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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닝 Jan 24. 2024

3-5. 내 안에 깊은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무서워요.

내 안에 있는 초 감정 마주하기.






초감정이란?


초감정은 무의식 중에 나타나기 때문에
자신의 초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어떤 상황에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어떤 초 감정이 있다고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책 ‘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최성애, 조벽, 가트맨) -



 초감정은 주로 감정이 형성되는 유아기에 경험, 환경, 문화 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초기의 감정을 말한다.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이 초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초감정은 우리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무의식적 반응으로 나타나는데, 이미 다 자라 버린 성인의 입장에서 유아기에 경험한 초감정을 기억하고 깨닫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이 애써 잊고 있던 힘든 기억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자신 안에 깊은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게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자신의 초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녀의 감정을 제대로 읽어주기 위해서는 이 초감정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무의식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황에 대해서 아이가 똑같은 모습을 보였을 때 자신의 초감정으로만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실제로 나이에 비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환자를 보면 그렇게 화가 났었는데 혼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자 상담선생님과 상담으로 풀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이것이 어리광을 피울 수 없는, 감정을 받아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억압되어 있던 나의 유년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의 초감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게 되고 그런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이제는 그런 환자를 봐도 화가 나기보다 그 환자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엄마에게 기댈 수 없다는 걸 너무 빨리 알아버린 아이.




 어린 시절 나는 형제의 놀림거리였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형제의 장난에 항상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갔고 엄마는 그런 모습을 보고 형제를 혼내긴 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형제의 놀림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렇게 끝나지 않는 놀림 속에서 엄마는 나에게 "엄마 힘들다. 이제 그만 좀 울어." 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나를 달래 주는 것에 지쳐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았다. 시장에 갔겠거니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는 아빠에게 물어봐도 엄마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이다. 한창 엄마의 사랑이 고픈 9살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에서 온 충격과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는 공포를 온몸으로 느꼈지만 애써 숨겼던 것 같다. 그 9살의 나이에도 말이다. 왜냐하면 엄마가 집을 나간 건 모두 나의 탓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매번 형제의 놀림을 받고 울어서 엄마가 그것 때문에 지쳐서 집을 나갔다고 생각했고 내가 울고불고 매달리면 엄마가 더 힘들어지기에 어린아이처럼 보일수록 집으로 아예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엄마가 없는 며칠이 지나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거실에 집전화기를 붙들고 엄마와 통화하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엄마가 집을 나가 잠시 친정집에 가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와 형제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아서 집을 아예 나가버렸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곧장 전화기 쪽으로 달려가 엄마와 통화하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울고 불고 떼쓰고 매달리면서 돌아오라고 하면 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애써 의젓하게 잘 지내는 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전화를 하고 있던 아빠가 옆에 우물쭈물하며 서있는 나를 보더니 “엄마랑 통화할래?”라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빠가 엄마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나에게 다시 물었다. “진짜 엄마랑 통화 안 할래? 엄마가 너 보고 싶다는데?”라고 하며 아빠는 나의 의사를 한 번 더 물었다. 나의 대답은 “아니 괜찮아”였지만 나의 눈시울은 눈물로 빨개져있었다. 아빠는 다시 한번 나의 의사를 물었다. “이번에 진짜 통화 안 하면 언제 엄마랑 또 통화할지 몰라. 정말 통화 안 할 거야?”라는 아빠의 말에 순간, 괜찮은 척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생각보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먼저 앞섰다. 들고 있던 수화기를 뺏들어 나는 수화기 너머에 있는 엄마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엄마.. 제.. 발 돌아와 주면 안 돼? "


 나의 이 말에 덤덤했던 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이 말 한마디를 남긴 채 아빠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9살 때에 이미 엄마는 기댈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았던 거 같네요. 엄마에게 울고 불고 떼쓰는 어리광을 피울 수 있는 어린 나이인데도, 어리광을 피우면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그걸 받아줄 힘이 없다는 걸 이미 그때에 인지했었던 거죠.”


 나는 정말 언제부터 엄마에게 기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까? 엄마에게 기대지 않고 불안하고 무섭고 외로울 때마다 어떻게 그 순간을 지나왔을까? 아마도 초등학교가 지나도록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밤이 되면 이불에 지도를 그렸던 것이 혼자 어떻게 불안함을 이겨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온갖 생각이 들면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처음에는 마음이 한편이 너무 저려왔다. 이번에 만난 이 감정은 이전에 만났던 감정들과 달리 하루 정도 시간을 가지고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다. 이 감정은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의지할 곳 없이, 어리광을 피울 수도 없이 커와야 했던 나를 그저 바라보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서 기다려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웃고 있었지만 집에 들어와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내 옆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그 아이의 마음을 그저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없이 옆에 함께 있어주었다. 그렇게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옆에서 묵묵히 있어주자, 그 아이는 더 이상 내 마음속에서 무거움으로 자리 잡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린아이처럼 내 안에서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다가와주었다.






겉으로 드러난 감정들을 만나는 건 괜찮은데,

내 안에 깊은 초감정을 만나는 것이 무서워요.




 어느 정도 자신의 감정들을 마주하고 받아줄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이제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 이면에 깊은 감정을 마주하려고 하면, 이유도 없이 두렵고 무섭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근본적인 원인을 뿌리 뽑고 싶다면 초감정 즉, 그 시절의 내면아이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그동안 묵혀두고 꺼내지 않았던 나의 과거이야기를 떠올려야 하기에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는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얻을 수 있으니 망설이지 말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권한다. (숙련된 정신분석 심리상담사를 제대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내 주변친구들은 어느 한 가지 사건을 두고 그렇게까지 과거를 들춰내야 하냐며, 부모가 잘못한 것을 들춰내고 이를 분노하면 네 마음은 편하냐고, 현재가 중요하지 과거가 중요하냐라며 생각할 수 있지만 원인을 알지 못하면 문제는 계속 반복되게 되어있다. 형태가 달라질 뿐 걸려 넘어지던 돌부리는 계속 걸려 넘어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렸다면 그 우울증을 완화시키는 약을 먹을 수도 있고(정신건강의학과) 우울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지행동치료를 할 수 있지만(정신건강의학과) 그 우울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초감정 즉, 그 시절의 내면아이를 만나 우울한 감정을 받아주고 이해하는 것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더욱 근본적인 치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치료가 되는 것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지라도 한번 감정을 만나고 해결하고 나면 더 이상 약과 인지행동치료가 필요없을 정도로 치료가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어서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잘 시도하지 않는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이 들어서 이게 사기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속는 셈 치고 상담사를 믿고 걸어온 지 5년이 된 지금 생각해 봤을 때, 자신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인데 그마만큼 의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드디어 다음 챕터에서 내면아이를 만나는 과정을 더욱 자세히 담을 예정이니, 내면아이를 만나고 난 이후에 나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직접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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