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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Oct 11. 2024

비판이 죽은 사회

정체되어가는 인간

  현재 대한민국은 타인에게 비판하는 일이 무척이나 인색하다.

  생판 모르는 타인은 물론 가까운 친구, 지인, 동료와 가족에게도 무언가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져만 간다.


  순수하게 상대가 자신을 더 개선할 수 있길, 이를 통해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오지랖이자 선의가 들더라도 이에 따라 행동을 할 수 없다. '선의'가 깃든 '선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자신에겐 선의였더라도 받아들이는 상대에겐 선의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덕분에.




  그동안 '너를 위해 하는 소리다.'로 포장된 말들은 대부분 조언과 비판의 영역에 속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단지 말을 하는 사람의 눈에 거슬리고 답답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내뱉는 투정과 다름없다. 애초에 선의 따위는 전혀 담기지 않은 감정 해소인 경우도 많고.


  이제 이 '비판'은 그것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사용하기가 꺼려질 정도다. 상대방이 문제를 인지하고 고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물론 당장도 문제가 생길 게 예상되는 상황에도 말을 건네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오히려 비판과 조언 등의 피드백을 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정도다. 아예 없어지고 나니 그제야 비판의 긍정적인 효과들이 눈에 띈다. 애초에 긍정적인 효과를 위해 안 해도 될 일을 해 주는 것이니.


  비판한다는 건 상대를 꾸준히 지켜보았기에 할 수 있다.

  자신이 상대와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의 말을 들어줄 것이란 신뢰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가 개선될 수 있다는, 나의 말에 기꺼이 노력을 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목덜미에 붙은 보풀 같은 건 타인이 봐주어야만 알아챌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습관, 행동, 말투 등에도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문제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서로 지켜보고 조언을 건네야만 더 나아갈 수 있다.

 서로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비판을 할 때 필요한 건, 상대가 하는 비판은 자신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을 인지하는 것과 상대가 '이 새끼가 트집 잡네?' 싶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비난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투에서 감정을 가능한 한 덜어내고 말하는 등의 배려일 것이다.


 건강한 비판과 조언을 더 편하게 주고받으며 나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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