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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가을 Oct 21. 2024

고독의 구독

혼자의 고독, 모두의 구독

구독경제 시대다.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구독하고 멜론으로 음악을 구독한다. 꽃, 술, 세탁 서비스, 면도기, 심지어 속옷까지. 뭐든 구독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물리적인 제품과 서비스만 구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고독조차 구독한다. 


[사진 출처=조선일보]


통계에 따르면, 1인 가구가 천만 명에 달하는 시대다. '혼족', '나홀로족'이라는 신조어가 익숙해진 지 오래다. 독립을 선택한 사람도, 비혼을 결정한 사람도, 사별의 슬픔 속에서 홀로 남은 사람도, 기러기 아빠로 혼자 남은 사람도, 이혼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도 모두 나 혼자 산다. 혼자 사는 삶은 자유롭지만, 그만큼 외롭다. 그래서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를 끼고 산다. 그 속에서 다른 이들의 외로운 일상을 구독하며, 그들의 삶을 엿본다.


유튜브 속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브이로그가 가득하다. 혼자 요리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재생된다. 개중에는 자신의 삶을 통해 위안이라도 받으라는 듯 기꺼이 날것의 불행을 전시하는 이도 있다. 대부분 수익 창출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그들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카메라를 켰을지도 모른다. 혹은, 카메라 앞에서라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고독을 세상에 내놓은 것일지도.



그 영상을 보는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그 고독에 대한 구독자다. 그들의 고독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내 외로움이 덜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로. 하지만 이게 정말 위로일까?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며 자신의 불행을 정당화하거나 모르쇠 하며 가짜 위안을 얻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불행과 고독을 클릭 한 번으로 구독한다니 묘한 일이다.


이 시대의 고독은 더 이상 개인의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독을 공유하고, 그것을 구독하며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는 카메라 앞에서 그 순간의 고독을 기록하고, 누군가는 그 장면을 통해 자신의 고독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묘한 연대감을 느낀다. 물론 고독이 피해야 할 감정은 아니다. 나를 돌아보고 나의 내면과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독에 잠식되어 세상과 단절된 채 타인의 불행에 기대어 안도감을 얻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고독을 구독하며...


고독의 구독. 구독경제가 이끈 이 새로운 문화는 물리적인 서비스나 제품을 넘어서, 감정과 삶의 일부분마저도 거래하고 소비하게 만들었다. 자유와 외로움이 공존하는 혼자의 삶, 그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찾으며 서로의 고독을 구독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클릭한다. 휴대폰 저 너머에 있는 사람의 고독을 엿보며, 내 고독을 잠시 잊는다. 고독을 피하기 위해 고독을 구독하는 아이러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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