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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하다 Dec 10. 2022

금다육이를 아세요?

다육 식물계의 로열 패밀리

다육식물들로 베란다가 테트리스 게임의 엔딩을 향해갈 무렵, 나는 금다육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에 눈을 뜨고 말았다. 금다육은 엽록소의 변이로 색 변형이 일어난 종인데, 그 변형의 색과 패턴이 단편적이지 않아서 일반종에 비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보통은 녹색을 띠고 있는 식물이 엽록소가 파괴되며 특정 부분이 흰색이나 노란빛을 띠는데, 변이종인만큼 일반 종보다 번식이 쉽지 않고, 햇빛 차광과 온도 관리에 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해서 같은 종이라도 '금'자가 붙으면 가격이 훨씬 높아진다.

라울(좌)/ 라울금(우) 둘은 잎의 생김새가 같지만 색이 다르다.
레오파드(좌)/ 레오파드금(중)/ 레오파드실버금(우) 레오파드는 색상 발현의 차이에 따라 금도 두 종류로 나뉜다.
블루서프라이즈(좌)/ 블루서프라이즈금(우) 분홍빛으로 금이 들었다. 이렇게 종에 따라 반드시 백색이나 노란색이 아닌 색으로 금이 발현되기도 한다.


영상, 사진, 글. 어떤 형태로든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다육이 유튜브 채널을 하루 종일 보다가 내 다육이들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금다육이를 판매하는 채널은 많지만, 금다육이를 소개하는 채널은 없다는 걸 깨닫고 '금다육이 키우는 금키'라는 나의 새로운 부캐와 함께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금키 채널에서 금다육이와 나의 일상을 나누는 것이 답답한 코로나 19의 시기의 내 호흡법이었다.


금키 채널을 처음 시작할 무렵, 나는 금다육을 판매하는 사장님들 몇 분께 '금다육'의 어원에 대해 질문했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귀하다는 의미로 금(gold)이란 단어가 붙은 걸까? 혹시, 줄무늬라서, '금이 가다'의 그 금일까? 그렇지만 이런 어원에 궁금증을 가졌던 사장님은 안 계셨던 모양이었다. 친절하셨지만 다들 잘 모르겠다고 답변하셨다. 나는 금다육의 어원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 채널에 꼭 올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모든 분야에서 검색의 달인인 내 친한 동생에게 이 문제를 논의했다.


역시나 그녀는 이번에도 내 민원을 해결해주었다. 처음에 동생은 금다육의 금이 골드가 아닌 비단금(錦)이라고 적힌 블로그를 찾아냈지만, 거기엔 그 블로거의 말을 뒷받침할 논거가 없어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국내에만 한정되어 있던 나의 검색 범위를 비단금 한자를 더해서 일본으로 넓혔고, 다육 판매 사이트를 뒤지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다가 마침내 한 칼럼을 찾아냈다.


pukubook 이라는 사이트에 게재된 금다육에 대한 설명이 담긴 칼럼이었다. 저자인 켄 상에 따르면, 보통의 초록색 식물이 노랑, 흰색 줄무늬 옷으로 갈아입는 현상을 식물학 용어로는 '후이리(班入り 아롱질 , 들)'라고 하는데 다육식물에는 '금(錦)'이라는 호칭이 주어진다고 한다.


일본어를 처음 공부하던 대학시절, 가장 어려운 점은 한자를 읽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란 것이었다. 일본어는 뜻으로 읽는 법, 음으로 읽는 법이 따로 있어서 단독으로 쓰이는지, 다른 한자와 같이 쓰이는지, 어떤 한자와 같이 쓰이는지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진다. 비단금은 골드의 금(金)과 음으로 읽을 때는 '킨'으로 소리가 같지만, 뜻으로 읽으면 '니시키'다.


금다육이의 금, 즉 니시키는 '니시키고이(錦鯉)'로부터 기인했다고 한다. 니시키고이는 비단잉어다. 니시키 고이는 니시키오리(錦織), 일본의 전통 직조기술에 그 어원이 있다고 한다. 프린트로 찍어낸 무늬가 아니라 '수를 놓다' 혹은 '자카드' 기법을 떠올리면 쉽게 연상되는 입체감이 살아있는 천이다. 금사, 은사 등 화려한 색의 실을 사용해서 복잡한 무늬를 짜 넣은 천, 니시키오리부터 화려한 무늬의 비단잉어인 니시키고이, 색 변이종 다육이를 뜻하는 니시키 다육식물까지, 색의 아름다움을 서로 경쟁하는 그 세계관을 '니시키'라는 이름이 계승하고 있다고 켄 상은 적었다.    


pukubook은 한 개인이 운영하는 사이트였지만 다육식물에 대한 칼럼들과 식물 판매, 일본 내 각종 다육식물 관련 행사, 다육 식물도감 등이 총망라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운영자인 켄 상의 인스타그램이 링크되어 있어서 나는 DM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TMI를 잔뜩 섞어서 얼마나 금다육의 어원에 대해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지와 켄 상의 지식과 사이트를 유튜브에 소개해도 되겠는지를 물었고, 그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허락해주며 앞으로는 이런 허락을 구하는 메시지 없이 얼마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한때 금다육이는 재테크의 한 방법으로 소개되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돈을 벌 목적으로 금다육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육식물은 아니지만, 관엽식물 몬스테라 알보의 가격도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것을 보면 식테크는 여전히 누군가에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금다육이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키핑장이 많이 늘어나서 판매를 생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 마니아들 사이에서의 거래도 많아졌고, 금다육의 번식도 예전만큼 어렵지 않아 졌다. 공급이 늘어난 만큼 당연히 가격은 떨어졌다.


나도 식물 소매업자 사업자 등록을 하고 식물 포털사이트에 입점해서 두 달 정도 판매를 했었다. 내가 판매를 시작했을 때는 사실 이미 금다육이의 거품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비싸고 키우기 어렵다는 오해를 받으며 정말 예쁜 매력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못한 금다육이가 나는 안타까웠다. 몇 개월 동안 구매, 재배를 하며 지식도, 인맥도, 거래 루트도 쌓아왔다. 금다육이를 많이 알리고 싶어!


800개의 업체가 입주한 사이트에서 한 달만에 매출 60위에 올랐었다. 비싼 아이를 팔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비쌌던 아이를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게 꾸준하고 소소하게 팔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수원에 있는 하우스까지 오가는 기름값과 포장비, 판매할 아이들을 구매하는 비용을 제외하면 내 인건비도 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윤도 남지 않고, 아이들을 잘 돌보기도 어려운 것 같아 지금은 판매를 잠시 쉬는 중이다. 빠른 택배가 한국인에겐 생명인데, 하나의 주문에 응답하기 위해 하우스까지 가려면, 이윤보다 주유비가 더 비싸게 돼버린 지금은 열심히 농사를 지을 때다.


만약에 금다육이의 금이 골드였다면, 내 금은 돌덩이가 되었겠지만, 내 금다육이들은 비단이다. 그 무늬와 색감이 정말 아름답고 신비롭다. 반해서 들였지만, 자라면서 더 예뻐지고,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 판매자로부터 서비스로 받아서 크게 관심을 주지 않던 아이가 어느 날 보면 "엄마 나 이렇게 예뻐졌는데요." 하면서 사랑을 갈구하기도 한다. 모두가 수공예품처럼 똑같은 아이가 단 하나도 없다. 패턴도 색감도 정말 다채롭고 아름다워서 왜 디자이너들이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지, 그 섬세한 예술품들을 볼 때마다 놀라고 감동하며 끄덕이게 된다.


며칠 전,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영상이 아닌 사진으로 남겨야겠단 생각이 들어, 작심하고 촬영을 했다. 주로 채널에 업로드할 영상은 폰으로 촬영하는데, 아무리 폰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졌다지만, DSLR 렌즈의 감성과 정밀함을 따라갈 수는 없다. 하우스의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서, 분갈이하고, 물을 주고, 하엽을 정리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해가 져서 늘 카메라는 가져갔다가 메모리를 채우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허다했다.


'오늘은 무조건 촬영부터야!'


두 시간 넘는 시간 동안 허리 아프게 촬영을 했다. 집에 와서 정리해보니, 와 너무 예쁘다 감동하면서도 손목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좀 더 배경을 예쁜 곳으로 옮겨 찍는 게 귀차니즘이 올라오고 이런저런 이유로 더 좋은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는 컷이 많았다. 이렇게 저렇게 톤 변화를 주면서 나의 감성을 사진에 담는 것을 좋아하는데, 영상에 톤을 얹었을 때 다육이 색감이 변한다며 불편함을 드러내던 날 선 댓글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소심한 마음도 들었다. 반드시 식물은 꼭 그 색감 그대로 담아야 하나?


내가 학자라면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려 노력해야겠지만, 나는 지금 학술적인 글을 쓰는 것도, '상세 사진이 실제 색감과 가장 비슷합니다' 라며 다육이 판매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니까, 내 감성의 사진들을 마음껏 펼치는 즐거움을 누려야겠다.


안나금. 이름처럼 여성스러운 느낌의 로제트가 아름다운 다육이. 색감이 화려한 다육이를 왜 흑백으로 변환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하루 종일 컬러와 흑백의 차이를 즐기며 좋았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나의 비단이들을 하나씩 소개하려고 한다.

매거진을 이유로라도 정성스러운 사진을 찍게 될 테니까.


금키의 금다육이 감성 도감이 브런치북으로 완성되는 날을 꿈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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