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후기
이전에 샤츠 슈나이더의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초’를 읽고 한국사회를 민주주의 이론에 비춰볼 수 있었는데요, 보통 사람들의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이번에는 한국의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해 보다 더 자세히 알아가고자 ‘민중에서 시민으로’라는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지난 후기에서 제가 한국의 민주주의의 갈 길이 멀게만 느꼈던 이유를 이번 책을 통해 보다 더 알게 되었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냉전시대에 전쟁을 경험한 뼈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민주화 이전에는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냉전반공주의, 국가-민족주의, 성장지상주의의 가치들이 남긴 정신적, 문화적 유산”이 한국사회를 지배했고, 민주화 시기에는 민중운동 자체가 민주주의의 가치인 인간 개개인의 권리를 요구하기보다 오히려 국가 차원의 목표와 공동체의 지표를 설정해 이를 급진적으로 추진하는 정치적·사회적 풍토가 생겼습니다. 또한 운동권의 엘리트들이 보수적 엘리트들이 구축해 놓은 체제 내로 편입되는 현상과 개혁된 정부가 구체제에 대응하는 정치적 힘을 조직하지 못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것이죠. 이로 인해 민중이 일어나서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그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제도적 수준까지만 올려주었고, 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핵심 동력인 갈등을 다루는 것에는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한국인들은 사회문제를 마주할 당시 열정적인 집단으로 집결했다가, 그 목표를 이룬 뒤 정치적 자원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제도적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민중의 집단적 열정이 주기적으로만 분출되는 특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앞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혁명을 위해 결집했다가 빨리 수그러들 가능성이 있는 ‘민중운동’보다는 사회적 시민권의 개념을 이해하고 시민권의 보장을 요구하는 ‘보통 사람들의 정치참여’를 통해 그들의 권익이 일정하게 실현되도록 ‘더 나은 정당 대안’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개별 시민들이 가진 능력의 자유롭고 충분한 발전’이 전제되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발전이 현실에서 “대중매체의 영향, 학교 교육, 민주적 참여를 위한 통로의 부재나 제약, 직장과 작업 현장에서의 권위주의적 조건, 그리고 국가·정부의 일방적 정책이나 행위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제약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저자는 만약 민주정부라면 시민들이 “사회적 갈등을 표출하고 대표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 요구들을 수렴할 수 있는 정책결정 과정의 통로들을 확대하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합니다.
책을 읽은 후 요즘 정치와 관련된 뉴스, 특히 대선 관련된 기사를 보면서 책의 내용이 현실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2016년 촛불집회도 마찬가지로 탄핵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시민이 그 운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보다는 개혁된 정부가 보통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 요구들을 들어주는 대안을 만들어주지 못해 흩어진 것이니까요. 따라서 시민들의 연대와 갈등을 해소하고 정치 참여가 가능한 공식화된 기구가 필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야 촛불운동처럼 한번 불타올랐다가 목표를 이루고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민주주의를 보다 질적으로 우수하게 이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민 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분별하는 눈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요즘은 진실을 덮으려는 언론이 기사화하지 않는 사건들이 있으며, 학교에서는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고 학생의 정치적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특정 종교기관에서는 지도자가 특정 이념에 빠져 자신의 입장이 신의 뜻이라고 하며 따라오는 자들에게 그 입장을 주입시키는 상황도 더러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각기 다른 정치적 성향의 기사를 찾아보고 올바른 관점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우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대안을 꾸준히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함께하는 사람이 생활고에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도 성숙한 시민으로서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며 서로를 격려하면서 말이죠. 결코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한국 사회가 ‘냉전반공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영향, 그리고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형성된 사회관’을 벗어나 제도적 수준의 민주화를 뛰어넘어 민중에서 시민으로 변화하여 더욱더 성숙하고 질적으로 우수한 민주주의를 이행하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야 저자가 말하는 “절차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정치 참여의 평등”이 실현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