀 정리를 해봐야겠다. 그래도 가끔 개인 공간이 필요할 수도 있잖아."

"요 앞에 카페 가면 되지 뭐."

"......"


  아무리 봐도 덩치 큰 우리 남편은 도저히 앉을 수 없는 사이즈이다. 이래 봬도 대기업 다니던 남잔데, 번듯하고 으리으리한 빌딩으로 사원증 걸고 출근하던 사람인데. 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아차차! 대기업이 뭐 그리 대단한가? 그렇게 대단하면 그냥 회사나 다니면 될 것을!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향이 아닌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본다.


"빨리 청소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가 주방 쪽 정리할게."


  어젯밤 남편과 나는 안내문을 하나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000 고시원에 새로운 원장을 맡게 되어 인사드립니다…“ 로 시작하는 낯간지러운 안내문이었다. 사람들에게 전체 문자를 보내기 전 사전 공고를 위해 출력해 온 프린트물이었다. 이른 오전 시간이라 입실자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아침 일찍 출근을 한 모양이었다.


  각 층 문 앞,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신임 원장의 어색한 인사말이 담긴 프린트 물을 단단히 붙이고는 복도 맨 끝에 위치한 공용 주방으로 들어갔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촌스러운 옥빛 싱크대와 누런 때가 낀 싱크홀 앞에 섰다. 행주를 들고 이곳저곳을 닦아보지만 어쩐 일인지 닦아도 닦아도 너저분함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환기마저 잘 되지 않아 쿰쿰한 냄새가 코 끝을 찌르는 고시원 주방에 나 홀로 우두커니 서 있자니 아찔한 생각이 스믈스물 기어 올라온다.


  지금 보다 분명 돈도 더 많이 벌고, 시간의 자유도 얻을 수 있을 거라며. 경제적 자유로 가기 위해 필요한, 든든한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는 확실한 파이프라인이 될 거라며 시작한 고시원 사업. 하지만 첫날은 그 어떤 확신도, 설렘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타려다 길을 잃고 엉뚱한 가시 밭길로 들어선 건 아닐까.


'이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까. 설마 이 누런 싱크대가 우리의 앞날은 아니겠지?'




고시원 원장의 하루는 어떨까?


원장님, 옆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원장님, 누가 자꾸 제 빨래를 훔쳐가는 것 같아요.

원장님, 누가 복도에서 신발을 신고..

고시원을 시작하고 첫 한 두 달은 '원장님' 소리가 꿈속에서도 들리는 듯했다.


원장님, 원장님, 원장님!!!!(제발 그만..)


  그렇다. 우리는 이제 원장님이다. 누군가의 학식을 높여주는 고상한 학원 원장도 아니며, 우중충한 외모를 아름답게 변신시켜주는 미용실 원장도 아닌, 캐캐묵은 건물에서 다중 생활 시설을 운영하는 고시원 원장이다. 한동안 원장님이라는 소리가 어찌나 불편하던지 어디선가 '원장님!' 하고 부르면 마치 세상 밖에 나와서는 안 될 금기어라도 들은 것처럼, 등골이 오싹하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대부분 원장님을 부를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원장을 부른다는 것은 꼭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이다.


"원장님, 침대가 흔들거리는데, 수리 가능할까요.?"

첫 번째 미션. 오랫동안 살던 학생이었는데, 우리가 새로 고시원을 맡게 되자마자 침대 수리를 요청했다.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침대가 흔들거려서 전 원장에게 고쳐달라고 말을 했었는데 고쳐주질 않았다고 한다. 허리가 아작이 날 것 같았지만, 지금껏 참고 살았다는 말을 덧 붙였다. 전 원장은 왜 침대를 안 고쳐줬을까? 이 학생은 왜 지금껏 잘 참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말을 하는 걸까?


"원장님, 하수구 냄새가 나서 미칠 것 같아요."

두 번째 민원은 하수구 냄새였다. 하수구 냄새는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인터넷에 '하수구 냄새날 때 해결 방법'을 검색해 본다. 인터넷에서 알려주는 대로 배수구 트랩을 제일 먼저 교체해 본 뒤, 싸구려 방향제를 최소한 두 가지 정도 넣어본다. 제발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원장님, 전등이 나갔어요."

이번엔 전등이다! 이쯤은 식은 죽 먹기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전등 자체의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시간대에만 한 번씩 전등이 나간다고 하는데, 이것은 전등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 쪽의 문제일 수 있다. 초보 원장은 원인을 도통 알아낼 재간이 없다. 전등은 왜 자꾸 나가는 것일까?


"원장님, 식기 사용 후 설거지를 방치하는 얌체족이 있어요."

이쯤 되면 기숙사 사감이 아닐까 싶다. 학생지도 선생님처럼 생활 지도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다 큰 성인들에게 이런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가르쳐야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범인을 알아야 하니, CCTV를 돌려본다. 역시나 책임감 없는 1%의 비양심이 문제다. 그날로 나는 설거지가 방치된 문제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촬영하여 설거지 통 앞에 대문짝 만하게 프린트하여 붙여 두었다. "개인 설거지 철저히 부탁드립니다. 민원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24시 CCTV 가동 중)"라는 문구와 함께.


"원장님, 도어락 비번 설정이 안 됩니다. 도와주세요."

도어락 비번 설정이 안 되다니,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도어락 커버에 깨알 같은 글자로 설정 방법이 순서대로 친절하게 쓰여있는데 말이다. 원장이라고 뭐 특별한 방법으로 도어락 비번을 설정하는 것도 아니건만. 답답한 마음을 뒤로 한채 일단 전화로 차근차근 방법을 설명해 보지만, 삐삐삐삐- 거리는 오작동 알림 소리만 반복될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또 출동이다.


"원장님, 혹시 남는 이불 있나요..?"

오늘 입실한 손님이 맨몸으로 입실을 하였나 보다. 고시원은 호텔이 아니건만, 개인 이불을 챙겨 오지 않았단다. 엄동설한 날씨에 이불도 없이 고시원에서 첫날밤을 맞이한다면 그 얼마나 서러울까 싶어, 급히 이불을 가져다준다. 그 뒤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여분의 이불을 고시원에 미리 꼭 챙겨 두기로 결심했다.


”원장님, 환풍기 소리가 너무 무서워요…”

환풍기 소리가 무섭다니. 환풍기 소리가 얼마나 크기에 무섭다는 걸까? 살면서 환풍기 소리가 무섭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고시원처럼 좁은 공간에서는 냉장고 소리, 환풍기 소리마저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남편은 평소 집에서 전등 하나 갈지 않던 사람이었으나, 고시원 운영 한 달 만에 환풍기 정도는 눈감고도 교체할 수 있을 경지에 다 달았다.


  고시원 원장이 되면 무인 시스템을 구축해서, 완전 편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초반은 3개월은 생각과 너무 달랐다. 하루 종일 이런 자질구레한 민원들에 시달렸다.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은 늘 고시원에 가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와 문자, 카톡 알람에 노이로제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민원들은 사실 애교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계절을 온전히 겪고 나서야 알았다. 장마철엔 누수, 겨울철에는 결로라는 엄청난 이벤트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누수는 정말 너무나도 중대한 문제였다.) 누군가 나에게, 고시원 원장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첫 번째로 중한 것은 청소요 두 번째는 시설관리이며 세 번째는 사람 관리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원장님 소리가 조금씩 귀에 낯익을 때쯤 우리는 곧 두 번째 난관을 만났다. 만실이라고 해서 큰 권리금을 주고 계약한 고시원이었건만 한꺼번에 공실이 10개나 생긴 것이다. (평균 방 값 40만 원씩만 잡아도 10개면 대략 400만 원의 손실이다!)


과연 우리는 성공적으로 고시원을 운영할 수 있을까?

우리는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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