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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Apr 24. 2024

고시원 원장이 된 진짜 이유를 찾아서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돈이 아닌 행복이었다.


   “여기요! 119 좀 불러주세요. 빨리요!.. 저기요! 괜찮으세요? 내 말 들려요?”

 이제 막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한 팀원 분이 반대쪽에서 힘 없이 걸어오다가 내 앞에서 ‘픽’ 하고 쓰러졌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황급히 그분의 머리를 온몸으로 받치며, 소리를 질렀다. ‘쿵’ 소리와 함께 119를 외치는 다급한 나의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쓰러진 이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고 두 팔은 허공에서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수십 초가 지나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놀란 마음과 창피한 마음이 뒤섞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그분을 일으켜 세워 부축했다. 평소 친한 분은 아니었지만, 기꺼이 내 어깨를 빌려주었고 말없이 토닥이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최대한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몰려 있지 말고 자리로 돌아가 달라는 무언에 눈빛을 보냈다. 뒤이어 119 대원분들이 도착했다. 평소 그 분과 친하게 지내는 가까운 동료에게 뒤를 부탁하고는, 퇴근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의연한 척했지만, 집에 돌아오는 내내 놀란 가슴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심장이 벌렁거려 숨이 막혔다. 얼른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냉수를 한 병 사서 벌컥벌컥 들이켠 후,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버스에 올라탔다. 아이들이 퇴근하는 엄마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지체할 틈이 없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버스에 올라탄 지 몇 분쯤 지났을까. 그제야 긴장이 스르륵 풀리는 것 같았다. 후…


  그러자 갑자기 참았던 눈물이 왁 하고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들을까 봐 이내 꾸역꾸역 눈물을 삼키느라 혼났다. 마치 온 세상 전기가 갑자기 꺼진 듯이 내 앞에서 픽하고 쓰러진 그분을 보는 순간 그동안 내 안에 꽁꽁 가두어 두었던, 꺼내고 싶지 않은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우리 아이가 쓰러지던 그날의 모습이었다.



  

  아이와 입원 중의 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이상도 없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다. 병실에 입원해 있는 4살 난 아이는 24시간 심심하다고 보채고, 밖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코로나 상황에 다른 가족 면회도 쉽지 않고, 입원 기간이 하루 이틀 길어지자 엄마인 나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또, 왜 이리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 먹고 싶었는지. 결국 나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하며, 아이 손을 잡고 병원 1층 로비에 위치한 커피숍에 들렀다. 로비와 커피숍에는 환자와 손님들이 뒤섞여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섰다.


  “엄마~! 나는 이 빵 먹고 싶어. 엄마는 뭐 먹을 거야?”

  “응, 엄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을 거야.”

  “와! 나도 주스 주스! 주스 먹고싶…”

  “쿵! “

  그때였다. 우리 아이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커피숍 앞에서 부지 불식 간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비명을 질렀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지만, 그런 기분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를 들춰 업고 곧장 병실로 뛰어 올라갈까 하는 순간, 갑자기 의사 선생님의 당부가 떠올랐다. 만일 이런 상황이 생기면 당황하지 말고, 주변의 위험 요소를 제거한 후 반드시 증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을 촬영해 오라는 말이었다. 나는 보안 요원을 불러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친 후, 아이를 안는 대신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야만 했다. 아이를 차디 찬 냉 바닥에 내팽개쳐두고 태평하게 영상이나 찍고 있던 엄마를 보고 사람들은 아마 미친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우리는 보기 좋게 외출 금지를 당했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 나갈 때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안전모를 착용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요즘도 외래 진료가 있어 병원에 갈 때면 그 커피숍 앞을 지난다. 그때마다 나는 늘 가슴 한편이 어딘가 모르게 조여 오면서 심장마비가 올 것만 같다.




  병원에서의 사무치는 기억과 그날 퇴근길에 겪은 일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근본적인 삶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오늘날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 이유, 갑자기 고시원을 하게 된 이유,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가 생긴 이유.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우리 아이 때문이었고, 그것은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 단연코 단순 ‘돈’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나, 내 아이를 지켜 줄 수 있는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그 마음 하나로 SNS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고시원을 하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책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 일을 겪은 지 몇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건강해진 아이와의 평온한 일상은 어느새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든든히 아침밥을 챙겨 먹고, 친구들과 웃으며 유치원을 가고, 엄마 아빠 품에서 조잘대다 밤 9시가 되면 잠을 청하는 이 당연한 일상은 실은, 하나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와의 시간은 1분 1초가 기적이고, 행복이고, 감사인 것이다. 내일 당장 다시 병원에 실려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어제도,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아무 일 없이 무탈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서야 무엇일까?


  고시원을 통해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은 돈과 시간의 자유였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결국 본질은 ‘행복’이다. Why는 행복이고 What은 경제적 자유이며 How는 돈을 버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가끔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종종 잊곤 한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진짜 이유, 가치, 소명 따위는 잊은 채 눈앞에 성과와 돈에만 몰두한다.


  그때마다 나에게는 신기하게도 어떤 ‘상황’ 같은 것들이 나타난다. 바로 퇴근길에 맞닥뜨린 그런 ‘상황’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지금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 본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뜻이 있으며, 해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심하고 고민하다 보면 ‘당연함’이라는 함정에 빠져 한동안 잊고 있었던 ‘본질’에 대한 답이 다시 떠오를 때가 많다. 익숙한 것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방향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그저 돈 만 쫓았다면,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다사다난한 고시원의 일들과 그 사연 많은 사람들을 모두 수긍하고 감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를 통해 이루고 싶었던 진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 사는 40여 명의 사람들도 나처럼 모두 각자의 이유와 꿈을 가지고 있다. 결국 우리는 비슷한 목표와 고민을 안고 사는 다 같은 사람인 것이다. 돈벌이 수단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함께 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돈도 좋고, 경제적 자유도 좋다. 그 방법이 치킨집이 될 수도 있고 고시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돈 벌 방법은 무궁무진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꼭 기억해야 할 단 한 가지 질문은 수시로 꺼내 보기로 하자.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 무엇을 위해 하는가? 그것을 위해 해야 할 단 한 가지의 일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고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소설 중/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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