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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Mar 13. 2024

인스턴트 사골국물 같은 사이

고시원 인간관계론

  3월을 한 달 앞둔 2월, 10명의 입실자가 고시원을 떠났다. 그리고 또다시 10명의 입실자를 계약했다. 새로운 입실자를 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장족의 발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시원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한 두 개의 공실만 발생해도 불안해서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고시원 인수 계약 후 영업을 개시했던 첫 달, 열 개의 공실이 대거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눈앞이 깜깜하고 아찔하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초보 원장의 티를 조금 벗고 나니 10개의 공실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또 채우면 되지. 하고 조금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깜냥이 생긴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무서웠던 공실을 이토록 담담하게 대할 수 있는 강철 마인드가 생겼음은 물론이거니와, 단 일주일 만에 열개 공실을 만실로 바꾸는 영업 스킬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이 정도면 셀프 칭찬을 한 번쯤 해주어도 될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김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공실을 이토록 무서워했던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것처럼 방 한 개 한 개가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돈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실이 두려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이었다.


두 번째는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 감정의 정체가 바로 ‘이별’에 대한 ‘불편함’이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불편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정말이다. 우리는 고시원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매번 반복하며 일종의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중에는 고시원이라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게 꽤 아름다운 인연도 있었고, 혹여나 다음 생에서라도 절대 다시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악연도 있었다. 내가 살면서 과연 이런 사람들을 만나 볼 기회가 있을까? 혹은 굳이 만나지 않았으면 싶은 사연 많은 사람들도 흔치 않게 맞닥뜨리곤 한다. 비슷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고만고만한 급여를 받는 회사에 다니며, 유사한 패턴으로 집과 회사를 오가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직장 인간관계가 전부였던 우리에게 이것은 굉장히 큰 변화이며 충격이기도 했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은 조금 특별하다. 내가 만나고 싶다고 만나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헤어지고 싶다고 해서 헤어져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우리 고시원에 10년째 살고 있는 슈퍼맨 할아버지만 봐도 그렇다. 사실 나는 그 분과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다. 터줏대감처럼 우리 고시원을 지켜주고 있고, 이런저런 잡일들도 종종 도와주고 계시기에 감사한 부분도 많지만 하루하루 건강 상태가 나빠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르신을 처음 뵈었을 때는 계단에서 넘어져 한쪽 팔이 아프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다리도 불편하시고 이제는 허리도 성치 않으시다. 지난주엔 대상포진까지 걸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이제 그만 고시원을 떠나 제발 넓고 쾌적한 보금자리에서 남은 생을 좀 더 따뜻하게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대부분 말년에 고시원에서 지내시는 분들은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옥탑에서 어르신을 마주쳤는데, 혹시나 간 밤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연락할 곳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조심스레 자제분들과의 관계는 어떠신지 슬쩍 여쭤보았다.


” 어르신, 몸은 좀 괜찮으세요?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신데… 혹시.. 자제분들과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우리 애들? 아들 하나 딸 하나 있어. 아들이 매달 방세 보내 주잖어~ 딸 하고도 엊그제 통화했고…”

“아.. 그러시구나, 몰랐어요, 따님도 있으셨구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식사는 잘하고 계세요?”

“대상포진에 걸려서 혼났어. 아무래도 끼니를 잘 못 챙겨 먹으니까, 면역력이 떨어졌나 봐. 애들한테는 내가 늘 미안하지 뭐. 난 그냥 이렇게 혼자 지내는 게 편해.”

당최 무엇이 편하다는 건지. 방은 좁아터지고 벽은 눅눅하고 삼시 세 끼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데 말이다.


  그날 밤 남편은 열심히 쿠팡을 뒤지고 있었다. 무얼 하냐고 물어보니 아무래도 어르신이 밥을 잘 못 챙겨 드셔서 더 아프신 것 같다며 어르신이 늘 끓여 먹는 된장찌개에 넣을 고기라도 한 팩 사드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착해 빠진 남편은 내가 단도리를 하지 않으면 조만간 9시 뉴스에나 나올 법한 천사 같은 고시원 원장이 될 참이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한바탕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호의가 계속되며 권리인 줄 알아. 적당히 하자.. 무슨 고기를 산다고 그래?”

일전에 다른 고시원 원장님이 아파서 몸져누운 학생에게 삼계죽을 한 번 사다 주었더니, 다음번에 그 학생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자기 애가 아프니 삼계죽을 사다 바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 말에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것이 괜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통기한이 최대한 길고 실온 보관이 가능한 사골국물 밀키트를 찾아보고 있는 나였다. 고기는 좀 그렇고,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직접 우려낸 사골 국물처럼 깊은 맛은 나지 않지만, 최소한의 노력을 들이면 바로 끓여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사골 국물. 그것이 딱 우리의 관계를 대변하는 적당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시원 원장과 장기 입실자 사이의 적당한 선. 우리에게는 그런 적당함이 필요했다. 더 이상의 관심은 사치일 뿐이다.

  


  

  훗날 어르신과 우리가 어떤 이별을 맞이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먼저 고시원을 팔아넘길 수도 있고, 어르신이 그전에 이사를 가실 수도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건강상의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영영 작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우리가 먼저(고시원을 팔고) 이별을 고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분명 헤어질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1년 동안 우리 고시원에서는 평균적으로 매월 서너 명의 사람을 내보내고, 서너 명의 사람을 받았다. 20대부터 60대까지 평범하지만은 않은 다양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만남과 이별이라는 사이클을 반복하며 나름의 ‘고시원 인간관계론’을 만들게 되었다.


어차피 곧 헤어질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넘치는 인정을 주지 말 것이며,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기. 그리고 헤어질 땐 최대한 쿨하게 안녕하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되면 관계는 멀어지고 서로 이해하는 관계가 되면 관계는 끈끈해진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돈과 계약서로 만난 이해관계이긴 하지만 아주 조금은 서로 이해하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친정 엄마가 몇 시간씩 가마솥에 끓여낸 정성 어린 사골 국물이 아닌, 전자레인지 3분이면 금세 뜨끈해지고 먹고 나면 어딘가 모르게 헛헛해서 갸우뚱하게 되지만 뒤처리가 깔끔한 밀키트 국물처럼 말이다.


  며칠 후 남편이 쿠팡 택배 박스를 들고 어르신을 찾아갔다. 어르신은 옅은 미소를 삼키며 툭 던지듯 답했다.

“뭘 이런 걸 다 주고 그랴..? 감동받게 시리…”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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