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뭉근함과 튤립의 유종의 미, 마트리카리아의 수수한 매력까지
2022년의 두 번째 달이 지나갔습니다. 2월 꽃꽂이인 만큼 2월에 꼬박 작성을 했어야 하는데 열흘이나 늦어졌네요.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중순 즈음 어느 날, 아침부터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득할 지경이었어요. 다행히 코로나가 아닌 단순 감기몸살이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찾아온 몸살. 아픔은 달가울 리 없으므로 여전히 익숙하지 않습니다. 힘이라곤 조금도 들어가지 않아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웠습니다. 이렇게 한바탕 들끓고 나면 몸과 함께 마음마저도 부서지는 기분이 듭니다. 분명히 무언가를 하고 싶고 또 해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까요. 해야 한다와 할 수 없다가 만들어내는 거리가 한없이 늘어납니다. 몸은 며칠 후 말끔히 나았으나 마음이 온전치 못해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2월을 다소 아쉽게 마무리했어요. 그래서 이번 꽃꽂이는 마구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데에 초점을 두고 싶었습니다.
각각의 꽃이 주인공이 되어 본연의 매력을 발산하는 시간,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구입처 : 남대문 꽃 도매시장
**평일, 토요일 05:30~17:00 / 공휴일 05:30~14:00 / 일요일 휴무
총지출 : 36,000원
-장미(연핑크) : 1단 15,000원
-튤립(주홍) : 1단 13,000원
-마트리카리아 : 1단 8,000원
**월, 수, 금은 새로운 꽃이 들어오는 날이에요.
월수금 방문 장/단점 : 싱싱함, 다양한 종류 /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쌀 수 있음
화목토 방문 장/단점 : 세일 판매가 있을 수 있음 / 덜 싱싱할 수 있음 / 이미 팔려서 종류가 적을 수 있음
꽃시장에 갈 때는 늘 지하철을 타고 다녀요. 무거운 꽃을 한아름 안고 돌아올 때면 조금 지치곤 했지요. 이상하게 지하철은 타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는 기분이에요. 내내 컴컴한 땅속으로만 다녀 그런 걸까요? 이번에는 몸도 나았겠다, 기분전환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버스를 탔습니다. 시원시원한 통창 너머 멋진 풍경을 감상하면 피곤함도 조금 가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며칠간 구름 한 점 없이 맑다가 하필 꽃시장 가는 날 흐려져서 아쉬웠지만 재밌었어요. 도심 한복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숭례문도 보았습니다. 꽃시장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한 번도 보지 못 했다니. 덕분에 꽃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가벼웠어요.
하지만 기분전환이 무색하리만큼 이번 꽃시장은 아쉬웠어요. 꽃이 들어오는 날인데도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2월은 졸업식 시즌이라 꽃값이 다시 한번 치솟는 데다가 종류도 많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지나 제철을 맞이한 노란 프리지아가 절반이었어요. 사실 지난 꽃꽂이에서도 누누이 언급했지만 2월은 마지막 겨울철인 만큼 겨울을 담은 푸른 꽃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타이밍이 너무 늦었나 봅니다. 꽃시장은 싱그러운 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푸른색과 흰색의 적절한 조화가 매력적인 아이스퀸 튤립도 꼭 들이고 싶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1월에 봤을 때 들였어야 했는데...라고 뒤늦은 후회를 해봅니다. 아무튼 제가 생각해두었던 겨울 꽃꽂이는 불가능했어요. 내년을 기약해야 하다니. 그래도 제가 늦게 방문한 탓도 있고, 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노선을 바꾸었습니다.
아프고 나서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이번에는 한 꽃병에 꽃을 한 종류만 꽂기로 하고 다시 둘러보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꽃을 들이는 과정부터 집중, 또 집중!
1. 줄기가 단단한 꽃(국화 등 대부분의 꽃)은 줄기를 자를 때 사선으로 잘라 주세요. 표면적이 넓어지면 물올림이 더 잘 된답니다.
2. 줄기가 무른 꽃이나 속이 비어 있는 꽃(거베라 등)은 물에 담겨 있으면 더 빨리 무르기 때문에 사선보다는 직각으로 잘라 주시는 게 좋아요.
3. 꽃병에 물을 다 채울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물은 자주 갈아줘야 하고, 물에 담긴 만큼 세균이 번식되기 때문에 줄기 끝이 4~5cm 정도 잠길 만큼만 채워 주세요.
4. 물에 잠기는 부분은 꽃잎을 깨끗하게 제거해 주세요. 꽃잎이 물에 들어가면 물에 절여(?)지고 금방 물이 지저분해져요.
5. 장미나 국화류 등 줄기가 단단하고 굵은 꽃들은 열탕 처리를 해주면 더 오래 감상할 수 있어요. 70도 정도 되는 따뜻한 물에 줄기 끝을 5분 정도 담그면 돼요.
첫 번째 꽃은 복숭아빛 장미입니다. 이전에는 머리 큰 장미는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웠어요. 압도적인 크기 때문인지. 지난 12월 꽃꽂이 때 처음으로 머리 큰 장미를 들였는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커다란 장미의 매력을요. 우선 관리만 잘해주면 정말 오래갑니다. 장미의 뭉근함이라고 말한 이유도 천천히 오래도록 그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이에요. 꽃시장에 다녀온 지 꼬박 2주가 지난 지금, 이 장미 몇 송이만 아직 살아 있어요. 원래 장미가 다른 꽃에 비해 오래가는 편이긴 하나 머리가 작은 것보단 큰 게 더 오래가더라고요.
머리 큰 장미의 또 다른 매력이라면 활짝 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는 거예요. 처음 들여올 땐 잎이 단단히 뭉쳐 있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점점 그 풍성함을 드러낸답니다. 일주일쯤 지나면 생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게 피어나요. 줄기에서부터 곧게 뻗은 알맹이는 어찌나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이렇게 크고 풍성한 장미를 보면 강인함이 솟아 나오는 기분이 들어요. 매일 아침 꽃병의 물을 갈아줄 때면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이제는 부담스러움이 아닌, 줄기에서 꽃잎까지 피어오르는 강인함에 압도되곤 합니다.
두 번째 꽃은 선명한 주홍색을 담은 튤립입니다. 튤립을 보면 새삼스럽게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조화 튤립이랑 구분이 가장 어렵다는 거예요. 요즘은 조화도 퀄리티가 워낙 좋아서 멀리서 보면 생화처럼 보이는데요. 튤립은 유독 조화가 정말 생화처럼 생겼더라고요. 저 매끈매끈한(?) 질감도 가장 잘 살리는 것 같고요. 그래도 생화의 매력은 못 따라간답니다. 생화가 주는 싱그러운 힘이 있잖아요. 그게 가장 강력한 매력이에요. 이번에 꽃시장에 가거든 '아이스퀸 튤립은 꼭 들여야지!' 했으나 아쉽게도 아이스퀸은 없었어요. 따뜻한 색감의 튤립들만이 저를 반길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예쁜 튤립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튤립은 지는 순간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가는 것 같아, 유종의 미를 품은 꽃 같아요. 보통 꽃시장에 팔 때는 꽃봉오리가 오므려져 있어요. 아직 활짝 피기 전이죠. 집으로 돌아와 손질을 할 때면 물을 빨아들이지 못해 줄기에 힘이 빠지는데요. 빠르게 손질한 다음 꽃병에 꽂아두면 두세 시간만에 싱싱하게 살아난답니다. 물을 흠뻑 머금은 줄기는 꼿꼿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2~3일 후면 꽃봉오리가 벌어져 만개합니다. 신기하게도 그 후로 미묘하게 오므렸다 벌렸다를 반복해요. 그렇게 피어났을 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이파리들이 한 장씩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꽃들과는 다르게 이파리가 누렇게 뜨거나 거무죽죽하게 무르지 않고, 싱싱하게 피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똑똑 떨어져요. 떨어진 꽃잎마저 싱그러움을 품고 있답니다. 튤립을 보면 꽃이 지는 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까지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는 튤립. 살면서 내가 만들어가는 길을 열심히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 길을 달려가는지,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그려본다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거예요.
세 번째 꽃은 들꽃 같은 수수함이 매력적인 마트리카리아입니다. 이름이 생소할 수 있을 텐데요. 좀 더 익숙한 이름으로 불러볼까요? 캐모마일이라는 꽃입니다. 캐모마일은 국화과라서 줄기도 국화를 닮아 있어요. 그래서 꽃만 보면 정말 가녀리고 하늘하늘할지 몰라도, 줄기는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단단한 줄기가 버티고 있어 알알이 작은 꽃이 마음껏 고개를 들 수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손질이 다소 까다로울 수 있어요. 머리가 워낙 작고 촘촘해서 자기들끼리 뒤엉킬 수 있거든요. 억지로 빼내려고 하면 힘없는 머리는 후드득 바닥에 내리 꽂히고 맙니다.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가꿔야 해요. 그럴 때면 촘촘한 꽃이 지닌 결속력이 느껴져요. 캐모마일뿐만 아니라 작고 연약한 꽃을 보면 대부분 이렇게 오밀조밀 뭉쳐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과도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서로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며 우리는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라고 다독이는 것 같아요. 그렇게 손을 맞잡은 우리가 아름다움을 한아름 피워냅니다. 지난번에 미니 델피늄을 보고 외유내강의 꽃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캐모마일도 외유내강을 담은 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속이 단단해야 쉽게 쓰러지지 않아요. 무엇이든지 말입니다.
캐모마일은 향이 좋아 차로도 마시곤 하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따뜻한 캐모마일차를 한 잔 마시면 찌뿌둥한 몸이 스르륵 풀립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듯 상쾌한 향은 잠들어 있던 감각마저 흔들어 깨우곤 해요. 꽃꽂이를 끝낸 후 가까이 다가가니 싱그러운 캐모마일 향이 느껴졌습니다. 생김새도 향도 충분한 매력을 가진 꽃이랍니다.
모양도 색도 향도 모두 다른 꽃을 보고 있을 때면 저마다의 매력이 느껴져요. 그것은 강렬하게 훅 다가오기도 하고, 서서히 스며들듯 마음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여러 꽃을 조합해 완성하는 꽃꽂이는 각 꽃이 가진 색감을 통해 조화를 이루어낸다면, 한 가지 꽃만 담은 꽃꽂이는 꽃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합니다. 꽃꽂이에 빠진 뒤로 꽃에 대해 틈틈이 공부하고 있어요. 꽃이 저에게 다가오듯 저도 꽃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고 싶거든요. 아직은 서툴지만 이렇게 조금씩 꽃과 친구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이제 한낮의 날씨는 제법 따뜻해졌어요. 정말 봄이 오려는가 봅니다. 봄날의 꽃은 또 어떤 매력을 안고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네요.
2월의 꽃꽂이는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따스한 봄이 오기 전 환절기 건강 유념하시고요. 3월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