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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Jan 06. 2024

월세 5만원을 올리고 항의 전화를 받았다

고객님 죄송합니다만,월세를 인상합니다.

본격적인 고시원 영업의 서막


 만실인 줄 알고 계약한 고시원인데 일주일 만에 공실 10개가 발생하다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그토록 꼼꼼하게 임장을 다니고 심사숙고 끝에 계약을 했건만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만 것이다. 계약 과정에서 미처 놓친 것은 없었는지, 혹시 우리의 판단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되짚어가며 돌려감기를 해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서 무엇할까.



 불행 중 다행으로 고시원 권리 계약 당시 이런 부분과 관련된 특약을 포함시킨 것은, 막막한 상황에서 한가닥 위안이 되었다. 우리처럼 인수 직후, 계약서에 명시한 공실의 개수가 차이가 많이 날 경우 일정 금액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명시하는 ‘공실특약’이 그것이었다. 고시원은 수익률에 따라 일정 비율의 권리금을 책정한다. 따라서 공실이 몇 개인지 여부에 따라 권리금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인수하고자 하는 고시원의 공실여부와 매출액, 그리고 해당 특약을 반드시 잘 체크해야 한다.



 그간 인터넷이며 관련 서적을 뒤져가며 열심히 스터디를 했던 것이 빛을 발하였는지, 놓치지 않고 해당 특약을 잘 작성한 덕분에 10개 중 6개의 공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약간의 손해를 만회할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었지만, 이제 막 고시원을 인수한 햇병아리 초보 원장에게 공실 10개의 벽은 히말라야 산처럼 높게만 느껴졌다. 무려 전체 객실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수치였다. 우선 일주일 정도는 입실 문의를 받아보며, 수요가 어느 정도 있는지 파악해 보기로 했다. 만일 가뭄에 콩 나듯 전화가 오거나, 영업이 잘 되지 않는다면 대체 이 많은 공실을 어떻게 채운단 말인가? 수익률을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초보원장의 장사꾼다운 진짜 고민이 시작되었다. 입실자들의 신상을 파악하고 시설을 보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영업'이었다. 첫째로는 신규 고객을 끌어와야 했고, 두 번째로는 기존 고객의 입실료를 인상함과 동시에 더 이상의 추가 이탈을 막아야 했다. 신규 고객을 받는 것은 인터넷 마케팅을 잘하면 된다지만 입실료 인상은 이야기가 달랐다. 최소 몇 달부터 적게는 1~2년, 길게는 1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장기 입실자들이 상당한 저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우리는 입실자 명단이 적힌 A4용지 한 장을 두고 심각한 얼굴로 마주 앉았다. 최근 시세 보다 5~10만 원 정도 낮은 가격으로 살고 있는 입실자들 이름에 빠르게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입실 기간이 매우 긴 터줏대감은 따로 노란색 형관펜을 칠했다. 마지막으로 금액 옆에는 얼마의 금액을 인상할 것인지 굵은 메모를 했다. 자, 이제 1차 타깃은 정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직 이런 일이 익숙지 않은 나는 전화 걸기가 영 불편하고 껄끄럽게만 느껴졌다. 머뭇거리기는 순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는 차선책으로 먼저 문자를 보내보기로 했다.






돈 얘기로 상처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뭐라고 문자를 보내야 할까? 그냥 어쩔 수 없이 월세를 올린다고 일방 통보 한다면 상대방 기분이 어떨까? 한 번이라도 월세를 살아본 설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사리 입술이 떼지지 않는 내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손해를 감수하며 이 상태를 마냥 유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애가 타 들어갔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내 집 하나 없이 남의 집 원룸에 세 들어 사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별안간 나타난 생면부지의 집주인이 하루아침에 돈을 더 내놓으란다. 그야말로 그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게다가 새로운 주인은 나이도 젊고 창창하다. 행색은 번지르르해서 험한 일을 해 본 것 같지도 않고 크게 모자랄 것도 없어 보인다면? 모르긴 몰라도 묘한 반감과 억한 심정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유독 기억에 남는 집주인이 한 둘 있는데, 그중 한 명은 대학 시절 학교 앞 원룸에 자취할 때 만난 집주인 오빠였다. 소위 내가 '집주인 오빠'라고 부르던 그 남자는 원룸 건물주의 아들이자 건물 관리인이며, 대기업 직장인이었다. 내가 그곳에 거주한 지 1년 정도 지날 무렵, 불행히도 지방에 계신 부모님의 이혼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다음 달부터 거짓말처럼 모든 생활비가 중단되고야 말았다. 당장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낼 돈은 당연히 없었고, 얼마 되지 않는 월세도 한 달 두 달 밀리기 일쑤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학교 앞 식당이나 호프집에 가서 새벽 1시까지 서빙을 하거나 설거지를 했지만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그때 만일 집주인이 매일 같이 월세를 내라고 면박을 주거나, 당장 짐을 빼라고 통보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나는 그날로 길거리에 나 앉거나 어렵게 이어온 학업을 포기하고 본가로 내려가야 했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학교 생활을 하며 밤늦도록 알바를 하던 어린 여대생을 기특하게 봐주었던  '집주인 오빠'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잊지 못할 귀인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사실 그때는 잘 몰랐다. 어린 마음에 어차피 보증금이 있으니까 내가 월세를 내지 않아도 보증금에서 까면 그만이지 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어른이 되고, 고시원 원장이 된 지금은 그때 그 '집주인 오빠'가 얼마나 대인배였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금수저도 건물주도 아닌, 한 낱 자영업자에 불과한 나는 단 돈 5만 원의 입실료 인상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꽤 많은 망설임과 내적 갈등을 겪었다.



 정말이지 돈 얘기로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 나도 먹고살아야 하기에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음을 고시원 사람들이 이해해줬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고민 끝에 완성된 공지 문자는 짙은 호소력도, 특별함도 없었었지만 아래와 같은 간단한 문자를 작성하기까지 하루 꼬박 고민을 하였으며 수십 번 고쳐 썼다면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공지]
"안녕하세요. 000 고시원 원장입니다. 새로 고시원을 맡아 운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한 가지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역대급으로 전기세와 가스비가 10~20% 가까이 인상되었고 각 종 재료비와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정말 최소한의 선에서, 불가피하게 입실료가 인상될 예정입니다. 개별적으로 전화 연락 드릴 예정입니다. 입실자 여러분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의사항 및 불편사항은 언제든 연락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5만 원의 가치에 대하여


 우리가 고심 끝에 보낸 불편한 입실료 인상 문자에는 단 한 명도 답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이라도 '네, 알겠습니다.'  혹은 '이해하는 바입니다.'라는 답장을 바란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던 것일까. 단체 문자를 보내고 바로 전화를 돌리면 너무 정나미가 없어 보일 것 같아, 다음 날부터 전화를 돌리기로 했다. 우리는 다시 빼곡한 동그라미와 굵은 메모가 쳐져있는 A4용지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해야 할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만일 화를 내거나 거부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매우 예상이 가능하고 뻔한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상의하는 우리 모습이 어쩐지 우습기도 했다. 아무리 직장인이라지만,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했는데 전화 한 통을 걸지 못하여 전전긍긍 하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한심하던지.



 1차로 선정된 타깃 중 3년째 30만 원이라는 저렴한 입실료를 내고 계신 편의점 점주님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기로 했다. 그래도 여자보다는 남자인 남편이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남편이 총대를 메기로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전화번호를 누르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한 입실 자였다.



"안녕하세요, 000 고시원입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000호 입실자인데요. 입실료를 올리신다구요?"


"아, 네 공지 문자 보셨군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전화를 드리려고 했는데요...."

"아니, 제가 말입니다 여기서 몇 년을 사셨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일이 바빠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밤늦게 들어와서 잠만 자고 나간다 말입니다. 주방도 안 쓰고 세탁도 자주 안 하고 전기도 거의 안 쓴다고요. 새로 오시자마자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  그러시군요... 잠시만요 지금 30만 원... 30만 원 내고 계시는데요. 요즘 이 동네 최소 시세가 40만 원부터 시작입니다. 다른데 알아보시면 아시겠지만..."

"40만 원이요? 저는 진짜 새벽에 들어와서 잠만 잔다니까요!!!"


"네, 알죠 알죠. 또 오래 계시기도 하셨으니까요. 10만 원까지는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서 35만 원 끼지만 받으려고 해요. 그 정도면 괜찮으실까요?

"아니.. 5만 원도 크죠. 안 그렇습니까? 좀 더 깎아 주셔야..."



 그 이하로는 어렵다는 대답을 들은 입실자는, 결국 당장 다른 방을 구해서 나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정말 당하고 보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나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나 싶어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 억을 주고 많은 기회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하고 고시원을 인수한 자영업자일 뿐인데, 고시원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문자를 쓰고 전화를 하기까지 가졌던 약간의 미안한 감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고야 말았다. 대체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사정을 봐줘야 하는 걸까?



 며칠 후,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던 입실자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원장님, 일단 그냥 여기서 더 지내보려 합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원래 5만 원 인상인데 장기 입실자이시고 하시니 3만 원만 인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답장이 없으시면 동의하시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아마도, 다른 고시원을 알아보았지만 우리가 제시한 금액만큼 괜찮은 방을 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뒤로도 몇몇 저항하는 입실자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가 원하던 선에서 혹은 1-2만 원을 양보하는 것으로 입실료 인상 프로젝트는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만에 만실 고시원이 되었고 수익률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꿈에 그리던 월 천만 원이라는 목표에 가까워진 것이다.



 고시원에 사는 40여 명의 경제적 수준과 개인 사정을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5만 원'이라는 돈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을 바꿀 만큼 중대한 이유와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자, 입실료 40만 원의 가치는 더 이상 똑같은 40만 원이 아니게 되었다. 나에게는 40만 원이지만, 그들에게는 5배 이상의 가치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CGV 골드클래스 영화 티켓은 한 장에 4만 원이고 팝콘 콤보는 1만 원이다. 러닝 타임 2~3시간 정도의 영화 한 편을 즐기는데 드는 돈은 5만 원, 둘이 보면 10만 원이라는 소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는 이렇듯 늘 상대적이다.


당신에게 5만 원은 얼마의 가치가 있나요?


cgv골드클래그 모습/cgv홈페이지 이미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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