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두려운 사람
대인공포증, 대인기피증, 그 아래의 타인경계증
나는 사람을 만나는 걸 꺼린다.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집중하는 것보다도, 사람을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때 드는 체력 소모가 너무 많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집 밖을 나가서 다른 사람의 존재가 느껴지는 순간부터 그들을 속으론 경계하고, 겉으론 별 신경 쓰지 않는 듯이 행동한다. 별거 아닌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속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면서도 그걸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으면 '내가 어떤 자세로 걸었더라?', '팔은 어떻게 하고 있으면 되는 거지?', '지금 바람이 많이 부는데 머리 꼬라지는 안 이상한가?', '지금 너무 거북목 상태이진 않을까?' 등등 온갖 것들이 신경 쓰인다. 마치 혓바닥 위치와 숨 쉬는 것, 눈의 깜빡임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거나 버벅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딱히 대인기피증은 아니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보고 싶지 않다 등의 생각들이 버무려져 지금 같은 괴상한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생각들보다 조금 더 중심부에는 '의심하며 사는 것 보다 믿으면서 배신당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과 '모든 사람에겐 악한 마음이 있고, 언제 드러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다.
이런 생각은 나 자신을 보며 느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투영하며 생겨났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 회로를 가질 거로 생각하는 건 안일하기도 하고,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은 절대로 정확히 알 수 없으니 그나마 타인을 이해하는 데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내가 하려는 걸 다른 사람이 내게 하면 나는 어떨까?'라는 생각만으로도 살아가며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를 미연에 막을 수 있지 않는가. 똑같이 모르는 사람에게 맞는 상황이더라도 내가 기분이 좋은 날엔 '실수로 그랬나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고 나쁜 날엔 '이 X친 X끼가 돌았나?' 하고 따져들 수도 있는 판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특히나 감정의 종류는 어찌 맞추더라도 그것의 크고 작음을 생각하는 데는 더더욱.
분명한 것은, 인간은 남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자신의 편의와 생존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이고 그것이 자연의 섭리에 있어서는 당연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도둑질과 강도를 행하는 것도 자신이 곧 굶어 죽을 처지가 아니더라도 노동이라는 고통을 조금 더 미룰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다른 집단을 모조리 죽이거나 노예로 삼아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았을 때 나의 집단이 더욱 쾌적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조금 가까운 이야기를 보자면, 내가 청소 당번이지만 당장 집으로 가서 게임을 하거나 친구랑 놀기 위해 청소를 하는 시늉만 하고 다음 당번인 친구에게 지루함과 귀찮음을 떠넘기고 싶단 유혹은 늘 존재했다. 어떤 인간이든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피해를 주는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니까 학교의 선생님부터 경찰, 군대, 국가 간 연합체 등의 감시하는 집단이 존재하고 개인에겐 타인을 경계하고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내 정신세계의 이야기를 위해 머나먼 길을 돌아왔다. 그냥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돌다리를 하나하나 두드려보며 나아가다간 돌다리의 끝이 눈에 들어오기 전에 삶이 끝날 것 같아 '의심하며 사는 것 보다 믿으면서 배신당하는 게 낫겠다'는 마음으로 살고자 했다. 그 생각은 매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되뇔 수 있을 정도로 마음 깊이 박혔지만, 아직 체화되기엔 한참 먼 것 같다. 완전히 받아들여져서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그런 일상에 더 빨리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