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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피생 Jun 18. 2024

내 추구미는 리틀 포레스트(였다).

삶은 영화 같지 않다.

자취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느끼는 단점은 식사 준비다. 누군가와 함께 살 때는 내가 요리를 하지 않아도 항상 집에 먹을 게 있다. 반찬도 내가 좋아하지 않을 뿐, 어쨌든 냉장고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잔뜩이다. 하지만 혼자 살면 냉장고에 먹을 게 없다.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놓지 않는 한 마법처럼 냉장고가 음식을 보관하고 있을 리는 없다. 분명 자취를 시작하고 나면 음식은 꼭 만들어 먹자고 다짐했었다. 유튜브를 보며 이런저런 레시피를 저장해 놓고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스스로 음식을 만드는 나’를 상상했다. 그런데 막상 혼자 살아보니 만들어 먹는 건 물론이고 장 보는 것도 힘에 부친다. 그렇게 내 추구미였던 <리틀 포레스트>는 물 건너 간 이야기가 돼버렸다.


처음 자취방을 구해 올라왔을 때 혼자 먹었던 저녁은 편의점 김밥이었다. 짐 정리도 되지 않은 방 안에서 처음 본 동네에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하며 열심히, 우울하게 김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하루를 보낸 다음 반찬을 사기 위해 찾은 건 시장이었다. 자취방과 시장이 가깝다는 점과 마트보다 값이 조금 더 싸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시장을 택했다. 시장에 가서 사 온 건 전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본가에 살 때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아무런 요리 실력도 없이 갑자기 혼자 살게 되었다. 그래서 시장에 가도 식재료를 사지 못했다. 사도 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없었다. 야심 찬 마음을 가지고 찾은 시장이었지만 결국 전만 잔뜩 사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자취를 시작하고 당분간은 계속 전과 함께 기름진 식사를 했었다.


실력이 없어서 요리를 회피하며 살다가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 엄마는 자취를 처음 시작한 내가 밥을 잘 챙겨 먹는지 항상 걱정했었다. 부실하게 먹지 않을지, 인스턴트 음식을 매일 먹진 않을지 걱정을 하며 나물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콩나물 무침은 하기 어렵지 않고 가격도 저렴하니 만들어 보라고 하셨고, 엄마가 알려준 대로 하니까 정말 어렵지 않게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른 엄마와 아빠에게 내가 만든 반찬이라며 자랑했고 두 분 다 나를 정말 기특하게 여기셨다. 남들이 보면 겨우 콩나물 무침 가지고 그런다며 조금 비웃을 수 있지만, 부모님은 물론이고 나에게도 스스로 반찬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기특했다. 이 날을 이후로 점점 반찬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 먹기보다 곧잘 해 먹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나물 반찬은 빨리 쉬어서 더 이상 만들지 않고, 대단한 요리를 하는 건 아니지만.


주변에 혼자 살면서 끼니를 잘 챙겨 먹는 사람들을 보면 요리를 귀찮아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재료를 사 오고 프라이팬을 여러 개 쓰고, 그릇을 이것저것 꺼내 몇 가지의 양념장을 만든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요리를 귀찮아하지 않는 건 그 시간이 아깝다고 여기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요리를 회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요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만들어 얼른 먹고 싶고 설거지도 오래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요리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시간을 들여하는 만큼 맛있어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내 추구미는 <리틀 포레스트> 속 주인공처럼 계절에 맞는 재료로 요리해 먹는 모습이다. 요리를 회피하지 않는 건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방법이라고 여기며 오늘도 요리 잘하는 나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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