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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Apr 17. 2023

첫 직장이 의외로 중요한 이유

구직자가 까다로운 걸까?

취업 준비생이 대기업을 선호하고,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가기 위해 N수를 감소하는 것은 결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업난이 심각한 반면,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어 구인난이 심각해지는 상황을 두고 누군가는 구직자의 눈이 높다느니, 너무 고르지 말고 일단 취직부터 하라느니 훈수를 두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보다 첫 직장을 선택하는 일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연봉과 복지, 혹은 워라밸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들은 좋은 직장의 조건 중 하나일 수는 있어도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연봉만으로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도 없고, 워라밸이 있다고 다른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첫 직장의 중요성은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으로 이직할 때 더욱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직장은 향후 커리어에 있어 모든 것의 ‘기준점’이 된다.


일하는 방식에서부터 업무 환경, 연봉의 시작점까지 모두 첫 직장에서 어떻게 시작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신입사원이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는 것은 판타지에 가깝다. 그들은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선배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거래처를 어떻게 대하고 동료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부터 배우고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 업무 환경에 대한 기준 역시 첫 직장에서 만들어진다. 


강압적 분위기에서 일을 배운 사람이 평등한 분위기로 일을 가르칠 수 있을까? 조직중심적인 환경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이 개인주의적인 환경에 금방 적응할 수 있을까? 가치 판단을 떠나 인간이 자신이 경험한 것을 넘어서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첫 직장은 쉽게 떼어내기 힘든 ‘라벨’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좋은 학벌이 하는 역할과도 비슷하다. 학벌 자체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학벌은 나를 증명하는 데 애를 덜 써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첫 직장의 라벨은 이직시장에서 내 능력을 증빙하기 위해 애쓰는 노력을 줄여준다. 물론 이직 후에 그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역할이며 실력은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니 라벨이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다. 커리어를 제대로 쌓는다면 어느 순간에는 학벌도 첫 직장도 별로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나의 가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된다. 



업계마다 상황이 다르고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무조건 대기업을 가는 것이 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누군가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첫 직장을 선택할 때는 연봉이나 워라밸이 아니라 다음을 확인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 회사는 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인가?

그곳에서 당신은 성장할 수 있는가?


꼭 1위는 아니어도 된다. 나중에 새로운 기회를 잡거나 커리어를 쌓기에 괜찮은 회사여야 한다. 선배들이든 커뮤니티든 가리지 말고 평판을 확인하라. 이 분야에서 계속 커리어를 쌓을 계획이든지, 나중에 다른 계획이 있든지 상관없다. 우수한 동료들과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인지, 그 회사가 업계에서 지배적인 위치인지 떠오르는 강자인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는 있겠지만, 책임까지 떠맡기는 회사는 좋은 회사가 아니다. 일을 많이 한다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배워야 성장한다. 연봉은 많이 주지만 몇 년째 발전이 없는 회사라면 당신은 결코 그 회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배울 사람도, 배울 것도 없다면 몇 년을 근무해도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괜찮은 첫 직장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업계 1위의 대기업이었고, 업무강도는 높았지만 연봉이나 업무환경은 우수했으며 훌륭한 선후배들이 있었다. 다니고 있을 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몇 년간 업계를 떠나 있다가 재취업을 하면서 첫 직장의 아우라가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어떤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맡더라도 허투루 임한 적은 없지만 단단한 믿음이 깔려 있는 땅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과 모래밭에서 쌓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그러므로 취업이 어려우니 급한 대로 아무 데나 들어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어떤 문을 여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포장도로로 가고 누군가는 비포장도로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목적지는 똑같더라도 불필요한 수고는 줄이는 게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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