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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복 Feb 16. 2023

"도망가자, 일자리 있는 곳으로"

보이스피싱 업체보다 못한 고향의 근무환경

[경남사람 서울 상경기]


프롤로그

부모님은 경남 분이다. 남해 남자와 통영 여자가 경남 모처 등산 중 만나 연애 끝에 결혼했더랬다.

그렇게 장남으로 태어난 나도 물론 경남사람이다.

격동의 사춘기를 25세까지 보내고 장교로 전역한 후 부모님의 일을 당연히 물려받는 게 내 삶인 줄 알았다.


건축일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함께 일하길 3개월, 놀랄 만큼 성향이 직설적이고 비슷한 엄마와 나는 집 안에서 호흡마저도 부딪혔고 내 격동의 시기는 다시 도래했다.




부모님과 일을 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했다. 내가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것. 부모님이 다른 직장을 구할 순 없지 않은가?

각종 구인구직사이트를 열심히 뒤졌고 부산 모처의 '마케팅'이라고 적어둔 곳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갔다. 사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이력서 40장 정도를 뿌리다시피 해서 간신히 연락 온 곳이었다.

거리는 집에서 차로 1시간 20분, 점심 이후 면접이라 차에서 편의점 김밥을 먹으며 성공을 다짐했다.


면접 장소인 빌딩 안 사무실은 시끄러웠다. 많이.

업무는 회사 홍보 문구를 기획하고 블로그 및 각종 SNS에 업로드하는 게 다였으나 그런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50명이 전화기 50대를 두고 친절한 경남 말투로 꿀, 고수익, 재택알바 등 달콤한 언어를 상대방 귀에 속삭이는 광경이 심박수를 올려주었기 때문이다.

도망치듯 실내 낚시터에서 나오고 난 뒤에서야 실장이 손가락으로 편 V가 내 월급여라는 걸 깨달았다.

김해 사람은 부산을 가로질러 면접 보러 가지 않는다. 기장군 방향 해운대 외곽 도로를 여러 번 타던 그때.

이후 몇 군데를 더 면접 봤으나 사회의 어두운 면만 친절히 인식하고 말았다.

적디 못해 보이스피싱 공장만도 못한 급여, 근로계약서를 써 달라니 갑자기 내 아버지를 자처하며 가족 같은 회사를 강조하는 대표, 복지에 당당히 4대 보험을 써 놓은 회사 등 경상남도의 처참한 노동 현실은 내 자존감마저 갉아먹었다.


결국 난 보컬트레이너로 열심히 일하고 있던 롱디 여자친구(현 아내)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네가 부럽다"는 후진 멘트를 밤마다 날리는 찌질이가 되어 있었고 이곳을 탈출하는 게 급선무란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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