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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Apr 15. 2023

맹견보다 무서운 건 이런 견주다

결국 사람의 문제, 사람의 책임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이 행동문제를 교정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실은 부모가 문제이고, 반려견 행동문제를 교정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실은 견주가 문제더라고. 바꿔 말하면 아이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부모가 바뀌어야 하듯이, 반려견의 행동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견주가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빈번히 일어나는 개물림 사고를 보며 문제를 일으킨 개를 ‘안락사’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물림 사고와 유기동물 문제는 공포와 연민이라는 서로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여러 모로 연결되어 있고 닮아 있다. 수많은 정책과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 한번 문제를 일으킨 자가 계속 일으킨다는 점, 잘못된 반려동물 산업구조와 문화가 뒤섞인 결과라는 점에서 그렇다.


동물보호법이 개정되고 맹견법이 도입되면 사정이 좀 나아질까? 동물 매매를 금지하고, 견주에 대한 교육과 처벌이 강화되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제 아무리 제도와 법이 바뀌어도 결국 사람의 문제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맹견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고 강형욱 훈련사가 그랬던가? 맹견보다 위험한 게 견주들의 안이한 생각과 무책임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정신이 번쩍 든다.


초보가 키우기 좋은 품종인가요?

이것은 미디어의 책임도 있다. 수많은 미디어와 SNS, 유튜브에서는 ‘초보가 키우기 좋은 품종’이란 것들이 떠돌고 있다. 크기가 작고 털 빠짐이 적으면서 순해서 초보 견주가 키우기 좋다는 것이 그 내용인데 이는 몹시 위험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인 난이도가 낮은 것뿐, 개를 키우는 건 사료와 물만 챙겨주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쉽게 키울 수 있는 개는 단 한 마리도 없다. 입문용 자전거 찾듯이 게임 속 캐릭터 키우듯이 접근해서는 안 된다. 세상일 중에 초보에게 호락호락한 일이 하나라도 있던가?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면 어렵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 점을 먼저 각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형견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넓은 마당에서 대형견과 뛰어노는 것을 로망으로 여긴다. 은퇴하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이들도 많이 봤다. 그러나 개를 한 번이라도 끝까지 키워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로망인지 알고 있다.


개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어 줄 수 있는가? 양육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감당할 만한가? 산책과 훈련을 지속할 의지와 체력이 있는가? 소형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지만 대형견을 키울 때는 더욱 확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수습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시간, 경제력, 적절한 운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문제견이 되거나, 유기견(파양견)이 되거나.



아이가 외로울까 봐 데려왔어요

외동이 많은 요즘 상황에 아이가 외로울까 봐, 혹은 이미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는 상황에서 그 개가 외로울까 봐 입양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성인으로서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친구가 하나 더 늘어난다고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겠지만, 자신이 아이나 반려견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또 다른 생명을 들이지는 말자. 개가 인간의 감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이렇게 들어온 새 식구는 당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아이 때문에 들였지만 아이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기존의 반려견과 싸움을 일으킬 수도 있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파양할 생각인가?



자식처럼 키워요 vs 개는 개답게 키워야지

서로 다른 말인데 결과는 비슷하다. ‘자식처럼’이라는 말을 애정을 다 쏟아붓는다는 의미로 쓰는 듯한데 정말 ‘자식’이라면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하지 않았을까? 입질을 해도 으르렁대도 오냐오냐 하는 건 반려견에 대한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개의 본성을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이런 말을 쓰지 않는다. 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대로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한 핑계에 가깝다. 먹을 것만 챙겨주고 마당에 대충 풀어놓으면 알아서 뛰놀겠거니 하는 건 방임에 가깝다. 주인의 적절한 관심과 관리가 없다면 들개나 마찬가지 아닌가. 정말 개답게 키우고 싶으면 주인과 소통하며 주변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견주의 책임이다.




내가 키우는 개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그 개가 얼마나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혹은 사람들을 위협하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지 모두 견주에게 달려 있다. 얌전하고 예쁜 강아지라는 건 사진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순한 강아지라도 소소한 사고는 다 치는 법이다. 힘든 일 없이 예쁜 것만 생각한다면 SNS나 보는 게 낫다. 개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면 TV 속에 나오는 다른 개들의 문제가 모두 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각오하고 준비해야 한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지만 내가 ‘나쁜’ 주인이 될 수도 있음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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